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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심점 없는 세계 보여준 G20 정상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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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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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현안과 외교안보 이슈를 조명합니다. 옮겨 적기보다는 관점을 가지고 바라본 세계를 전합니다.


지난달 3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대통령과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가 로마의 유명 트레비 분수대 앞에서 행운의 동전 던지기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대통령과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가 로마의 유명 트레비 분수대 앞에서 행운의 동전 던지기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세계 부자나라 20개국(G20) 정상들이 모인 이탈리아 로마 거리에 ‘벨라 차오(Bella ciao)’가 울려 퍼졌다. 2차대전 당시 파르티잔(저항군)들이 부른, 이제는 세계 집회현장에서 불리는 민중가요다. 세계에서 몰려온 5,000명이 넘는 시위대는 기후변화 운동가, 코로나19 백신기피자, 노동조합 활동가, 학생 등 다양했다.

이들은 팬데믹 이후 처음 열린 G20 정상회의장을 향해 ‘우리가 미래다’라고 외쳤다. 손으로 만든 푯말에 ‘미래에 제로(0)달러’라고 쓴 대학생 사라 대게나로는 “우리 미래에 G20 지도자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열대성 저기압인 사이클론으로 섬이 폐쇄되다시피 한 시칠리아에서 온 나이다 사모냐는 “기후위기는 매일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하루 뒤인 31일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린 영국 글래스고의 풍경도 유사했다. 196개국 대표단과 정상들, 시민단체까지 3만여 명이 참여한 COP26에서 시위대는 “성과 없는 COP26은 안 된다”고 외쳤다. COP26 일부 참석자들은 400여 대의 개인 전용기를 타고 와 회의 취지를 반감시키기도 했다.

세계 GDP의 80% 이상, 세계 교역의 75%, 세계 인구의 60%를 차지할 만큼 G20의 실력은 막강하다. 코로나 백신의 접종률은 부자 나라는 70% 이상, 가난한 나라는 3%가량을 기록 중이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그 차이가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며 내년 중반까지 전 세계 접종률 70%를 목표로 제안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빈국 백신지원을 요청했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G20 정상들은 기후변화의 실질적 위협을 인정했으나 온난화를 막기 위한 새로운 약속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번 G20 정상회의는 코로나 사태 이후 첫 대면 회의인 만큼 팬데믹 대응에 필요한 세계 주요국의 지도력을 시험하는 무대였다. 특히 팬데믹이 가져온 보호주의, 민족주의에 직면한 세계가 다자주의를 가동해 해법을 찾을 기회였다. 그러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자 트럼프로 인해 상실된 미국의 지도력 회복을 꾀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만들지 못했다. 중국과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상들은 아예 불참해 스스로 글로벌 리더십을 포기했다.

백신지원은 물론 기후변화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구체적 약속을 만들어내지 못한 G20 정상회의는 사실상 실패로 평가되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셀리나 벨린 연구원은 후과가 따를 것이라고 했다. 구심점을 찾지 못한 세계는 더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다.

이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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