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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박근혜에 칼 겨눈 '강골 검사' 윤석열, '보수의 보스'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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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5일 제1 야당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된 윤석열을 설명하는 유일무이한 키워드다. 아홉 차례 도전 끝에 겨우 사법시험 문턱을 넘었지만, 27년 동안 원칙을 목숨보다 소중히 지키며 강골 검사로 살았다고 자부한다.
전임 정권의 배척 속에 꺼져가던 검사 윤석열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급기야 조직의 수장 자리를 내준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해 그가 다시 칼을 겨누게 된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제 그는 검찰총장 직에서 중도 사퇴한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내년 3월 여권 대표 이재명 후보와 대권 승부를 겨룰 참이다. 수줍기만 하던 덩치 큰 소년이 우여곡절 끝에 법조 엘리트로 성장하고 다시 대선후보로 변신하기까지, 윤석열의 60년 삶의 진자(振子)는 안정과 변화 그 어느 지점에서 끊임없이 움직였다.
시쳇말로 어린 윤석열은 ‘엄친아’ ‘범생이’였다. 교수 부모 밑에서 금수저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족함 없이 자랐다. 윤 후보는 1960년 서울에서 윤기중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명예교수와 최정자 이화여대 교수 부부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넉넉한 가정환경 덕에 유년시절 배인 여유와 끈기, 원칙 중시 등은 대광초, 충암중, 충암고, 서울대 법대를 거치며 그의 인생 궤적을 아우르는 특유의 기질이 됐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운동장 10바퀴를 돌라”는 선생님의 불호령에 친구들은 꼼수를 부려도 홀로 끝까지 지시를 따랐다고 한다. 동창들의 미화가 겹쳤을 수도 있지만, 정해진 룰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고집은 이미 소년기에 완성됐다는 평가가 많다.
윤 후보의 가치관 정립에 가장 많은 자양분을 제공한 이는 아버지다. 부친 윤 교수는 자유주의 경제의 기본 취지와 원칙만 제대로 준수해도 경제력 집중과 불평등 해소가 가능하다고 설파한 대표 경제학자로 꼽힌다. 평생 법조인으로 살았지만 정치 입문 이래 줄곧 자유주의 경제를 강조하는 것도 부친의 영향이 컸다. 서울대 법대 입학 기념으로 윤 교수가 선물한 책부터 신(新)자유주의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이 쓴 ‘선택할 자유’였다. 윤 후보는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도 이 책을 언급했다. 경선 과정에서 “부정식품이라도 없는 사람들은 그 아래 것도 선택할 수 있게, 더 싸게 먹을 수 있게 해줘야 된다”고 해 구설에 오른 것도 프리드먼의 이론이 바탕이 됐다.
청년 윤석열의 사회생활 시작은 한참 뒤처졌다. 대학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한 후 2차에서 떨어지고, 9년 연속 낙방해 사법연수원 동기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 서른을 훌쩍 넘긴 1991년에서야 사법시험(33회)에 합격했고 3년 뒤 대구지검에서 검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9년이나 낙방의 고배를 마신 탓에 그 기간 인간관계를 드러내는 일화도 많다. 8수생 시절 친구 아내의 입원으로 그 자녀들을 돌보기도 했고, 본인은 떨어졌지만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3차 면접을 못 볼 뻔한 동기 김선수 대법관을 위해 친구(이철우 연세대 로스쿨 교수) 아버지인 이종찬 의원을 찾아가 읍소한 일도 있었다. 자기 사람만큼은 확실히 챙기는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시 9수는 ‘집념’의 소산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서 맞붙은 홍준표 의원은 9월 대구 방문 자리에서 “윤 후보는 사시를 9차례 도전할 정도로 권력 집착이 강하다”고 했다. 고발사주 의혹으로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정치를 중도에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취지의 해석이었다.
출발은 늦었지만 검사는 천직이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 대검 중수2과장, 대검 중수1과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특수통으로 검찰총장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악연이 돌출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터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은 검사 윤석열의 인생 경로를 확 바꾼 변곡점이 됐다. 수사의 초점은 박 전 대통령 당선을 위해 국정원이 불법 댓글 공작을 했느냐는 것. 당연히 청와대는 탐탁해하지 않았고, 특별수사팀장 윤석열은 수사 방향을 두고 번번이 충돌하던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게 보고도 거른 채 국정원 직원들을 전격 체포했다가 ‘항명 파동’의 중심에 섰다. 그해 10월 국정감사에서는 “검사장의 외압이 있었다”는 폭탄선언과 함께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두고두고 회자될 명언을 남겼다.
추락은 예견된 것이었다. 정직 1개월 징계를 받고 수사에서 배제된 윤 후보는 대구, 대전 등 수사권이 없는 지방 고등검찰청을 전전했다. “윤석열이 언제 옷을 벗느냐”가 그 시절 서초동 술자리의 흔한 안줏거리일 정도였다.
박 전 대통령은 본의 아니게 그의 부활 도우미(?) 역할도 했다. 윤 후보가 2016년 12월 국정농단 특검팀에 합류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녹슨 칼 다시 벼려 환부 과감히 도려내기를”(이재명), “그가 돌아온다. 복수가 아닌 정의의 칼을 들고”(박범계) 등 훗날 적이 될 여권 핵심 인사들마저 칼잡이의 귀환을 격하게 반겼다.
사실 당시 윤 후보의 표적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었다. 박 전 대통령 등에게 430억 원 상당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이 부회장을 구속시켰다. 특검 수사를 이어 받은 검찰은 이듬해 3월 박 전 대통령도 잡아 넣었다.
결과적으로 진짜 악연 상대는 문재인 대통령일지 모른다. 현 정부는 윤 후보를 파격 대우했다. 2017년 5월 정부 출범과 동시에 그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혔다. 호흡도 좋았다. 청와대의 ‘적폐청산’ 외침에 부응하듯, 중앙지검은 다스(DAS) 의혹, 사법농단 의혹 수사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각각 구속기소 했다. ‘민간인 댓글부대’ ‘세월호참사 유가족 사찰’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등의 수사도 빠르게 진행됐다. 마침내 2019년 7월 윤석열은 검찰의 최종 보스 자리에 오른다. 전임 문무일 총장(18기)보다 5기수 아래였으니 엄청난 파격이었고, 2년여 전만해도 한직을 떠돌던 시련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란 말이 이토록 들어맞은 사례도 드물었다.
하지만 ‘허니문’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살아있는 권력에도 똑같은 자세가 돼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격려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실존 권력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전방위 수사가 결정타였다. 이어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의혹’ 등 청와대를 조준한 쉴 새 없는 수사에 권력도 결국 ‘윤석열 죽이기’ 카드를 빼 든다.
총대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멨다. 그리고 지난한 ‘추ㆍ윤 갈등’은 검사 윤석열을 정치로 이끈 결정적 계기가 됐다. 지난해 11월 그는 현직 검찰총장으론 처음 직무정지 및 징계를 당했다. 법무부는 징계위를 열어 윤 후보에게 정직 2개월 처분을 의결하기도 했다. 그는 행정법원에 이의를 신청했고 두 건 모두 인용되면서 윤석열이란 이름 석 자는 보수세력에 권력의 탄압을 온 몸으로 막아낸 ‘정권 교체’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 3월 여당이 검찰 수사권을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에 전부 넘긴다는 내용의 중수청 설치법을 발의하자 윤 후보는 “검찰에 남아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총장직을 던졌다. 대권 도전의 서막을 알리는 암시이기도 했다. 물론 최고의 자리가 아닌 여의도 신입생 윤석열에게 정치판은 녹록지 않았다. 그중 입만 열면 비판이 자판기처럼 줄줄이 터져 나오는 ‘설화’ 파동은 으뜸이었다. 당내 최대 경선 캠프를 꾸렸음에도 잇단 메시지 혼선 등 정치 신인의 한계도 노출했다. 그럼에도 정권 탈환의 적임자란 대의는 ‘2강’ 홍 의원의 거센 추격을 뿌리친 굳건한 버팀목이 됐다.
윤 후보는 소문난 애처가다. 2012년 52세에 문화예술 콘텐츠 제작ㆍ투자업체인 ‘코바나컨텐츠’의 김건희 대표와 띠 동갑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했다. 그는 2018년 한 인터뷰에서 “오래전부터 그냥 아는 아저씨로 지내다 한 스님이 나서서 연을 맺어줬다”고 말했다. 당시 김씨는 “고위공직자 부인이라고 전업주부만 할 순 없지 않느냐”면서 사회활동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다’. 대선후보 윤석열은 2022년 3월 9일 그의 인생에 어울릴 법한 이 성경구절의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정권에 당당히 맞선 강골 검사의 돌풍에 그칠지, 자신을 키워준 권력의 철옹성을 허무는 폭풍을 일으킬지, ‘윤석열의 시간’은 남은 125일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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