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윤석열 모두 만나는 美 차관보... '예비 스킨십' 결례 논란

입력
2021.11.0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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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패싱" "격 안 맞는다" 지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쪽 사진)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쪽 사진)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국회사진기자단

10~12일 취임 뒤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ㆍ태평양담당 차관보가 방한 기간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ㆍ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만난다. 미 외교 관료가 한국의 유력 대선후보들을 공개 접촉하는 것은 이례적으로 문재인 정부에 결례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아무리 동맹관계라 해도 대선후보가 미국의 일개 부처 차관보를 대등한 관계에서 면담하는 것 자체가 격(格)에 맞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재명 대선후보 캠프는 8일 “이 후보가 11일 크리튼브링크 차관보와 크리스토퍼 델 코소 주한미국대사 대리를 면담하고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라고 밝혔다. 크리튼브링크 차관보는 12일에는 윤석열 후보와의 면담 일정도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한중일 외교를 담당하는 직책이다. 북핵 문제는 물론 한미일 3국 간 안보 협력 등 미국의 동아시아 외교전략을 총괄한다. 크리튼브링크 차관보는 앞서 9월 미 상원의 인준을 받았으며, 원래 방한 목적은 카운터파트인 여승배 외교부 차관보 등과 양국의 주요 이슈를 점검할 계획이었다.

"임기 남은 현 정부 경시" 비판

크리튼브링크 차관보가 여야 대선후보들을 만나려는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런 식의 공개 접촉은 상당히 드물다. ‘미국이 한국 대선에 개입하려 한다’는 인상을 줄 가능성이 큰 탓이다. 여기에 6개월에 불과하지만 임기가 버젓이 남은 현 정부를 건너뛰고 차기 정권과의 ‘예비 스킨십’에 치중한다는, 이른바 ‘패싱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미 차관보가 동맹국의 최대 정치행사 한복판에서 대선후보들과 회동하는 건 관례에 어긋난다”며 “의도를 떠나 문재인 정부를 경시하는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도 “미 당국자가 대선후보 참모들과 비공개로 대면한 사례는 더러 있었지만 이번처럼 당사자를, 그것도 공개적으로 면담하는 것은 정치적 민감성을 따졌을 때 부적절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정부 입장에서도 미 행정부와 차기 권력들과의 교감은 외교적 망신으로 비칠 수 있다.

제18대 대선이 한창이던 2017년 3월 조셉 윤 당시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한국을 찾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안희정 전 충남지사 등을 접촉한 적은 있다. 그러나 그때는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파면 결정을 내린 직후로 국정 운영이 정상적인 지금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文, 후보 시절 美 관료 직접 접촉 피해

외교가에선 대화 상대의 체급이 맞지 않다는 평가도 많다. 익명의 정부 관계자는 “한국도 미국 대선 시즌이 되면 민주ㆍ공화 양당의 후보들을 접촉하려고 애쓰지만, 후보가 직접 만나주는 경우는 없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 역시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한 2017년 3월 윤 대북특별대표로부터 만남을 요청받았다. 하지만 캠프 측은 외교정책 고문을 맡은 서훈 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보내 대신 면담하게 했다. 후보 본인이 동등한 위치로 볼 수 없는 국무부 관리를 공개 접촉하는 건 상식에 배치된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조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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