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모더니즘 계보 중심엔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있다

입력
2021.11.02 04:30
수정
2021.11.09 16:11
22면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展’ 특집 <3>

1936년 뉴욕 근대미술관의 '큐비즘(입체주의)과 추상미술' 전시 도록 표지. 김영호 교수 제공

1936년 뉴욕 근대미술관의 '큐비즘(입체주의)과 추상미술' 전시 도록 표지. 김영호 교수 제공


미술사는 몇몇 권력가의 손에 의해 설계되기도 한다. 20세기에 들어와 예술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한 뉴욕의 미술관장이나 미술평론가도 권력가의 대열에 있었다.

알프레드 해밀턴 바 주니어와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대표적 인물들이다. 뉴욕 근대미술관(MoMA)의 초대 관장이던 바 주니어는 1936년 ‘입체주의와 추상미술’이라는 전시를 기획하며 흥미로운 도표를 하나 설계했다. 인상파에서 출발한 유럽 모더니즘의 계보를 당시 뉴욕화단에 떠오르던 추상미술로 수렴한 것이다.

전시 도록의 표지로도 사용된 이 계보는 이후 미술평론가 그린버그의 에세이 ‘모더니즘 회화(Modernist Painting)’에 의해 축성되면서, 미술사의 중심을 미국으로 옮기는 지표가 되었다. 최초의 ‘아메리칸 브랜드’라 불리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모더니즘 미술의 결실인 ‘미니멀 아트’가 이 설계도 안에 이미 둥지를 틀고 있었다.

바 주니어가 설계한 도표를 보자. 그는 1890년부터 1935년까지 모더니즘 45년의 노정을 두 갈래의 추상미술로 정리했다. 기하학적 추상(일명 차가운 추상)과 비기하학적 추상(일명 뜨거운 추상)이다. 우선 기하학적 추상의 계보는 폴 세잔의 후기인상주의→입체주의→절대주의, 구성주의, 신조형주의→기하학적 추상이라는 패러다임으로 정리해 놓았다. 이 계보에서 주목할 것은 절대주의와 구성주의가 러시아 아방가르드라는 사실이다.

한편 비기하학적 추상미술의 기원 역시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세잔의 후기인상주의→야수주의→표현주의→다다→초현실주의→비기하학적 추상으로 정리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도 주목할 점은 표현주의의 주역이 러시아 아방가르드에 속하는 바실리 칸딘스키라는 것이다. 종합해 보면 이 도표는 미술사의 계보에서 카지미르 말레비치와 칸딘스키가 각각 기하학적 추상과 비기하학적 추상의 중심축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즉흥 No.4(1909년작)’. 오는 12월 3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막하는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展’에서 원작을 감상할 수 있다. 니즈니 노브고르드 미술관 제공

바실리 칸딘스키의 ‘즉흥 No.4(1909년작)’. 오는 12월 3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막하는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展’에서 원작을 감상할 수 있다. 니즈니 노브고르드 미술관 제공


바 주니어의 설계도가 밝히고 있듯이, 러시아 미술가들은 유럽 모더니즘의 기수들이었다. 미술사의 계보에서 말레비치와 칸딘스키를 빼고 성립될 수 없다는 말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에 꽃을 피우고 갈래가 명확해진 추상미술의 계보는 러시아 미술가들의 실험과 도전에 의한 것이었다.

마르크 샤갈의 ‘나와 마을(1911년작)’. 뉴욕 근대미술관 제공

마르크 샤갈의 ‘나와 마을(1911년작)’. 뉴욕 근대미술관 제공


마크 로스코의 ‘무제(1949년작)’.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 제공

마크 로스코의 ‘무제(1949년작)’.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 제공


유럽에서 미국으로 중심이 이동되는 동안 화단을 풍요롭게 수놓은 러시아 미술가는 비단 이 둘만이 아니었다. 마르크 샤갈이나 마크 로스코 역시 20세기 모더니즘 미술의 주역들이었다. 비테프스크에서 태어난 샤갈은 프랑스로 귀화했지만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미술을 배웠고 평생 동안 고향 러시아 민속과 유대인의 전통을 환상적인 언어로 표현했다. 로스코 역시 러시아의 드빈스크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해 왔다. 숭고의 색면추상으로 알려진 그의 작품은 러시아의 종교적 모티브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구미 모더니즘 미술사의 계보에는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중심에 똬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유럽도 아메리카도 아니다. 그러므로 구미 미술사는 반쪽 미술사라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한국 근현대미술사는 유럽과 미국의 영향 속에 전개되어 왔다. 우리의 근대미술은 일본 유학생들을 통해 유럽의 미술을 간접적으로 수용하며 시작되었다. 또한 1950년대 이후의 현대미술은 유럽과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하던 한국인 작가들을 통해 구미지역의 미술을 직접적으로 체험하며 성장했다. 결국 구미 중심의 한국 근현대미술사 역시 반쪽 미술사였다. 중국의 고대 미학에 기반한 동양미술사와 대립 현상이 심화되면서 나타난 미완의 모더니즘 미술사였다. 일이 이렇게 복잡하게 된 이유는 냉전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편견이 만들어낸 철의 장막 때문이었다.

바 주니어가 20세기 전반에 설계한 모더니즘의 계보는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그 해석의 역사는 편향적으로 전개되어왔다. 소비에트 연방 미술을 소외시키는 방향으로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소비에트 연방에 의해서도 퇴폐미술로 낙인을 찍히며 이중고를 거쳤다. 지구촌 시대의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제 명확해 보인다. 미술사의 지형도를 새롭게 설계하고 그리는 것이다. 유럽과 아메리카에 편향된 미술사의 시각을 교정하고 중국과 더불어 러시아와 동구권의 근대미술을 함께 연구하는 것이다.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계보를 제대로 따지는 일은 새로운 시작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영호 중앙대 미술학부 교수

김영호 중앙대 미술학부 교수


김영호 중앙대 미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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