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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왜 대중음악 공연만 차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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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방에서 음향 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최근 2년 사이 빚이 2억5,000만 원 늘었다. 코로나19로 무너져 가는 회사를 막기 위해 밑 빠진 독에 계속 물을 부었다. 주로 음악 공연에서 음향 부문을 맡아 일하는데 고가의 음향 장비 리스 비용만 매달 1,000만 원 가까이 나간다. A씨가 있는 지역은 규정상 공연이 가능했지만 지자체와 여론이 막았다. 정부는 집합금지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니니 피해 지원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일반 자영업자들은 시위라도 하지만 우리는 여론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A씨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리스 비용을 내지 못해 장비를 회수 당한 업체도 있고, 공연이란 생업이 끊긴 뒤 수억 원의 빚을 감당하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도 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 뉴스에 언급되지 않았을 뿐이다. '대중음악 공연은 무조건 위험하다'는 정부 당국의 근거 없는 판단과 '이 시국에 무슨 공연이냐'는 여론에 대중음악 공연업계 소시민들의 삶은 지난 1년 8개월여 동안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공연 전문가들은 일용직 노동자가 되거나 실업자가 되거나 빚더미에 올랐다.
사람들의 마음은 과학의 논리보다 감정의 논리에 쉽게 움직인다. 마스크를 벗고 이야기하며 식사하는 식당과 카페가 마스크를 쓴 채 함성도 지르지 않고 박수만 치는 공연장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공연은 여가 활동이니 2년쯤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냐고 말한다. 물론 콘서트 한 번 안 한다고 스타 가수들의 생계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 공연을 준비하느라 몇 개월을 준비했던 수십 명의 스태프들이다. 그렇게 공연이 몇 차례 취소되면 그들의 삶은 조금씩 파괴된다.
공연 기획자인 B씨는 코로나19로 일감이 끊긴 상태로 버티다 지난해 말 직원을 모두 내보내고 폐업했다. 6년간 번 돈은 1년도 안 돼 허공으로 사라졌다. 실업자가 된 뒤론 일용직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B씨는 A씨와 같은 말을 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이 직업을 선택한 죄죠.”
식당과 카페 영업시간 제한이 사라지고 야구장에는 수천 명의 함성이 울려 퍼지지만 대중음악 공연만은 여러 제한과 보이지 않는 규제에 묶여 있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밥 먹고 차 마시느라 식당에서 마스크를 벗는 것에 비하면 마스크 쓴 채 공연장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며 "공연장만 특별 방역지침을 시행할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지적했지만 정부는 이런 목소리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었으나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비단 대중음악 공연업계에만 있는 건 아니다. 정부의 지원 대책에도 여전히 수많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피해 업종 종사자들이 일상의 삶을 뺏긴 채 벼랑 끝에서 위태롭게 견디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전 국민 재난지원금 같은 달콤한 유혹이 아니라 적절한 손실 보상과 재활 대책이다. “꼼꼼히 따져가며 누구도 뒤처지지 않고 누구도 불안하지 않게 (위드 코로나를) 잘 준비하겠다”던 김부겸 국무총리의 다짐처럼, 우리 옆의 누구도 코로나19 때문에 뒤처지지 않게 챙겨야 한다. 운이 좋아 이번엔 비껴 갔을지 몰라도 다음 번엔 나와 당신이 그들의 자리에 있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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