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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에 관한 이야기지만 사랑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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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문학의 가장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4번째 주인공 찾기에 나섭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유령과 가짜가 나오는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공포는 대단히 인간적인 감정이어서 늘 무서워하면서도 음모를 꾸민 사람들이 어떻게 되나 빠져들게 된다. 강화길은 사람들 사이에 유령을 슬며시 끼워넣음으로써 사람을 살게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대불호텔의 유령'에서 생존을 위해 끝없이 마음을 주며 노력하는 지영현과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고연주를 만나게 되면 마음이 뜨거워진다.
1950년대 인천의 한 호텔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셜리 잭슨과 에밀리 브론테 유령의 출현이라는 커다란 농담을 압도할 만큼 그들의 목소리는 생생하다. 뒤얽힌 관계들 속에서 사실을 해명하고 진실을 찾아가는 일보다 중요한 것이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놓인다. 자신을 기만한 가짜에게 손 내밀 수 있다면? 새로운 삶을 포기하고 모욕과 수치를 감당하기로 결심한 사람이 갑자기 죽어버린다면? 그래서 이 소설은 유령에 관한 이야기지만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읽힌다.
어린 시절 원혼을 목격하고 불안증에 시달리는 소설가 ‘나’의 글쓰기는 니꼴라유치원에서 출발하여 대불호텔에 이르게 된다. 친구 ‘진’의 조모인 박지운과 보애 이모는 전후 대불호텔을 살아냈던 여성들과 화교들의 삶을 증언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들을 정리하기 시작한 후부터 ‘괴이한 목소리’는 점차 줄어든다. ‘나’를 쫓아다니던 저주와 악담에서 놓여나고 ‘진’과의 어색한 관계도 회복될 기미를 보인다.
대불호텔의 사람들은 불행했지만 그 고통을 복기하는 과정 속에서 ‘나’와 진은 두려움을 감당하며 한 발자국 ‘우리’의 삶에 다가선다. 그래서 이 소설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그 이야기들이 우리를 어떻게 인간답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어느 밤 대불호텔의 사람들은 무차별한 공격을 피해 두려움에 떨며 함께 숨죽여 피해 있다가 새벽녘 창밖으로 환히 떠오르는 빛에 눈길을 주게 된다. 이 장면은 이 소설에서 아주 드물게 평온한 순간이다. 소설가는 억압과 차별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뜨거운 귤피차를 홀짝거리는 대불호텔 사람들처럼 온기를 회복하는 일이 우리에게도 얼마간 필요하다. 이 치열한 이야기를 다 끝마치고 나서, 애초 이야기의 출발에 놓인 셜리 잭슨의 일기를 옮겨 적은 소설가의 다정함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나로서 온전히 내 삶을 산다는 것이 가능한가.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용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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