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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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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문학의 가장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4번째 주인공 찾기에 나섭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이렇게 살아야만 한다’는 식으로 바람직한 삶의 방식을 주입하려 하거나 모든 삶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식의 밑도 끝도 없는 희망과 믿음을 전도하려는 이야기는 얼마나 차고 넘치는가. 이는 제각각인 삶의 양상과 방식을 평평하게 만들어 개인의 절망을 심화하는 역효과를 낳는 자기계발서 부류의 이야기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김혜진의 소설은 노숙자, 성소수자, 노동자, 그리고 재개발 지역 원주민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에 주목하면서 우리 사회의 주변부를 다각도로 탐색해왔다. 이러한 그의 소설적 작업에서 특징적인 점은 사회의 중심과 가장자리를 이분하는 현실적 힘의 작용과 논리를 문학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의 소설은 현실을 개별적인 것, 개인의 생활로 치환하고 제각각 시시각각 일어나는 문제에 천착하는 방식으로 우리 사회의 계급과 젠더의 폭력성이 얼마나 복잡다단하게 작용하는지를 암시한다. 약자와 소수자라는 사회적 분리와 호명을 거부하고 ‘나’와 ‘너’라는 본질적이고도 개별적인 관계성을 통해서 공동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면서도 이미 항상 드러난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중인 사건에 주목하는 시선은 흔치 않다.
이런 이야기 방식에는 생활이라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문제를 우리라는 관계성 가운데에서 되짚어보면서 보편적 현실을 사유하고 전망하는 일이 손쉽게 어떤 낙관이나 비관에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과 태도가 내장되어 있다. ‘너’를 관찰하는 데에서 빚어지는 ‘아주 조금의 거리감’은 자기 자신의 삶을 진술하고 묘사하는 일이 초래하기 쉬운 몰이해로부터 자유로운 채로도 삶에 대한 구체적인 애정을 확보하는 것이다.
김혜진의 소설은 누구나의 삶이 더 나은 것이 되기 위해서는 ‘너’와 ‘생활’의 결합과 효과, 혹은 ‘너’라는 존재의 자리가 곧 나의 ‘생활’이 펼쳐지는 공간이 되는 일에 대한 지극한 관찰과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다는, 작가이자 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인 윤리를 힘주어 쓴다. 유례없는 팬데믹 시대를 지나오면서 나의 삶이 셀 수 없이 다양한 가지로 너의 삶과 관계 맺고 있음을, 누구도 사회가 발명한 온갖 차별과 혐오와 배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우리는 경험했다. 이제 다시 ‘너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질문하는 이야기에 새롭게 주목할 때이다. 우리는 여기에 대답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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