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식 '성장', '우클릭' 외피 벗겨보니 文 정부 정책과 닮았다

입력
2021.11.04 08:0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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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서울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한민국대전환 제20대 대통령선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서울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한민국대전환 제20대 대통령선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성장을 회복하고 경제를 부흥시키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일 당 선거대책위 출정식에서 1호 공약으로 내세운 것은 '성장'이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산업화의 기틀을 닦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거론하며 "상상할 수 없는 대규모의 신속한 국가투자에 나서겠다"고도 했다. 20여 분의 연설에서는 이 후보의 대표공약인 기본소득은 언급하지 않았다. 과거 민주당 대선후보들이 보수의 성장 담론보다 진보의 분배 담론에 방점을 찍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정치권 안팎에선 "우클릭을 통한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에 나선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재명 '전환적 공정 성장'의 기시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3일 국회에서 열린 첫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3일 국회에서 열린 첫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이 후보가 언급한 성장 담론의 외피를 한 꺼풀 벗겨보면 현 정부와의 근본적인 차별화에 나섰다고 보긴 어려운 부분이 있다. 우선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통해 탈(脫)탄소·디지털 시대 등 전환적 위기에 대응하겠다는 '전환 성장'은 현 정부의 최대 역점 사업인 한국판 뉴딜과 대동소이하다. 정부는 오는 2025년까지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저탄소 사회로의 전환) △사회안전망 강화 등 한국판 뉴딜에 22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달 26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청와대 면담에서도 오간 내용들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코로나19 위기에 따른 디지털 전환과 기후위기 대응이 가속화하고 있는 점을 거론하며 "현 정부보다 다음 정부가 지는 짐이 더 클 것"이라고 했다. 이 후보는 "그 짐을 제가 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적극 호응했었다.

시장에서의 갑질을 근절하겠다는 '공정 성장'도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인 제이(J)노믹스의 한 축인 '공정 경제'와 유사하다. 이 후보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및 단가 후려치기 등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강화하고, 하청업체·가맹점 등에 단체결성권과 협상권을 부여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현 정부 초대 공정거래위원장이었던 김상조 한성대 교수도 갑을관계 개선에 주력했다.

여권 관계자는 "정부 주도의 강력한 경제정책을 통해 양적 성장을 꾀하되, 이 과정에서 소외되는 약자를 품겠다는 게 이 후보의 성장론"이라며 "성장을 앞세웠지만 내용은 민주당과 진보진영이 강조해온 '포용적 성장' '질적 성장'과 동일하다"고 밝혔다.

추진력·유연함 강조 속 '선택적 차별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와 차담을 위해 청와대 상춘재로 들어서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와 차담을 위해 청와대 상춘재로 들어서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이 후보는 다만 특유의 추진력을 강조하면서 디테일한 부분에서 차별화를 노렸다. 그는 전날 "'특혜 기득권 카르텔' 해체하겠다", "사회적 대타협으로 상생하는 길을 열되, 진전 없는 논의를 한없이 지속하진 않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노사정 대타협을 추진하다 민주노총 반발로 합의에 실패한 현 정부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 후보가 "탈탄소 시대를 질주하며 '에너지 고속도로'를 깔겠다"며 박 전 대통령을 거론한 것도 '실용주의자' 면모를 강조하기 위한 포석이다. 그는 지난달 10일 선출 직후에 "경제에 민생에 파란색 빨간색이 무슨 상관이냐"라고 밝힌 바 있다.

정권심판 여론을 의식해 현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그 강도는 강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이 후보 측 민형배 의원은 3일 BBS 라디오에서 "선택적 차별화"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임기 말임에도 40% 전후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에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후보가 이명박 정부와 거리를 둔 채 '좌클릭' 정책으로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공식을 그대로 따르기엔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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