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로 맞았다" 오징어 게임 필리핀 배우가 불러온 '인종차별' 논란

입력
2021.11.03 12:30
수정
2021.11.03 14:18

오징어 게임 '276번' 배우 크리스찬 라가힐
"한국에서 인종차별 경험했다" 고백
누리꾼들 "대신 사과", 한편에선 "모두 믿기 어려워"
유튜브 채널 'Asian Boss' 불신도 논란 키워

필리핀 출신 배우 크리스찬 라가힐(오른쪽)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된 오징어 게임 현장 영상 중 일부. 인도 출신 배우 아누팜 트리파티(왼쪽)와 함께 촬영한 모습이 담겼다. 인스타그램 캡처

필리핀 출신 배우 크리스찬 라가힐(오른쪽)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된 오징어 게임 현장 영상 중 일부. 인도 출신 배우 아누팜 트리파티(왼쪽)와 함께 촬영한 모습이 담겼다. 인스타그램 캡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에서 276번 역을 맡았던 필리핀 출신 배우 크리스찬 라가힐이 유튜브 채널 '아시안 보스(Asian Boss)'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인종차별을 겪었다는 내용을 고백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필리핀 출신 라가힐, "버스에서 양배추로 얼굴 맞아 안경 깨져"

유튜브 채널 'Asian Boss'에 지난달 24일 업로드된 배우 크리스찬 라가힐의 인터뷰 영상. 유튜브 캡처

유튜브 채널 'Asian Boss'에 지난달 24일 업로드된 배우 크리스찬 라가힐의 인터뷰 영상. 유튜브 캡처

지난달 24일 공개된 영상을 보면, 라가힐은 한국에서 인종차별을 겪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마을버스 막차를 타고 가던 길에서 50대 후반 여성이 나를 향해 양배추를 던졌고 얼굴을 정면으로 맞았다"고 말했다. 이어 "안경이 벗겨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찾아서 집어 보니 이미 깨져 있었다"고 밝혔다. 왜 던졌냐고 외쳤지만 만원 버스 안의 어느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특히 아무도 도움을 주려 하지 않았던 것에 큰 상처를 받았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버스에 타고 있던 다른 승객이 라가힐에게 "당신이 내리기를 원하는 것 같다"고 영어로 이야기해주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어 "당시 나는 한국어를 잘 못했고 택시도 탈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며 "외국인 전용 버스도 없고 막차이지 않냐고 외쳤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는 당시 경험을 전했다.

결국 라가힐은 어쩔 수 없이 버스에서 내려야 했다. 그러나 "내리는 와중에도 양배추를 던진 분은 나에게 '외국인들은 다 나쁜 사람이야'라고 외쳤고, 곧 내려서 울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 정도의 경험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변 외국인 친구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비슷한 경험이 있다"며 "지나가며 나쁜 말을 듣거나,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지 말라고 하기도 한다"고 한국의 인종차별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아시안 보스 채널에 올라온 해당 영상은 현재 조회수 27만 회 이상을 기록하며 누리꾼들 사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아시안 보스는 2013년 두 명의 호주인이 만들었으며, 구독자 수 327만 명을 보유하고 있다.

2015년 영어 강사로 한국 생활을 시작한 라가힐은 2016년 연기자를 찾고 있던 매니저를 통해 단역 배우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는 "한국인 매니저가 외국인 배우를 찾고 있다며 배우 해 볼 생각 없냐고 물었고 경험 삼아 해보자는 생각으로 나섰다"고 말했다.

이후 라가힐은 몇 편의 영화와 드라마 등에 출연했다. 2018년 현빈, 손예진 주연 영화 '협상'에서 강도 역할, 2019년 tvN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에서 생산부 사원 키산 역을 맡았다. 2020년에는 송중기 김태리 주연의 영화 '승리호'의 식당 종업원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는 현재 마케팅 컨설턴트, 데이터 분석가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 내 필리핀 커뮤니티에서 리더로도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라가힐은 "한국 내에 4만6,000명의 필리핀인들이 있으며 임시직이나 숙련직으로 비자를 받아 일하고 있다"며 "이들에게도 유럽이나 미국계 노동자만큼이나 꿈꿀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야 한다"는 생각도 밝혔다.

덧붙여 한국 대중문화 업계의 동남아시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고정관념도 깨야 한다고도 말했다. "주로 이들(동남아 출신)에게는 도둑이나 마피아, 마약상같은 역할이 주어진다"며 "한국 사회가 아직 평범한 오빠나 학생, 대기업 직장인과 같은 외국인 노동자를 볼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다"고도 전했다. 이어 "동남아 출신 배우들이 공장 노동자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누리꾼들 "2차 가해가 인종차별 보여줘, 한국 대신해서 사과"

해당 영상 댓글창에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한 누리꾼이 사과의 말을 남겼다. 유튜브 캡처

해당 영상 댓글창에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한 누리꾼이 사과의 말을 남겼다. 유튜브 캡처

아시안 보스는 주 시청자층으로 해외의 미국인, 동남아인이 많은 유튜브 채널이지만 라가힐의 인터뷰가 화제가 되며 국내 누리꾼들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해당 유튜브 영상 댓글창에서는 "한국인 중 한 명으로서 일부 비정상적 대우가 있었음에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이런 일이 한국에서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대신 사과를 전한 누리꾼도 등장했다. 그는 이어 "일부 나이가 많은 편협한 사람들 사이에서 동남아나 아프리카계 사람들을 향한 멸시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정황상 비현실적인 부분이 많다"는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자 여러 누리꾼들은 오히려 "이런 반응이 혐오의 현장 그 자체"라고 입을 모았다. "저분이 그런 일을 겪었다는데 조작이라고 어떻게 단언하느냐", "자기가 못 봤다고 없었다고 하는 게 바로 한국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이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해외 시청자가 많은 채널 특성 때문에 해당 영상 댓글은 라가힐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많다. "그는 말도 잘하고 매력 있는 배우"라며 "그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될 사람이다. 응원한다",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편에선 "모두 믿기 어려워" 의문도... '아시안 보스' 채널 불신도

해당 영상 댓글창에서 일부 누리꾼들은 "정황상 믿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튜브 캡처

해당 영상 댓글창에서 일부 누리꾼들은 "정황상 믿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튜브 캡처

그러나 한편에선 정황상 라가힐이 밝힌 내용 중 현실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많다며 물음표를 달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한국에 인종차별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양배추를 던지고 아무도 안 도와줬다는 것이 의아하다"며 게시글을 올렸다.

다른 누리꾼들 역시 "버스에 사람이 꽉 차 있는데 무거운 양배추를 던져서 정확히 맞히고 난동을 피우는데 동영상 하나 안 남을 수 있느냐", "옆에서 양배추 던진 여성의 의도를 해석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비현실적"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해당 영상의 댓글창에서도 국내 네티즌으로 추정되는 일부 한국어 댓글들은 "밤 늦게 탄 버스에서 50대 여성이 공포심 없이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게 상식 밖이다", "진짜라면 뉴스감인데 나온 적 없지 않으냐"는 반응을 보였다.



누리꾼들은 유튜브 채널 '아시안 보스(Asian Boss)'의 과거 편향적 편집 방향과 혐한 성향을 들어 인터뷰 신뢰성에 의구심을 표하기도 했다. 커뮤니티 캡처

누리꾼들은 유튜브 채널 '아시안 보스(Asian Boss)'의 과거 편향적 편집 방향과 혐한 성향을 들어 인터뷰 신뢰성에 의구심을 표하기도 했다. 커뮤니티 캡처

일부 누리꾼들은 유튜브 채널 아시안 보스가 과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전력을 언급하기도 했다. 라가힐의 발언이 해당 채널 편집 방향에 맞춰 짜였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

해외 젊은층을 주 시청층으로 삼는 아시안 보스 채널은 2018년 한국과 일본의 갈등을 두고 한국인들을 길거리 인터뷰한 영상에서 "베트남에서 저질렀던 행위들"이라는 표현을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도 위안부를 이용했던 것"이라고 번역을 바꿔 조작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 "한국의 성형에 대한 호주인들의 생각"을 묻는 인터뷰 영상에서 한국 여성들의 성형 전후 사진을 보여준 뒤 웃음을 유도하는 등 한국 여성들을 희화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더구나 해당 사진의 출처는 대만의 한 성형외과 광고로 알려져 더욱 거센 논란이 일었다.

이 때문에 일부 누리꾼들은 라가힐의 인터뷰도 100% 믿기는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시안 보스 채널이면 한국을 인종차별로 설정해두고 대답을 강요했을 가능성이 높다", "혐한 채널인데 믿고 거른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전세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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