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보험 개혁 더 미루지 말라"...인구 변화가 보내는 경고

입력
2021.11.09 04:30
14면

편집자주

※우리 사회의 출생아 수 감소와 고령자 수 증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빠릅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구쇼크’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미래가 예상되고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경제학자이자 인구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 단위로 화요일 연재합니다.


국민연금공단에서 고객이 상담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민연금공단에서 고객이 상담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lt;28gt;본격화된 저출산의 위협 ‘위험해진 사회보험’

물구나무서기는 넘어질 수밖에 없다. 아래는 가볍고 위가 무겁다면 버텨 낼 재간이 없다. 분수도 가분수보다 진분수가 안정적이다. 인구도 마찬가지다. 성별·연령별 인구구성을 그래픽화한 인구피라미드는 삼각형일 때 사회유지를 위한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고도성장을 견인해온 인구보너스의 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피라미드 같은 삼각형은 애시당초 끝났다. 아직은 거대한 중년인구가 유·노년을 떠받치는 방추형(위·아래가 좁은 원통형)이나, 곧 역삼각형으로 전환된다. 감사원의 인구정책 감사결과 수정된 미래예측을 보면, 한 세대 후인 2047년이면 역삼각형이 한층 뚜렷해진다. 최근 4~5년의 충격적인 저출산을 반영하면 역삼각형의 하중부담은 버텨 내기 힘들 정도다.

사회근간은 세대부조로 완성된다. 중년세대가 자녀양육·부모봉양을 책임지는 가족체계처럼 일하는 현역인구가 취약한 고령·유년인구를 떠받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생산가능인구의 탄탄한 유지공급을 국력의 기본토대로 본다. 반대로 출생에 따른 인구공급이 적어지면 위기신호로 해석된다. 수명연장의 초고령화까지 반영하면 부양부담의 무게·범위는 한층 가속화된다. 사회근간이 뿌리째 흔들린다는 뜻이다. 우선적인 갈등지점은 세대부조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인 복지훼손에서 시작된다. 한국이 자랑하는 5대 사회보험 모두 보험료는 줄고 급부비는 늘기 때문이다. 내는 건 적고, 받는 게 늘면 유지불능은 당연지사다. 당면한 삶을 뒤흔들 인구변화의 심각한 후폭풍이다.

여가 생활을 즐기고 있는 노부부. 게티이미지뱅크

여가 생활을 즐기고 있는 노부부. 게티이미지뱅크


경고등 켜진 5대 사회보험의 본격위기

이미 세대부조형 사회체계는 위험수위를 넘겼다. 파괴적인 저출산이 인구구조를 급속도로 가분수화시켰기 때문이다. 시점의 문제일 뿐 넘어지는 건 예고된 상태다. 실제 5대 사회보험 가운데 재정악화에서 비켜선 건 하나도 없다. 그나마 국민연금이 아직은 ‘보험료gt;급부비’로 흑자지만, 적자전환과 기금고갈의 타이밍은 갈수록 앞당겨진다.

시점단축은 추계 때마다 반복된다. 최근 본격화된 베이비부머의 대량은퇴도 지급불능의 연금위기에 직면했음을 뜻한다. 연평균 85만 명의 1955~75년생(1,700만 명)이 향후 20년에 걸쳐 새롭게 연금수급자로 가세한다. 특히 상당수는 고액수급일 확률이 높다. 가입기간이 긴 데다 만액조건을 두루 갖춘 건 물론 소득비례로 보험료 자체가 높다. 정규직에 맞벌이면 더더욱 되돌려줄 수급비는 증액된다. 푼돈에 불과해 용돈연금으로 불리던 예전의 국민연금이 아닌 것이다. 지금 쌓고 있다고 안심해선 곤란하다. 댐을 무너뜨릴 작은 틈일 때 보강작업을 서두르는 게 맞다.

국민연금 적립금은 908조 원에 달한다(2021년 2분기 말). 세계 3대 연기금에 속하는 엄청난 기금규모다. 2022년 예산안(604조 원)보다 많다. 다만 30여 년 후면 1,800조 원까지 육박하다 가파르게 소진될 전망이다. 쌓는 건 완만해도 주는 건 급경사라 정점 이후 10여 년을 버텨 낼지 염려스럽다.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작업을 미룰수록 붕괴압박은 당겨질 수밖에 없다. 솔직히 털어놓고 고통분담을 일궈내도 장기지속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판에 지금처럼 회피해선 그 끝은 뻔하다.

건강보험조차 갈수록 난항세다. 팬데믹 후 진료행렬이 줄며 최근 반짝 흑자를 내고 있지만, 장기추세는 적자가 확실시된다. 정상화되면 다시 적자전환(2018년)이 불가피하다. 최근 보험료가 늘어도 적립금은 줄어드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 급격한 고령화 탓에 장기요양보험은 2017년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고령인구를 중심으로 간병·의료수요가 급증한 결과다. 1,700만 베이비부머의 유병노후 분기점(±75세)까지 10여 년이나 남았는데도 벌써 고령특화의 장기요양보험이 적자란 건 중대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사실상 모든 사회보험의 유지불능은 시작됐다.

세대 간 갈등. 게티이미지뱅크

세대 간 갈등. 게티이미지뱅크


복지제도의 개혁압력과 파괴적 후폭풍

유지불능이면 지속가능을 논의·실험하는 게 상식이다. 세대부조형 사회체제의 재구성 미션이다. 많은 노력을 했으나, 아쉽게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일각에선 직무유기란 격한 평가까지 내린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더는 곤란하다. 매년 세계기록을 깨는 압도적 꼴찌의 초저출산은 이미 세대부조를 못 믿는 청년세대의 날선 공격과 같다.

신음해도 무시하니 나홀로 잘사는 새로운 삶을 찾는다. MZ세대에게 사회보험은 해괴한 외상장부이자 기묘한 부양숙제일 따름이다. 근본적인 대개혁 없이 미래주인을 설득할 논제는 없다. 괴롭고 성가신 일이나 회피할 여유도 없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타이밍이다. 정치·정책당국은 ‘실리 vs. 명분’을 재검토하되 개혁방향이 ‘지속가능성’임을 잊어선 안 된다. 시간이 없다. 사회보험(보험·연금)의 재정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된다. 빚잔치는 추계보다 한층 앞당겨진다. 2~3년 후면 버텨 왔던 건강보험·장기요양보험의 기금고갈마저 가시화된다. 2020년 연금(국민·공무원·군인·사학연금)·보험(건강·고용·산재·장기요양)에만 19조 원의 세금이 지원됐다. 본인부담의 사회보험이라 재정지원의 이유가 없음에도 안 주면 버텨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2022년 대선 이후 관련개혁은 본격화할 전망이다. 5년 단임의 대통령제를 볼 때 막강한 권력이 발휘되는 1~2년차가 아니면 힘을 받기 어렵다. 단 복지개혁을 위한 리더십의 의지·능력이 있을 때의 시나리오다. 수술방에 들어가면 어영부영해선 곤란하다. 저항조직·반발세력에 휘둘려도 패착이다. 확실한 스케줄과 섬세한 개혁안으로 강력하고 우직하게 신시대형 세대부조 복지시스템을 갖추는 게 좋다.

연금은 일원화(국민+직역) 후 고부담·저급여에 맞춰 평평한 부담·수급체계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 보험은 비용(본인부담)과 혜택(잠재위기)을 설득적으로 매칭해 고갈압력에서의 구조적 탈피가 권유된다. 필요하면 연령을 세분화한 부담·급여의 단계별 적용방식도 바람직하다. 정년연장 및 고령기준의 조정과제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하나같이 쉽잖은 정책과제다. 손쉬운 개혁이었다면 지금껏 방치됐을 리 없다. 그만큼 만만찮은 후폭풍을 낳는 이슈다. 표를 잃는 일이라 미루기만 해왔던 폭탄돌리기는 끝낼 때다. 유지만 된다면 세대부조형 사회보험은 괜찮은 아이디어다. 인구증가·고도성장의 시절을 떠받친 일등공신이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 보험을 꼽듯 사회공조는 개인불행을 이겨낼 몇 안 될 묘책이다.

지속가능한 세대부조의 전제조건

사회부조가 세대전쟁의 격전지로 전락했다. 노청(老靑) 간은 공경·자애보다 외면·질타에 익숙하다. 바통 교환의 계주경기로 달려온 사회를 제각각의 딴짓이 매섭게 위협한다. 바통을 쥔 기성세대는 줄 생각이 없고, 받아야 할 후속주자는 라인 자체를 벗어난다. 집값 사태처럼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사회의 비효율을 낳는 구조다.

정책단위의 중재·유도가 시급하다. 2019년 특별추계의 데드크로스(출생·사망 역전) 현실화는 세대부조의 불능경고가 10년(애초 2029년)이나 앞당겨졌음을 보여줬다. 지금처럼의 인구변화라면 100년 후(2117년) 총인구가 1,510만 명까지 쪼그라든다고 덧붙인다. 바통 단절은 사회붕괴를 뜻한다. 복지대국까진 아니나 기능부전에 빠진 세대부조형 안전장치의 개선·보완은 필수다. 개별대응으로 맡겨본들 상황은 마뜩찮다. 자원배분의 왜곡과 신뢰자본의 손실만 낳는다. 향후 2~3년은 지속가능한 세대부조를 위한 마지막 기회다. 세대부조 없는 사회구조는 없다. 선진국 대부분이 사회보험과 인구대책을 최우선 통합의제로 채택한 이유다.

무엇보다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이대로면 사회보험이 멈춰 선다는 공감에서 개혁작업은 시작되는 게 옳다. 5대 사회보험은 본인부담·본인수급이 원칙이다.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서비스·공공부조의 최소안전망(National Minimum)은 몰라도 연금·보험은 신중한 혈세투입이 좋다.

인구구성의 노청 역전이 세대부조를 훼손한다고 세금으로 메우면 속 편한 포퓰리즘과 같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계속될 수 없다. 또 퍼주기는 쉬워도 메우기는 어렵다. 결국 정부개입보단 제도개혁이 상식이다. 쌓아서 받아가는 적립식이 힘들면 보험료·급부비를 맞춘 부과식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요율인상도 마찬가지다. 얘기인즉슨 세대별 유불리를 정밀히 배분하라는 뜻이다. 동시에 기금관리용 구조조정부터 보장수준·부정회피를 위한 균형회복도 요구된다. 사회보험은 근로소득과 비례하기에 길게는 성장동력의 지속확보도 필요하다. 빡빡해진 호구지책에 사실상의 증세(사회보험=준조세)까지 더해지면 세대부조는 더 힘들어진다. 영국처럼 사회투자를 통한 복지산업화가 잠재후보다. 흔들리는 사회보험은 인구변화가 던진 실체적 당면위협이다. 지금 응급실엔 근본수술 없는 대증요법으로 내성을 키워 온 환자가 누워 있다. 현명한 의사의 확실한 판단이 간절하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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