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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실패를 실패라 부를 수 있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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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시선으로 볼 때 우리가 숨쉬는 지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인공위성 만드는 물리학자 황정아 박사가 전하는 '미지의 세계' 우주에 대한 칼럼이다.
10월 21일 오후 5시에 누리호가 나로우주센터에서 우주를 향해 출발했다. 발사 후 55초 만에 음속을 돌파했고, 127초에 1단 로켓이 분리되었다. 75톤급 엔진 4개를 묶어서 시도하는 첫 비행이었는데도 어려운 1차 관문을 무사히 통과했다. 발사 후 233초에 페어링을 분리하고, 274초에 2단 로켓이 분리 되었다. 3단 로켓은 계획보다 딱 94초 모자란 427초 동안 연소하며 700㎞ 고도에 도착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켓에서 위성 모사체가 분리되었다. 700 ㎞고도에서 위성이 계속해서 지구 주위를 돌게 하려면 위성의 초기 속도 초속 7.5㎞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위성은 속도 초속 1.1㎞가 부족해서 궤도에 안착하지 못했다. 누리호에 탑재되었던 위성 모사체는 결국 지구로 추락했다. 미션은 실패했다.
누리호의 실패를 실시간으로 지켜본 사람들은 감동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하지만,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지쳐있던 사람들에게 누리호는 우리나라의 높은 과학 기술 수준을 보여주며,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위안을 주었다. 비록 실패했지만, 사람들은 연구자들에게 감사와 격려, 응원을 보냈다. 과거에 나로호가 발사 실패를 경험했을 때와는 사뭇 달라진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실패’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놓는 것을 두려워한다. 누리호 발사 전 브리핑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는 “누리호가 실패했을 때 용어를 ‘실패’라고 쓰지 말고 ‘비정상 비행’으로 써 달라”고 기자들에게 주문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발사’도 ‘비행시험’으로 써 줄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성공을 ‘정상 비행’으로 써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이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감이 사회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 사회가 실패를 받아들이는 일에 매우 인색하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평가 기준이 굳건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발사체를 포함해서 우주 분야에서 실패는 매우 당연하고 빈번한 일이다. 우주 선진국에서도 성능이 입증된 발사체라 할지라도 발사 시도 때마다 성공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해외 발사서비스 업체와 계약을 할 때도 발사 성공률이 중요한 결정 요인 중 하나가 된다. 우리나라는 이제 겨우 한 번 발사 시도 했을 뿐이다.
실패를 실패라고 담담하게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실 과학자의 일상은 매일이 실패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과학자가 가장 잘하는 일이 바로 ‘시행착오’이다. 수많은 반복 실험을 통해서 조금씩 나아지는 일이 바로 과학자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실패의 ‘경험’이 누적되지 않으면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데이터’가 쌓이지 않는다. 과학자는 데이터로 말하는 사람들이다. 과학자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과학자들에게 실패를 용인하는 성숙한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발사 실패 직후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연설을 통해 “발사체를 700 고도에 올려 보낸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며 우리가 우주에 가까이 다가간 것”이라고 말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 나로호 때는 발사 실패에 대한 발표를 해야 할 당사자들이 서로 하지 않겠다고 미룬 적이 있기 때문이다. 실패의 책임을 묻는다면 과학자들은 사실 제자리에서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누리호의 발사는 성공 여부보다 대한민국이 우주탐사라는 긴 여정의 출발점에 이제라도 서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성과로 보아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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