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김종인 딜레마'... "권한 주는데, 대체 어디까지?"

입력
2021.11.09 19:2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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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제56회 전국여성대회에서 윤석열(오른쪽)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오대근 기자

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제56회 전국여성대회에서 윤석열(오른쪽)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오대근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을 두고 '김종인 딜레마'에 빠졌다. '킹 메이커'라는 상징성과 노련한 지략, 중도 확장성을 고려하면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윤 후보가 반드시 잡아야 하는 카드다. 하지만 강한 장악력을 원하는 김 전 위원장의 스타일상 '상왕이 오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윤 후보는 김 전 위원장의 손을 잡고 싶어한다. 5일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부터 "김 전 위원장이 도와주실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도 김 전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거나 찾아가 자주 조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후보가 김 전 위원장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윤 후보는 정치 신인으로서 실수를 연발한 데다 최근 '강성 보수' 이미지가 강해지고 있는데, 그런 약점을 김 전 위원장이 메워줄 수 있다. 김 전 위원장은 '경제민주화'의 저작권을 갖고 있고, 비대위원장 시절 '서진(西進) 정책'을 통해 국민의힘의 중도·호남 확장 행보를 주도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김 전 위원장의 선대위 합류만으로 '미숙한 후보론'을 상당 부분 잠재울 수 있다.

관건은 윤 후보가 김 전 위원장의 요구를 얼마나 들어주느냐다. 김 전 위원장은 8일 채널A 유튜브에 출연해 "선대위가 어떤 모습인지 그림을 제시해야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을지) 판단할 수 있다. (윤 후보가) 선대위 구성을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내가 원하는 대로 선대위를 구성해달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김 전 위원장은 대선 승리를 위해 여러 선결 조건들을 제시한다"며 그 조건으로 '선대위 전면 재구성'을 언급했다.

윤 후보 주변에선 김 전 위원장의 강한 장악력이 독이 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김 전 위원장은 문 대통령, 박 전 대통령 및 측근들과 사실상 권력 다툼을 하다 멀어졌다. 그 과정에서 더 큰 상처를 입은 건 문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이었다.

국민의힘 인사들과 김 전 위원장의 껄끄러운 관계도 고민거리다.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9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윤 후보가 권력형 비리와 싸우겠다면서 감옥에 다녀온 사람을 선대위원장으로 앉히는 것이 말이 되느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원로가 여럿 있다"며 김 전 위원장의 비리 전력을 꼬집었다. 윤 후보는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의 선대위 합류도 타진 중이지만, 그 역시 김 전 위원장과 불화한 적이 있다.

윤 후보의 고민이 깊어지면서 선대위 출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윤 후보측의 권성동 비서실장은 일단 진화에 나섰다. 9일 페이스북에서 "김 전 위원장은 선대위 구성과 관련해 전권을 달라고 한 적이 없다"며 "지금도 잘 소통이 되고 있으며, 앞으로 잘 협의해 최고의 선대위를 발족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손영하 기자
박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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