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쇼핑족의 명절 블랙프라이데이와 복싱데이

입력
2021.11.08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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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하는 것을 '쇼핑'이라고 정의할 때, 품질이 좋은 물건을 되도록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이 그 목표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실용적인 이유로 시작된 쇼핑이 대상을 싸게 만날 수 있는 여러 가지 통로를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재미도 느끼게 된다. 마치 이동의 수단인 자동차의 운전이 그 자체로 스릴을 즐기게 되고, 밥상에 올릴 물고기를 잡는 행위가 낚시라는 여가 활동이 되어버렸듯이 말이다. 특히 해외에 살게 되면 사뭇 다른 소비 체험을 할 수 있고, 나라마다 특산품이 있어 마음이 설렌다.

고품질의 상품들을 원가보다 낮게 살 수 있는 경로는 많은데, 일단 시내에 있는 매장보다는 근교의 아웃렛 몰(영국 옥스퍼드 근처 비스터 빌리지, 미국 뉴욕 근교 우드베리 등)을 이용하면 된다. 또 미국 백화점들은 자체 아웃렛 매장(노드스트롬 랙 등)에서 신상품이 아닌 물건들을 저가로 팔고 있다. 동네마다 브랜드 상품들을 할인가격으로 판매하는 티케이 막스(영국), 티제이 막스(미국) 등도 알뜰쇼핑객을 위한 참새방앗간 같은 곳이다.

소위 '패스트(fast)' 패션을 이용하는 것도 똘똘한 방법이고, 최신 유행의 상품이 마치 패스트 푸드처럼 빠르게 제작되어 소량씩 값싸게 유통되는 것이 그 특징이다. 대표적인 브랜드로 스페인 출신 아만치오 오르테가가 1975년에 설립한 자라(Zara)가 있고, 유럽시장이 가까운 포르투갈, 모로코 등에서 물건을 생산한다. 이제 아일랜드 회사 프라이마크(Primark가이 선두인 '패스터(faster)' 패션도 등장하였는데, 2000년대 초반 유럽에서 성공을 거두어 2015년 미국에까지 진출한 이 회사는 저임금 나라들에서 생산을 하다가 1,1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붕괴 사고(2013년)로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프라이마크는 거액의 보상금 지급과 함께 안전문제 개선을 약속하였고, 참사가 일어난 이듬해에 판매량은 급증하게 된다.

알뜰쇼핑객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연중 축제처럼 성대하게 치러지는 세일이다. 영국에서 일 년 중 가장 유명한 세일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12월 26일 복싱데이(Boxing Day)다. 이날의 기원으로, 과거 영국에서 성탄절 당일 부유층을 위해 일하던 일꾼들이 다음 날 자기 가족과 크리스마스를 지내러 떠날 때 주인들이 상자 안에 선물을 넣어 주었다고 한다. 미국에는 추수감사절(11월 네 번째 목요일) 이튿날인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가 있다. 이 단어의 유래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과 차량들을 묘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제는 아마존(Amazon)을 비롯한 온라인 쇼핑이 급부상하면서 기존의 오프라인 매장은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들을 강구하고 있다. 미국의 백화점 메이시스(Macy’s)는 수백 개 점포의 문을 닫고, 여타의 쇼핑몰들도 레스토랑과 영화관 등 '경험'을 파는 가게를 더 입점시키고 있다. 알뜰쇼핑의 '알뜰'을 강조하다 보면 돈을 쓰지 않는 것이 답이라는 논리적 귀결에 도달하게 된다. 물건을 새로 사기보다는 집에 있는 것을 손질해 재활용하는 방법 등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독일의 패션 디자이너 질 샌더의 '덜 사고 더 생각하라(Buy less, think more)'는 머리에 새겨야 할 명언임에 틀림없다.


김윤정 ‘국경을 초월하는 수다’ 저자ㆍ독일 베를린자유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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