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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180명 돈 떼먹고 사라진 두 번째 집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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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 사는 직장인 왕모씨는 지난 8년간 다섯 차례 이사를 했다. 월세가 계속 올라 점차 시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8월 회사 동료를 통해 임대인을 소개받았다. 시세보다 20%가량 낮은 가격이었다. 미심쩍었지만 주변 지인 세 명이 이미 그와 2, 3년씩 친분을 유지해온 세입자였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집주인 장모씨에 대한 고객들의 호평이 잇따랐다. 휴대폰을 세 개씩 갖고 다니며 세입자들의 요구에 성심껏 응대했다. 방이 좁아 옷장을 거실로 옮긴다고 하자 다음날 바로 처리했고 필요한 가전제품이나 생활용품도 신속히 채워줬다. 명절 때는 과일 선물을 보내왔다. 임대를 전문적으로 하는 ‘착한 부자’로 보였다. 왕씨는 계약할 때 부동산 소유증명서 원본이 아닌 사본만 봤지만 장씨의 이름이 있는 것만 확인하고는 더 이상 꼼꼼히 살펴보지 않았다.
그런데 월세 납부방식이 이상했다. 장씨는 1년치 월세 일시납을 요구했다. 대신 세입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계약을 연장할 때마다 할인율을 파격적으로 높였다. 장씨는 신규 고객을 데려오는 세입자에게는 성과금도 줬다. 수상한 일도 잇따랐다. 6개월만 살고 나가겠다는 세입자를 설득해 굳이 1년 계약으로 연장했고, 때론 돈을 빌리는 경우도 잦아졌다. 돈을 빌려주지 않는 세입자에게는 “집을 팔 수밖에 없다”고 종용하는 사례도 있었다. 장씨는 문제를 제기하며 꼬치꼬치 캐묻는 세입자와는 계약 연장을 거부했다.
지난 9월 왕씨 집에 ‘진짜 집주인’이 들이닥쳤다. 월세가 입금되지 않아 찾아왔다고 했다. 알고 보니 장씨는 집을 빌려 다시 임대하는 두 번째 집주인, ‘얼팡둥(二房東)’이었다. 하지만 “바로 해결했다”는 장씨의 말만 믿고 그냥 넘어갔다. 중국에서 원래 집주인이 재임대에 동의하면 얼팡둥은 불법이 아니다. 집주인이 6개월간 묵인하는 경우에도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 지난해 5월 집 400여 채로 임대료 2,000만 위안(37억 원)을 버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져 엄청난 재력가로 알려진 20대 여성이 자신을 얼팡둥이라고 소개해 사회적 관심과 함께 적잖은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 달이 지났다. 퇴근 후 돌아오니 “밀린 임대료를 지불하고 10월 20일까지 이사하라”는 독촉장이 현관문에 붙어 있었다. 이때도 장씨는 “문제없다”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다음 날 왕씨는 문이 잠겨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제서야 파출소로 신고하러 갔더니 회사 동료를 포함한 세입자 1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장씨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가 계약 당시 세입자들에게 보여준 부동산 증명서는 위조로 드러났다.
경제매체 신랑차이징은 “돈을 떼인 피해자가 180명, 액수는 1,000만 위안(18억5,000만 원)이 넘는다”고 전했다. 장씨는 개인 명의뿐만 아니라 회사를 차려 법인 명의로 수십 채씩 부동산업체 소유 집을 임차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는 “개인은 세 채까지만 빌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여론이 부동산에 극도로 민감한 상황에서 자칫 민심을 자극할 수도 있었다. 시진핑 주석은 ‘공동부유(함께 잘 살자)’를 외치는 반면, 부동산 재벌 헝다는 천문학적 부채위기를 아직 말끔히 해결하지 못해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다. 중국청년망은 “부동산 업체의 직무유기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해 얼팡둥이 초래한 피해를 세입자에게 떠넘긴다면 법적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질타를 받은 업체들은 부랴부랴 대책을 발표했다. 임차인 피해 전액 보상을 약속하며 쯔루는 500만 위안(9억2,500만 원), 워아이워지아는 150만 위안(2억7,770만 원)을 내놓았다. 홍성신문은 “임대차 관련 입법이 보완되지 않는 한 사라진 장씨가 마지막 범법자는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구망은 “공안은 물론 여러 부동산 업체와 관계 당국이 장씨의 행방을 쫓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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