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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향상=남성 차별? 인권도 '총량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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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한정된 토지에 의존하여 살아가기에 인구의 규모도 식량의 양에 맞춰서 늘어났다가 줄어드는 패턴을 반복했다. 그래서 전근대인들은 한 지역 사람들이 거두는 생산물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고 믿었다. 누가 풍작을 거두면 다른 누구는 흉작을 거두기 마련이라고 생각했기에, 자신의 농사가 망하거나 가축이 병들어 죽으면 누군가가 저주를 걸었기 때문이라고 남 탓을 했다. 누군가가 농사 망하라는 저주를 건 이유는 다른 이의 곡식을 빼앗아 자신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다. 피해를 당한 사람은 돈을 받고 저주를 걸어준 마녀라고 의심되는 여성을 찾아 보복했다. 이는 대규모 마녀사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산업화 시대가 되어 더 이상 토지에만 생존이 달려 있지도 않건만, 한 지역의 생산물 총량은 정해져 있다고 믿는 사고방식은 지금도 남아 있다. 여성과 성소수자가 차별받는 현실에 대해 문제 제기하면 이런 반응을 하는 사람들이 꼭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럼 남성은? 남성은 차별해도 되는가?" "남성 인권은 안 중요한가?" 이해는 간다. 이런 자들은 인권에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심하다. 한 지역의 생산물 총량이 정해져 있기에 누군가의 농사가 잘되면 내 농사가 망한다고 믿던 중세인의 사고방식에서 아직도 못 벗어났다니.
뿐만 아니다. 딸이 공부를 잘하거나 재능이 많으면 오빠나 남동생의 앞길을 막는다며 구박하는 부모의 사고방식, 며느리가 승진하면 아들 기죽인다며 싫어하는 시부모의 사고방식도 마찬가지다. 한 가정의 지능과 행운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데, 딸·며느리가 아들 몫까지 차지한다고 생각해서다. 병든 가부장이 병시중 드는 아내나 딸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도리어 때리고 폭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자신이 아프기에 화풀이로 때리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아프게 하여 자신의 아픔을 덜기 위해서다. 한 가정의 고통의 총량도 정해져 있는데, 네 년들이 멀쩡해서 내가 대신 아프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성차별주의자들이 갖는 '전근대인의 망탈리테(mentalités,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집단적인 사고방식)'에 관심이 많다. 여성혐오 언행을 목격하거나 성폭력 관련 통념을 들으면 일단 화가 나지만 곧 궁금해진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관련 책을 찾고 역사적 문화적 내력을 파 보게 된다. 쓸데없이 학구적인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이 너무나 의아해서이다.
그러다 한정된 토지에 총 생산량 규모가 제한되어 있던 산업혁명 이전 시절의 역사를 알고나니 긍금증이 좀 풀렸다. 아아, 안타까워라. 어떤 이들은 아직도 생산량 총량제를 믿는 고대, 중세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치더라도, 왜 이들은 굳이 여성 탓을 할까? 다른 남성도 주변에 많이 있는데 말이다. 여성이 더 만만한 사회적 약자들이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더 있는 것일까?
나는 아홉 살부터 안경을 썼다. 초등학교 같은 반 남자애들이 '안경 쓴 여자는 재수없다'고 놀렸다. '안경 쓴 여자가 첫 손님이면 재수 없다'고 아침이면 택시 승차와 가게 입장 거부를 당했다. 분하고 억울했다. 안경 쓴 여자는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한 여성이어서 남자의 기를 죽인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성인이 되어 콘택트 렌즈를 끼고 라식 수술을 받았다. 안경을 안 쓰게 되었지만 여전히 재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핵심 원인은 안경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침 첫 손님이어서도 아니었다. 아침 아닌 다른 시간 다른 일에도 '여자가 끼어들면 재수 없다'거나, 심지어 아무 말도 행동도 안 했는데 그냥 '여자는 재수 없다'는 비난을 받곤 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였다. 타인들뿐만이 아니다. 아버지나 오빠, 친구처럼 친근한 사이에 있는 남성들도 그런 말을 내게 '뇌맑게' 하곤 하는 것을 보면, 친소(親疎) 관계나 사람 인격 차이를 떠나서 그냥 사회 통념 같았다.
화나는 한편 궁금했다. 왜 주위에 여자가 있으면 재수 없어서 어떤 일이 잘되지 않고 망한다고 생각할까? 자신들의 능력 부족이나 불운을 인정하기 싫으니까 만만한 약자를 탓하는 것은 잘 아는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법하다.
오래된 문헌 기록을 찾아보았다. '무영탑(석가탑) 전설'에도 이런 여성 혐오가 보였다. 전설 내용은 이렇다. 석가탑을 만들고 있는 남편 석공을 아내가 찾아간다. 현장 감독은 만남을 허락하지 않는다. '완성 전에 여성을 들이면 부정 탄다'는 이유다. 아내는 연못가에서 완성된 탑 그림자가 비치기만을 기다리다 지쳐 물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한다. 알고보니 석가탑은 그림자가 안 생기는 탑, 무영탑(無影塔)이었다. 여기서, 감독은 왜 석공 부부의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을까? 완성 전에 여자를 들이면 부정 탄다고 믿은 이유는 무엇일까?
고대인들은 자연 상태에 있는 모든 것들을 인간에 빗대어 생각했다. 돌이나 쇠붙이로 물건을 만드는 것도 인간을 탄생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여겼다. 한 인간의 생명 에너지를 온전히 쏟아야 그 작업이 성공한다고 믿었기에 대장장이나 석공에게는 금욕(禁慾)이 요구되었다. 작품을 만드는데 쓸 창조적 에너지를 아내를 만나서 성적 결합을 하는 데에 쓰면 석공이 가진 에너지 총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온전한 생명을 지닌 명작을 만들 수 없다. 창작자의 생명 에너지는 작품을 만드는 데로만 가야지, 다른 존재 즉 아기를 만드는 데로 가면 안 된다. 앞서 이야기한 산업혁명 이전의 생산량 총량제의 맥락이다.
무영탑 전설에서처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남성이 자신의 창조적 에너지의 총량을 보존하여 온전히 그 일에 쏟으라는 의미에서 중요한 일을 앞두고 성관계를 삼가던 풍습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점차 남성들이 일하는 작업장에 여성을 들이지 않는 풍습이 되고, 이어서 여성 자체를 재수 없는 존재로 여겨서 차별하는 악습이 된다.
이번에는 안동에 전해지는 하회탈 전설을 보자. 고려시대 일이다. 안동의 허도령은 마을의 재앙을 없애려면 탈을 12개 제작하여 굿을 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 그때부터 허도령은 작업장에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는 금줄을 치고 탈 제작에 전력을 쏟았다. 11개를 만들고 마지막 12번째로 이매탈을 만들 때였다. 허도령을 사모하던 처녀가 작업장을 몰래 엿봤다. 순간 허도령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 그래서 이매탈에는 턱이 없다. 여성이 엿봐서 부정 탔기 때문에 탈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왜 여성이 그저 남성의 작업장을 엿보기만 해도 부정 타서 남성이 하던 작업이 미완성으로 끝나게 된다고 생각했을까? 그것은 여성이 가진 막강한 생명 에너지가 작품이 가진 에너지를 능가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방식에서 여성 자체가 부정 타는 존재라고 믿게 되어 '여자는 재수 없다'는 성차별 의식이 생겨났다.
고대의 무영탑 전설이든 중세의 하회탈 전설이든 '여자는 재수 없다'고 욕하는 현대의 성차별주의자든,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렇게 근본에는 여성의 성적인 에너지, 새 생명을 만들어내는 출산 능력, 다달이 피 흘려도 죽지 않는 생명력을 경외하던 고대인들의 오래된 무의식이 있다.
그래서 나는 여성을 '피싸개'라고 부르는 지금의 여성 혐오자들이 우스꽝스럽다. 고대인도 아니면서 월경하는 여성을 두려워하고 놀리다니 말이다. '민담을 통해서 되살아난 이미지들은 듣는 사람이 그러한 상징이 갖는 본래의 의미를 의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라도, 그의 영혼에 직접적으로 작용하게 된다'라는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글이 떠오른다.
작가로서, 전근대인의 불합리한 사고방식이 현대 성차별주의자들의 망탈리테에 이어지는 사례에 관심이 많기는 하지만, 그 이유를 글로 써서 사람들에게 알린다고 현실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일상에서 차별과 혐오의 언행을 못 하게 막는 일에도 나의 창조적 에너지를 나누어 쓰고 있다. 예를 들자면, 악플러 고소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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