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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20년대를 풍미한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네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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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아방가르드는 하나의 경향이 아니었다. 하나의 그룹도 더욱이 아니었다. 다양한 주제와 기법 그리고 차별적 정신의 종합체였다. 그 이름만 나열해 보아도 알 수 있다. 신원시주의(Neo-primitivism), 광선주의(Rayonnism), 절대주의(Suprematism), 구성주의(Constructivism)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복합체의 운동을 하나로 꿰는 심지가 무엇이었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혁명의 시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는 ‘동시대성’이라는 키워드와 그 시대를 관통하는 ‘도전정신’으로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고립된 전위가 아니었다. 유럽으로부터 들여온 인상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 미래주의 등과 연대하며 지평을 넓히고 있었다. 그중 미래입체주의(Cubo Futurism)나 추상미술(Abstract art)은 유럽 모더니즘과 연대하며 꽃을 피운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결실들이다.
신원시주의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시작이었다. 나탈리야 곤차로바와 미하일 라리오노프가 주도했으니 이들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부부이기도 했던 이들은 러시아 이콘화에서 영향을 받아 태동한 대중 판화이자 민속화인 루복에서 조형예술의 현대적 가능성을 발견했다. 곤차로바의 '추수꾼들(1911년작)'은 과거 속에서 새로움을 찾고자 했던 신원시주의의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작의 하나다. 왜곡된 형태와 도식화된 표현 그리고 대담한 색채는 이콘화의 형식에서 온 것이다. 평면으로 처리된 붉은색과 초록색의 시각적 긴장은 종교적 주제와 혁명의 정신을 반영하는 듯하다. 신원시주의는 선조들의 과거에서 찾은 미래의 청사진이었다.
광선주의는 빛을 그린 작가들의 작품 경향이었다. 이 또한 신원시주의에서 출발한 라리오노프와 곤차로바에 의해 주창되었다. 그 내용은 빛의 인상을 화려한 색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 인상주의와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작가는 빛에 노출된 대상이 아니라 대상으로부터 반사되어 나오는 빛을 표현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표현 방식도 반사된 빛 자체를 역동적인 선으로 나타내는 데 치중했다. 라리오노프의 '수탉(1913년 작)'은 ‘빛의 선묘’라는 새로운 추상의 영역을 암시하는 대표적 작품이다. 그의 광선주의는 동토 러시아의 빛이자 그 빛 아래 존재하는 것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였다. 대상의 외형에 대한 시각적 감흥에 충실했던 인상주의의 그것과 비견되는 성취였다.
절대주의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적자였다.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주도한 절대주의의 대표작은 잘 알려진 것처럼 정방형 캔버스에 검정 사각형 하나를 그린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절대주의가 러시아 이콘에서 연유된 것임을 밝히며 검정 사각형을 ‘이콘의 현대적 발현’이라 명명했다. 절대의 도상으로서 검정 사각형 안에는 동방 정교회가 지속해 온 종교와 그 종교의 은총으로 생명과 삶을 유지해 온 러시아인들의 치열한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말레비치는 유럽에서 들여온 모더니즘의 경향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따라서 그의 검정 사각형 안에는 인상주의에서 야수주의와 입체주의를 거쳐 추상으로 이어지는 모더니즘 미술사 또한 농축되어 있다. 비어 있음으로 충만한 공(空)의 세계를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일까.
구성주의는 가장 동시대적인 아방가르드 운동이었다.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혁신적 운동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구성주의자들은 예술을 생산활동의 한 형식으로 보고 산업기술과 예술을 융합하고자 했다. 블라디미르 타틀린과 알렉산드르 로드첸코가 주인공들이다. 최근 ‘구축주의’로 고쳐 불리기도 하는 구성주의는 철판, 나무조각, 노끈, 벽지 등의 오브제를 3차원 공간에 설치하는 방식을 택했다. 공간에 조형된 재료들은 어떤 것도 재현하지 않은 채 물질적 속성 자체를 드러낸다.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1919~1920년 작)'은 구성주의를 건축적 구조물로 표상한 대표작이다. 두 개의 철제 골조가 나선형으로 상승하는 이 거대한 건축물은 실행되지 못했지만 현재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 축소 모형탑으로 전시되고 있다.
신원시주의에서 구성주의로 이어지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행보는 혁명의 시대가 낳은 결실이자 도전정신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정권의 강화와 더불어 아방가르드는 점차 생산의 도구로 변질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퇴폐예술로 낙인찍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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