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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사한테 재판 못 받겠어요!"... 급증하는 법관 기피 신청,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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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와 법관이 불공정하게 재판할 우려가 있다며 사건 관계인이 교체를 요구하거나 법관이 직접 변경을 요청하는 법관 기피·회피 건수가 매년 늘어나면서 전국 법원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재판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이지만,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거의 없어 사실상 무용지물이란 지적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용률을 높일 경우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아, 대법원은 기피·회피제도를 합리적으로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10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법원에 접수된 재판부와 법관 기피·회피·제척 건수(민·형사 합계)는 1,533건으로 전년 대비 633건 급증했다. 2014년 1,041건을 기록한 후 매년 감소하다가, 2017년 694건, 2018년 753건, 2019년 900건 등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민사·형사소송법상 기피는 소송 당사자가 재판부·법관 교체를 신청하는 것이고, 회피는 법관이 스스로 배제 요청을, 제척은 특정 사유에 따라 법관을 자동 배제하는 제도다.
법원 내부에선 지난해 기피 등의 신청 건수가 유독 급증한 원인으로 악의적인 '반복 신청'을 꼽고 있다. 특정 신청자 2명이 반복적으로 500건이 넘는 기피 신청을 냈다는 것이다. 법원은 재판 지연 등을 목적으로 제도를 악용하는 이들이 증가하면 법관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신청을 매우 엄격하게 심사해 왔다. 실제로 2016년부터 5년간 인용된 기피·회피·제척 신청은 총 9건에 불과하다.
법원은 법관과 소송 당사자 관계가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객관적 근거가 매우 분명할 때에만 인용 결정을 내려왔다. 2019년 임우재 전 삼성전기 상임고문이 제기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의 이혼소송 재판장 기피 신청이 대표적 사례다. 임 전 고문은 재판장이 대법관 인선에서 낙마한 후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 등 지인들에게 '감사 인사'라는 제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을 근거로 기피 신청을 냈다. 서울고법에서 한 차례 기각됐으나, 이후 대법원이 인용하면서 재판부가 변경됐다.
법조계에선 기피 신청이 매년 늘어나는 이면에는 사법부를 향한 불신이 깔려 있다고 본다. 2014년 이후 감소하던 신청 건수가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진 2017년을 기점으로 반등한 점, 인용률이 극히 낮은데도 신청 건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점이 사법 불신을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특정 사건을 맡은 법관을 교체해달라고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등 법관 공정성과 자질에 대한 기대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최근 법관 기피 신청을 했다가 각하된 사건의 변호인은 "재판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의심스러운 상황이 발생하면 소송 당사자는 문제를 바로잡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기피 신청을 단순히 재판 지연 목적으로만 해석해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기피·회피 신청 증가로 법원 안팎의 불만이 커지자 대법원은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검토하기로 했다.
법원 예규에 따라 사건 관계인과 연고관계가 있다면 법관이 직접 재배당을 요청하고 법원이 심사해 결정하는 '연고관계 재배당' 제도를 대안으로 도입했지만, 사건 관계인이 직접 기피 신청을 한 경우에 대해 좀더 적극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대법원은 우선 △법관 독립성과 기피·회피·제척제도 간 조화 방안 △신청 남용에 대한 합리적 규제 방안에 대해 외부 연구를 거쳐 내부 운용 지침으로 정립한다는 계획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인용률이 너무 낮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던 만큼 합리적인 활성화 방안이 있는지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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