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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파인더] 시진핑이 보낸 '노태우 조전' 비공개, '외교 결례' 맞나

입력
2021.11.0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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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전 발송 공개 '고의 지연' 논란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방명록에 남긴 글.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방명록에 남긴 글. 연합뉴스

정부가 때아닌 ‘조전(弔電)’ 논란에 휩싸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별세를 위로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조전 발송 사실을 사흘이나 묵혀뒀다가 공개해 ‘고의 지연’ 의심을 받은 것이다. 외교부는 “타국 정상들의 조전을 한 데 모아 발표하는 과정에서 늦어진 것”이라며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2일 정부 당국의 설명을 종합하면 시 주석의 조전은 지난달 29일 밤 주한 중국대사관을 통해 외교부에 전달됐다. 외교부는 사흘 뒤인 1일 보도자료를 내고 중국을 포함, 일본 태국 헝가리 등 10개국 정상이 조전을 보내온 사실을 언론에 알렸다. 이에 일각에서는 시 주석의 조전을 장시간 공개하지 않고, 유족에게도 전달하지 않은 점을 들어 외교 결례라는 지적이 나왔다.

외교부 "정상 조전 취합해 접수 알려"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노 전 대통령 조전 처리 과정도 관례를 따랐다는 것이다. 통상 해외 정상의 조전 전달은 각국에 주재하는 우리 공관이 주재국에 ‘국가장’ 결정 사실을 통보하면서 시작된다. 주재국 정상이 한국 대사관에 조전을 보내고, 다시 외교부를 거치는데, 이때 수신자는 유족이 아닌 청와대다. 외교부 관계자는 “조전도 제3국 정상이 국가장을 치르는 나라의 정상에게 보내는 외교 문서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외교부는 각국 정상의 조전을 취합해 유족 측에 접수 현황을 알렸고, 구체적 전달 방법도 상의했다고 한다.

조전 접수 뒤 바로 공표 규정 없어

정부는 조전을 뒤늦게 공개했다는 비판 역시 수용하기 어렵다고 반박한다. 조전을 반드시 공개하거나 접수 뒤 바로 공표하는 등의 규정이 없는 탓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취재진과 만나 “조전 공개 여부에 관한 규범 같은 건 없다”면서 “201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는 해외 정상들이 조전을 보내왔다는 보도자료도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접수 현황을 공개하는 등 오히려 예우의 격을 높였다는 설명이다.

1992년 9월 한국 국가원수로는 처음 중국을 방문한 노태우(왼쪽) 대통령이 양상쿤 중국 국가주석과 건배하고 있다. 같은 해 8월 24일 한중수교가 이뤄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2년 9월 한국 국가원수로는 처음 중국을 방문한 노태우(왼쪽) 대통령이 양상쿤 중국 국가주석과 건배하고 있다. 같은 해 8월 24일 한중수교가 이뤄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사 직접 조문... 中 관심 고려 못했다는 지적도

다만 정부가 노 전 대통령 별세에 대한 중국 측의 각별한 관심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한국 주재 대사로는 드물게 지난달 28일 노 전 대통령 빈소를 직접 찾아 조문했다. 그는 지난해 8월 노 전 대통령의 서울 연희동 자택을 방문하기도 했다. 극진한 예우의 배경엔 노 전 대통령이 1992년 한중 수교는 물론, 대만과 단교 결단을 내린 지도자라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중국 대사관은 시 주석 조전 발송 하루 만인 지난달 31일 유족 측에 연락해 수신 여부를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사관이 직접 유족과 접촉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중국 정부가 노 전 대통령의 한중관계 공적을 높이 평가한 시 주석의 조문 상세 내용이 한국 언론에 공개되기를 강하게 희망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김민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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