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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린이 죽음 반성한다더니… 가해자들 소년부 송치되자 유사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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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과 또래들의 2차 가해로 극단적 선택을 한 16세 소녀의 이야기를 추적했습니다. 출구 없는 현실 속에서 홀로 모든 고통을 감당했던 혜린이의 비극적 삶을 통해 사이버불링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짚어봤습니다.
성폭행 피해에도 이름과 휴대폰 번호까지 바꾸면서 삶의 의지를 드러낸 열여섯 살 소녀 장혜린(가명·16)양을 상대로 '사이버 불링'(온라인에서 특정인 대상 집단적·지속적·반복적 모욕·따돌림·협박 행위)과 오프라인 2차 가해를 자행해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내몰고도 소년재판부로 송치됐던 가해자(관련기사 ☞[단독] 법원, 죽은 혜린이 아닌 가해자들 감쌌다... 형사처벌 면해)가 정식 재판을 받게 됐다.
하지만 가해자 한 명은 소년재판부로 송치된 뒤에도 수차례 범죄를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나 '깊이 반성한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면하게 했던 법원 결정에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A(17)양과 B(17)군의 항고심 결정문에 따르면, 인천지법은 지난 9월 17일 소년재판부 송치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검찰 항고를 받아들여 A양을 일반 형사재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A양이 혜린이를 상대로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훼손과 모욕, 협박과 폭행 등 지속적인 괴롭힘을 통해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고 돈을 갈취해 죄질이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혜린이가 A양에게 모욕당한 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극단적 선택을 했고 이로 인해 유족들은 씻을 수 없는 고통을 받게 돼, 소년법상 보호처분보다는 형사처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인천지검이 지난 5월 25일 재판부 결정이 부당하다며 법원에 항고장을 제출한 지 4개월 만에 나온 결과다. 이번 사건을 잘 아는 법조계 관계자는 "2차 가해 사건은 소년재판부로 넘기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소년부로 송치한 원심 결정을 뒤집고 형사재판으로 넘긴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소년부 송치를 취소한 A양과 달리 B군에 대해선 원심 결정을 유지했다. 재판부 판단을 살펴보면 B군의 범행으로 △혜린이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고 △유족들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으며 △유족들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지만, B군이 깊이 반성하고 범행 전 소년보호처분이나 형사처벌 전력이 없어서 소년법상 보호처분에 해당할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B군이 14세 이상 19세 미만 ‘소년'으로 개선의 여지가 있고 부모가 B군을 지도하고 훈육해 재범을 방지하겠다고 다짐한 점을 감안하면, 소년법 취지에 따른 보호처분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로 인해 재판부는 B군에 대해선 검찰 항고를 기각해 소년재판부 송치 결정이 유지됐다.
형사재판과 달리 소년부 재판은 처벌이 아닌 교화가 목적이다. 소년법에선 가해자를 ‘보호소년’으로 칭하며 이들이 새롭게 살아갈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재판 심리 및 처분 비공개 △보호소년 관련 정보 비밀 유지 의무가 명시돼 있다. 하지만 소년법이 가해자를 배려할수록, 피해자에게는 또 다른 고통을 유발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피해자 입장에서 알아도 될 법한 최소한의 재판 정보조차 알 수 없도록 만든 탓이다.
소년부에 남아 있던 B군은 재판부 기대와 달리 이후에도 '나쁜 짓'을 멈추지 않았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B군에 대한 인천지검 재항고장에 따르면, 검찰은 B군이 혜린이의 극단적 선택 이후에도 여러 범행을 저질렀고, 죄질과 동기를 따져봤을 때 소년법에 따른 절차로는 교화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내다봤다.
B군에 대한 6페이지 분량의 검찰 재항고장을 살펴보면, B군은 혜린이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몬 뒤에도 수차례 범죄를 저질렀던 사실이 드러났다. 올해 초 B군은 지적장애인이며 아동청소년인 C양에게 성을 팔도록 권유한 혐의로 현재 수사를 받고 있다. 혜린이가 세상을 떠난 지 불과 4개월도 안 된 시점이다.
B군은 특히 깊이 반성한다는 이유로 소년재판부 송치가 결정된 이후에도 버젓이 죄를 저질렀다. 지난 6월 B군은 다른 사람 운전면허증을 습득해 자신의 면허증인 것처럼 제시해 점유이탈물횡령 혐의 등으로 입건됐다.
B군과 A양은 소년부 송치가 결정된 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혜린이에게 가했던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두 사람은 지난 6월 16일 다른 3명과 함께 또래인 D(16)양을 모텔로 끌고와 주먹으로 수차례 얼굴을 때리고 손으로 피해자 머리채를 잡아 벽에 머리를 찧게 했다.
이들은 D양 머리에 침을 뱉고 재떨이를 피해자 머리에 엎어 담뱃재와 가래침 등 오물을 붓기도 했다. D양이 폭행당하는 장면을 B군은 휴대폰으로 촬영하면서 "더 때려 더 때려"라고 말했다. 이들은 D양을 애타게 찾는 가족들 전화를 받지 못하게 하고 100분 동안 모텔방에 가두기도 했다. 초죽음이 되서 돌아온 딸을 본 어머니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17살(세) 딸아이가 모텔에서 집단 감금폭행을 당하였습니다'라는 글을 올려 8만 8,435명의 동의를 얻는 등 사회적 공분이 일기도 했다. 인천지법은 지난 9월 30일 A양에게 징역 장기 1년~단기 10월을, B군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재항고장에서 B군을 소년부에 계속 남겨두는 것은 '보호처분을 통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한다'는 소년법의 입법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소년부 송치 이후 A양과 B군이 추가 범죄로 기소됐는데도, A양과 달리 B군에 대해선 소년부 결정을 유지했다.
검찰은 "B군의 범죄행위는 혜린이 사건 범행 이후에도 여전히 반복되면서 소년법에 따른 특별 절차로는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며 "유족 마음을 어루만져주기 위한 구체적 노력도 없고, 범행을 진지하게 뉘우치고 있다고 볼 수 없어 선처할 어떠한 사유도 찾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B군에 대한 소년부 송치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검찰의 재항고는 지난 10월 18일 대법원에 배당돼 법리 검토가 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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