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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의 장고’ 페이스북은 왜 사명을 바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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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페이스북이 전격적으로 사명을 메타(Meta)로 바꾸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명에 드러나듯 가상세계인 메타버스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은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가 10개월 장고 끝에 내린 결정이다. 여기에는 대표적 사회관계형서비스(SNS) ‘페이스북’의 한계와 회사의 확장성에 대한 저커버그의 고민이 들어 있다.
31일 페이스북과 IT업계에 따르면 페이스북의 사명 변경은 연초부터 극비리에 시작됐다. 저커버그와 최측근 일부를 제외하고 내부 최고위층에서도 진행 과정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페이스북 관계자는 "저커버그 CEO가 워낙 비밀리에 진행해 최고위층도 최근에야 알게 됐다"며 "명함부터 세계 각국의 법인명, 인터넷 주소, 증시 상장명과 코드번호 등 수백 가지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준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각국 법인명은 순차적으로 바뀌어서 내년에나 한국 법인명도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명 변경의 가장 큰 이유는 사업의 확장성이다. 저커버그는 기존 SNS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망라한 신사업으로 뻗어나가기에 한계가 있다고 봤다. 스마트폰, 컴퓨터, 게임기 등 하드웨어와 각종 앱 등 소프트웨어를 함께 연결해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며 무한 증식하는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와 달리 SNS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계속 만들어 팔며 생태계를 이루기 힘들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시총이다. 페이스북 발표 당일까지 시총이 MS 2,923조원, 애플 2,907조원, 구글 2,308조원인데 비해 페이스북은 1,056조원이다. 시장에서는 구글 애플 MS 등에 비해 페이스북은 주력인 SNS의 성장 동력이 크게 뒤쳐진다고 평가한 것이다. 페이스북 관계자는 "고민의 시작은 회사와 페이스북 서비스를 구분하는 것이었다"며 "가상현실(VR) 기기를 만드는 오큘러스 등 여러 사업이 있는데 과거 사명은 회사를 SNS만 연상시켜 과거에 가두게 된다"고 토로했다.
저커버그 입장에서 메타버스는 2014년 인수한 오큘러스의 VR 및 증강현실(AR)기기 등 하드웨어 사업을 2019년 선보인 가상현실 서비스 '호라이즌' 등에 연결해 독자 생태계를 구성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인 셈이다. 이에 저커버그는 "우리가 메타버스 회사로 알려지기를 바란다"며 다양한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하드웨어 분야에서 VR과 AR을 혼합한 메타버스용 헤드셋 기기 '프로젝트 캄브리아'를 내놓는다. 페이스북 관계자는 "캄브리아는 내년쯤 나올 것"이라며 "국내에서는 오큘러스 총판인 SK텔레콤에서 판매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쪽에서는 호라이즌 홈, 호라이즌 베뉴에스, 호라이즌 워크룸 등 새로운 서비스가 추가된다. 이 서비스들은 오큘러스 헤드셋을 쓰고 가상공간인 호라이즌에 모여 회의하고 집을 꾸미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도 오큘러스로 이용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게 된다.
여기에 메타버스 게임이 추가된다. 록스타 게임즈가 게임기와 PC용으로 만든 범죄자를 다룬 게임 '그랜드 씨프트 오토(GTA) 샌안드레아스'를 오큘러스용 VR게임으로 내놓을 예정이며, 일본 캡콤은 좀비 게임 '바이오하자드'를 지난주 오큘러스용으로 선보였다.
또 메타버스 교육을 위해 1,800억 원의 펀드를 만들고 개발자들이 각종 메타버스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개발도구(SDK)도 공개한다. 여기에 전자결제 서비스 '페이스북 페이'도 페이스북을 떼어내고 기존 디지털 지갑 서비스 '노비'(Novi)로 통합했다.
이런 페이스북의 움직임은 국내 기업들에게도 기회가 될 전망이다. 페이스북 관계자는 "VR 낚시게임을 만드는 미라지소프트 등 국내 기업들이 메타버스 콘텐츠와 관련해 협업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메타버스를 향한 저커버그의 의지는 실적 발표에도 반영된다. 페이스북은 4분기 실적부터 기존 SNS 사업을 '패밀리 오브 앱스'로, 메타버스와 VR 및 AR 사업 등을 '리얼리티 랩스'로 각각 구분해 실적을 발표한다. 한마디로 구사업과 신사업을 명확하게 구분해 성장성을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페이스북 관계자는 "메타버스에 집중하겠다는 엄청난 의지"라며 "두 가지를 구분하는 실적 발표로 회사가 향하는 방향성을 분명하게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구글처럼 지주사로 가지는 않을 방침이다. 구글은 2015년 알파벳으로 사명을 바꾸며 지주사로 전환했다. 페이스북 관계자는 "사명만 바뀔 뿐 회사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국 언론들은 페이스북의 사명 변경에 비판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무한대를 뜻하는 수학기호 형태의 메타 로고(∞)를 ‘프레츨’ 과자같다고 비웃었다.
또 페이스북이 가짜 뉴스와 혐오 발언 등을 방치한다는 내부 고발과 개인정보 유출 등에 개선책을 내놓지 않은 점도 도마에 올랐다. 페이스북 관계자는 "내부 고발자가 폭로한 페이스북 서비스의 12가지 문제 중 11개는 이미 개선됐다"며 "나머지도 개선 조치 중이어서 발표에 빠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미국 언론들은 최근 NYT, 워싱턴포스트, CNN 등 17개사가 공동으로 페이스북을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페이스북이 언론사 뉴스로 이용자를 끌어 들여 돈을 벌면서 왜곡된 의제 설정 등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며 책임을 지지 않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네이버 등 포털 뉴스에 대한 국내 언론들의 지적과 비슷하다.
그만큼 페이스북은 언론에 대한 불만이 크다. 소식통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미국 언론과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다"고 표현할 만큼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 소식통은 "페이스북은 일부 미국 언론의 부정적 보도가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며 "각국의 이번 발표 보도를 보니 한국 언론도 기사의 절반 가량이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 이슈 등을 다루며 미국 언론만큼 비판적"이라고 짚었다.
개인정보분쟁조정위는 페이스북 발표 당일 지난 6년간 페이스북이 330만 명의 이용자 정보를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제공한 것과 관련해 분쟁조정을 신청한 181명에게 각 30만원씩 총 5,430만원을 지급하라는 조정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페이스북 관계자는 "집단소송 참가자들이 중재신청에 앞서 소송을 먼저 제기했다"며 "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중재가 의미 없으니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여러 번 밝혔는데도 조정위가 중재안을 내놓아 의아하다"고 전했다.
IT업계 일부에서는 메타버스의 시장성이 아직 보이지 않아 페이스북 행보를 국면 전환용으로 낮춰보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는 "페이스북이 메타버스로 대규모 비즈니스를 만들지 못하면 한때 반짝한 3D TV처럼 시장 형성에 실패할 수 있다"며 "세계 각국이 플랫폼 사업 규제를 까다롭게 하는 만큼 SNS 사업 전망이 불투명한 페이스북 입장에서 국면 전환용으로 메타버스 외에 내놓을 만한 대안이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페이스북은 도약대 역할을 강조했다. 페이스북 관계자는 "특정 기업이 메타버스 분야를 좌우할 수는 없다"며 "페이스북은 메타버스 시대를 앞당기는 점프 스타터 역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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