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곤충은 겹눈입니다. 수많은 낱눈으로 들어온 영상을 모아 사물을 모자이크로 식별합니다. 사람의 눈보다 넓은 시각, 더 많은 색깔구분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대선레이스가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거칠고 복잡한 대선판을 겹눈으로 읽어드립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려면 다른 후보들보다 유권자의 표를 한 장이라도 더 얻으면 된다. 선거인단제도나 결선투표제도 선거인단도 결선투표도 없는 직선 단순다수대표제도다.
2·3대 대통령 선거(당선자 이승만), 5·6·7대 대통령 선거(당선자 박정희)가 같은 제도로 실시됐지만 1988년의 13대 대통령 선거(당선자 노태우)를 첫 직접 선거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달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 적지 않은 언론들이 고인에 대해 '첫 직선 대통령'이라고 잘못 설명했을 정도다.
요컨대 쿠데타와 불법비자금 조성이라는 그의 과는 명료하고, 북방외교와 민주화 이행으로 대표되는 그의 공은 복잡하다. 선거와 캠페인이라는 관점에서 봐도 그렇다. 여당 후보라는 프리미엄하에 부족함 없이 선거자금을 썼고 공권력의 선거개입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울 수준이었다. 어두운 면이다.
밝은 면은 목록이 길다.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S.W.O.T(강점, 약점, 기회, 위기 요인) 분석, 강점과 약점에 대한 면밀 분석을 토대로 한 P.I(President Identity, 최고경영자 이미지 관리) 작업, 과학적 여론조사의 활용, 연령과 지역 및 계층별 맞춤 공약 수립 등 지금은 기본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노태우 캠프'로부터 시작됐다. 고무신, 막걸리, 각목을 앞세운 이승만, 박정희식 캠페인과는 질적인 차이가 분명했던 것.
게다가 전략 수립과 실행이라는 측면은 시대 보정을 거치더라도 높은 점수를 주기 아깝지 않다. 무엇보다 전임자와 차별화라는 측면이 그렇다. 민주화 열망과 정권 교체 요구에 직면한 여당 후보, 전임자가 될 현직 대통령이 존재하는 첫 여당 후보(이승만과 박정희의 경우 여당 후보인 동시에 최고 권력자였다)라는 악조건 속에서 그는 '전두환과 다름'을 성공적으로 구현했다.
기획자가 누구냐라는 묵은 논란이 있지만, 민의를 수용해 호헌을 선언한 현직 대통령에게 후보직을 걸고 직선제 부활을 건의한 6·29라는 세기적 정치 이벤트의 주연배우가 바로 그였다. '약발'이 떨어질 때쯤은 '중간평가' 약속을 얹었다.
"본인은"이 아니라 "저는"으로 시작되는 공식 발언들, 직접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는 모습, 군출신이 아닌 테크노크라트들과 함께 원탁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배우자의 노출도를 최소화하는 모습 등이 모두 차별화에 초점이 맞춰진 치밀한 PI 전략이었다. 그 정점은 '위대한 보통 사람의 시대'라는 선거 슬로건.
그 이후 지금까지 '차별화'는 여당 정권 재창출의 요체로 꼽힌다. 하지만 낙점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여당 후보들에게도 어려운 과제다. 차별화 그 자체에 대한 기획보다 현지 대통령의 존재감과 전통적 자기 지지층의 압박을 이겨내는 것이 더 어려워서다.
자기 지지층의 극복은 여당 후보뿐 아니라 야당 후보에게도 해당하는 과제다. 이 분야의 최고봉은 1997년 대선의 승리자인 김대중이다. 의석, 이념 지형, 지역 구도 등 무엇으로 보나 소수파였던 그는 정책, 전략, 이미지 등 모든 것을 바꿨다.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사자후를 터뜨리던 투사가 멜빵 바지를 입고 춤을 추는 '준비된 대통령'으로 변신했다. "나는 변했다"며 중도층을 견인하고 반대자들을 누그러뜨렸다. "변하지 않으면 못 이긴다"고 지지층을 먼저 설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흥미로운 것은 노태우, 김대중 두 사람이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야당과 언론의 압박이 강하다', '우리는 지지율이 낮다'며 자기 지지층을 설득해 가며 중도적, 타협적으로 국정을 운영했다는 점이다. 이번 국가장 과정에서도 주목받았지만 두 사람의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괜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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