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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과 3류가 다르다는 걸 정치인만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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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서야 생각해보건대 내가 대학생이던 10년 전은 멘토들의 시대였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청춘콘서트를 기획하고 추진한 안철수 당시 서울대 교수와 '시골의사' 박경철 선생은 단연 돋보이는 인물들이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심지어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이 청년들과 마주 앉아 직접 그들을 위로하고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었다는 점에서 청년들은 이들에게 열광했다. 이후 청춘콘서트는 하나의 시대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고, 교수·정치인·종교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이 멘토의 대열에 합류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세상사에 냉소적인 편이다. 그래서 위로나 힐링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을 갖는다. 하지만 그런 게 불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앞이 안 보이는 인생에서 누군가 방향을 제시해주고 용기를 북돋워 준다는 건, 그 자체로 유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2010년대 초반, 대학생이었던 나와 또래 친구들이 멘토들에게 바란 건 그런 거였다. 기댈 수 있는 어른이 필요했던 것이다.
10년이 지나니 이제는 내게 인생을 묻는 동생들이 많아졌다. 군대에 가고 진로를 정하고 취업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묻는다. 나라고 뭐 사회적으로 빛나는 성취를 이룬 건 아니어서,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롤 모델을 찾는 게 좋겠다"고 제안한다. 롤 모델은 그 자체로 방향을 제시해주는 까닭에서다. 하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건 "닮고 싶은 인물이 없다"는 개탄뿐이다. 생각해보니 그 시절 우리가 선망했던 멘토의 얼굴과 지금 그들의 얼굴이 참 많이 달라져 있다. 적잖은 멘토가 정치에 도전했다가 밑천이 드러났고, 말과 다른 삶이 알려지면서 민심을 잃었다. 멘토가 사라진 시대. 이건 각자도생 사회의 또 다른 이름이다.
가뜩이나 막막한데 희망을 말해주는 어른이 없다는 건 서글프다. 어쩌면 이런 절망감이 위선과 내로남불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속에는 상실과 배신감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다. 하지만 어른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신호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청년 잡는답시고 우스꽝스러운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같잖은 사진을 들이민다. B급과 3류는 엄연히 다르다는 걸 그들만 모른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드는 감정은 '이 사람이 우리를 졸로 보나' 하는 모멸감뿐이다.
2016년 미국 대선 정국에서 청년들에게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후보는 화끈한 트럼프도 여성인 힐러리도 아닌 백발 노인 버니 샌더스였다. 올 1월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도 등산복과 두툼한 털장갑을 끼고 나와 화제가 된 샌더스는 사실 외형으로만 봤을 땐 청년과 거리가 먼 정치인이다. 그가 중앙 무대에 우뚝 섰던 2015년에도 20대 청년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를 두고 여러 분석이 나왔다. 평생 소외계층을 대변해 온 정치 역정부터 미국의 불평등을 이야기하는 시대정신까지 내용은 다양했다. 그러나 본질은 하나였다. 미래를 가리키며 희망을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주요 정당의 경선이 모두 끝났다. 이제 청년층을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허나 이들의 환심 사겠다고 허접한 공약과 이벤트를 보여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기댈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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