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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주민 희생양 삼는 혐오시설...엄연한 사회적 차별

입력
2021.11.05 17:00
수정
2021.11.05 18:2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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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한국일보 공동주최 포럼]
공장·소각장 주민들의 분노 "영향 없다는 정부 결론, 죽을 때까지 피해 보란 의미"
가습기살균제·석면 피해자들의 고통 "병원비 등 지원 미비, 사는 게 고통"


3개 소각로 인근 주민들의 집단암 발병이 있었던 충북 청주 북이면 장양1리에서는 주민이 떠나 폐허가 된 빈집을 흔히 볼 수 있다. 청주=홍인기 기자

3개 소각로 인근 주민들의 집단암 발병이 있었던 충북 청주 북이면 장양1리에서는 주민이 떠나 폐허가 된 빈집을 흔히 볼 수 있다. 청주=홍인기 기자

"환경오염과 가습기살균제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하겠습니다."

5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제7회 사회적 참사 피해지원 포럼(환경오염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실태 및 지원방안)은 희생자를 기리면서 시작됐다.

포럼을 주관하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한국일보가 8월 30일부터 10월 7일까지 총 8회에 걸쳐 연재한 '국가가 버린 주민들' 기획 보도에 공감해, 본보에 공동주최를 요청해 성사됐다. 질병과 싸우면서도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오염지역 주민들의 사례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황전원 사참위 지원소위원장은 "가습기살균제뿐 아니라 환경오염으로 인한 질환을 지원하는 좋은 대안이 나오는 자리였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황전원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 지원소위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환경오염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실태 및 지원방안 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황전원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 지원소위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환경오염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실태 및 지원방안 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날 포럼에는 인근 공장·소각로의 오염물질로 집단 암 등이 발병했다고 호소하는 충남 천안 장산5리와 충북 청주 북이면의 주민들, 가습기살균제와 석면 피해자들의 피해 사례 발표가 있었다. 정부로부터 환경오염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인정받지 못했거나 인정을 받았는데도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는 이들이다. 피해자들은 이전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데도 정부는 피해자를 '방치'한다고 입을 모았다.

천안 장산5리 주민 강원돈씨

5일 사회적 참사 피해지원 포럼에 참석한 강원돈씨가 발언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5일 사회적 참사 피해지원 포럼에 참석한 강원돈씨가 발언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제가 사는 마을은 매봉산, 바락산이 둘러싸고 아우내라는 유명한 강이 앞에 흐르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오랫동안 장수마을로 알려졌지만 1997, 2004년에 인근 공장이 들어서면서 주민들이 환경성 질병으로 추정되는 암과 혈소판 감소, 갑상선 질병 등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37명의 주민이 사는데, 12명이 암 환자이고 다른 질병 환자도 매우 많아요. 한 집 건너 한 집이 암 환자인 셈입니다.

지난해 주민들이 건강영향평가를 해달라는 청원을 냈고, 환경부의 실태조사가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조사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무슨 조사를 하는지도 모릅니다. 민관합동조사협의회라고 조사과정을 모니터링하는 협의체가 있는데 마을 이장이 혼자 참석합니다.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가면서 주민 의견을 내야 마땅하지만, 정부로부터 협의체에 들어갈 전문가를 추천하라는 안내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실태조사 과정도 믿기 어렵긴 마찬가지입니다. 공장의 오염물질이 20여 년 동안 정기적으로 배출, 마을에 축적됐을 텐데 이를 확인하기 위한 식물표본조사도 없었습니다. 주민들이 항의하고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이후에야 환경부로부터 추가조사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마을의 지리적인 특성을 고려하기는커녕 장산5리에서 20㎞나 떨어진 지역의 기상관측 자료를 활용해서 대기오염도를 측정하기도 합니다.

환경부 담당자는 규정대로 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알량한 규정을 앞세워 지금처럼 실태조사를 진행한다면 결국 환경오염과 주민건강의 인과관계는 '알 수 없다'라는 결과가 나올 것이 뻔합니다. 실태조사 방법의 정비를 국가 차원에서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이라면 법을, 규정과 매뉴얼이 이렇다면 이를 현실에 맞게 보완해야 합니다."

청주 북이면 주민협의체 유민채 사무국장

청주 북이면 유민채 주민협의체 사무국장이 북이면 주민들의 피해를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청주 북이면 유민채 주민협의체 사무국장이 북이면 주민들의 피해를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북이면의 작은 마을에서 7년째 이장을 맡고 있습니다. 올해 5월 소각장과 지역 주민 건강 사이의 인과성을 밝히는 정부 최초의 건강실태조사로 주목을 받은 지역이지요. 아시다시피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주민들 몸속에서는 소각 시에 나오는 1군 발암물질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나 유전자 손상지수가 굉장히 많이 나왔어요. 체내 카드뮴 수치는 전국 평균의 8배라고 합니다. 소각장 인근 1~2㎞에 사는 주민은 20, 30배가 나온 경우도 있는데도요. 주민들을 무시한 발표입니다.

하나의 소각장마다 피해 영향권은 전방 5㎞라고 합니다. 북이면은 3개 소각장이 몰려 있다 보니 영향권에 이중 삼중으로 든 지역이 많습니다. 시설별 오염물질 배출 기준을 지켰더라도 의미가 없는 이유죠.

2000년대 초반부터 입지가 좋고 땅값이 싼 지역에 소각시설이 밀려들면서 농촌을 희생양 삼고 있습니다. 지역주민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정책은 거의 없어요. 혐오 시설이 들어올 때 행정기관 허가만 받으면 그냥 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소각시설 3개가 들어오는지도 몰랐습니다. 어떤 위험이 있는지도 모른 채 피해만 고스란히 보고 있습니다.

이는 엄연한 사회적 차별입니다. 환경부의 관련이 없다는 결론은 지역주민들을 더 절망스럽게 만들었고, 죽을 때까지 피해를 보라는 의미나 다름없습니다. 오염지역이라는 낙인이 찍혀 농산물 유통도 어려워졌고 설상가상으로 땅값이 저평가되면서 공장 유입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병에 걸려 죽어간 주민들에 부채 의식과 책임 의식을 가져 주십시오. 북이면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김경영씨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인 김경영씨가 피해 구제가 미뤄지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인 김경영씨가 피해 구제가 미뤄지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저는 가습기살균제로 어머니와 아이를 하나 잃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 중에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례는 저와 살아 있는 딸 둘뿐입니다. 지금은 초등학교 6학년이 된 딸은 배 속에 있던 무렵부터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날까지 13년 동안 투병하는 셈이죠.

저뿐 아니라 피해자들은 모두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이상 관련 질환을 앓아 왔습니다. 피해 신고자 7,500여 명 중 구제를 인정받은 숫자는 4,000여 명 정도입니다. 지난해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 제·개정이 있었고, 법 안에서 구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죠. 그렇지만 사실상 구제다운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제라면 최소한 ‘현상유지’는 돼야 하는데 병원 가서 치료받을 병원비조차 제대로 지원이 안 됩니다.

정부는 피해지원 여부를 판단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의료급여 지원은 2023년부터 검토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지금은 2021년인데요. 당장 나가는 병원비조차도 이렇게 긴 시간을 거쳐서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습기살균제 특별법 개정으로 이전의 심사에서 탈락한 피해자 6,000여 명의 개별심사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는데 1년이 지난 지금 대상자 중 200여 명의 심사만 완료됐습니다. 2023년 12월까지 개별심사를 마치겠다는 환경부의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요.

가습기살균제 논의는 2011년에 시작됐고, 10여 년이 흘렀습니다. 2017년에 구제관련 법이 생겼는데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지원 체계가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후퇴합니다. 법이 개정되면서 바뀐 법에 따라 재심사를 한다면서 모든 급여 지급을 중단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행정부는 '업무량이 늘었다'라는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피해자의 구제는 전혀 이뤄지지 않습니다. 민사 소송을 진행 중인데, 소송에 필요한 서류 한 장 받는 데도 수개월이 걸립니다. 피해자의 알 권리는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습니다."

석면 피해자 이성진씨

석면 피해자인 이성진씨가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석면 피해자인 이성진씨가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1991년생인 저는 석면 슬레이트로 이뤄진 집에 19년간 거주했습니다. 집뿐 아니라 학교, 학원 모두에 석면 자재가 들어가 있었죠. 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석면과 마주한 결과 2010년 환경성 석면암 악성중피종 진단을 받았고, 항암치료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왼쪽 폐를 잘라냈고, 앞으로는 폐 한쪽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수십번의 방사선, 항암치료는 고통스러웠습니다.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로 참혹했습니다.

석면으로 인한 질환은 미래를 앗아가는 질병입니다. 투병생활을 마쳐도 회복기간이 필요하고, 치료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어렵습니다. 통증도 계속돼 수술 이후 8년간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석면 질환자는 원인 미상의 통증, 우울증 등의 합병증에 시달려 경제적, 사회적 활동을 하기 어렵습니다.

석면 피해자들은 말합니다. 석면질환자 인정률은 69%로 10명 중 3명은 불인정되고, 세계보건기구(WHO)가 석면 암으로 인정하는 후두암, 난소암 등도 국내에서는 석면질환으로 치지 않습니다. 요양생활수당도 직업성 산재보험금의 20%에 불과합니다. 평생을 질환에 시달리는데 석면폐 2~3급의 경우 요양급여는 2년만 지급됩니다. 석면 피해인정 유효기간도 5년뿐(추후 갱신 필요)인데 10년으로 늘려야 합니다.

사실 저는 제가 이날까지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20대를 꼬박 투병으로 보내면서 경제활동은 고사하고 사회 복귀조차 막막합니다. 석면 피해자들은 모두 공감할 겁니다. 석면피해구제법이라는 대책이 있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괴로움 속에 있습니다. 피해자는 터무니없는 보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한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을 발판으로 더 나은 석면피해 구제 제도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전혼잎 기자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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