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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태어나면 국적 주기' 한국은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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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신고도 사망신고도 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분명 존재하지만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이들, 무국적자다. 전 세계 무국적자는 300만 명, 그중 3분의 1은 아이들로 추산된다. 무국적 문제는 보편 인권에 바탕해야 할 인간사회의 심각한 허점이자 명백한 인재(人災)다. 이제는 바로잡아야 할 때다.
“모든 사람은 국적을 가질 권리가 있다.”
1948년 제정된 세계인권선언에서 국적은 누구도 박탈할 수 없는 인권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지구상에는 지난해 말 기준 417만6,398명이 무국적자로 비극적 삶을 살고 있다. 이마저도 유엔난민기구(UNHCR)가 전 세계 국가 절반을 대상으로 추계한 수치라서 실제 무국적자는 이보다 더 많을 거라고 봐야 온당하다.
UNHCR는 2024년까지 모든 무국적자가 국적을 갖도록 하겠다는 목표로 ‘#IBELONG(나는 소속돼 있다)’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캠페인이 시작된 2014년 이후 6년간 무국적 굴레를 벗은 이는 40만여 명에 그친다. 통계에 잡히지 않던 무국적자가 확인되고 시리아 내전과 로힝야 사태 등이 터지면서 전체 무국적자 규모는 2014년(349만2,263명)에 비해 68만4,135명이나 늘었다.
UNHCR가 정한 무국적 종식 기한이 3년 남았지만 각국 정부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유일한 해법은 전 세계 78억여 명의 국적자들의 관심과 행동이다. 국제사회에서는 무국적자 양산의 출발점이기도 한 식민지배와 내전을 딛고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국은 무국적자 문제의 주요 당사국이다. 일제강점기 살 길을 찾아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다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아픔을 겪은 무국적 고려인이 5만여 명에 달한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6년부터 60여 년간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해외로 보냈던 입양아 17만여 명 중 미국에서만 최소 4만여 명이 시민권을 얻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전쟁에 파견된 한국 군인과 베트남인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따이한’ 가운데 양국 어디서도 국적을 받지 못한 이들도 있다. 불법체류 이주노동자가 많아지면서 한국에서 태어나는 무국적 아동도 해마다 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무국적자 구제에 소극적이다. 유엔은 1954년 '무국적자 지위에 관한 협약'과 1961년 ‘무국적자 감소에 관한 협약'을 각각 결의했지만, 한국은 두 번째 협약에 지금껏 서명하지 않고 있다.
협약에 가입하면 부모의 국적이나 법률상 지위에 상관없이 태어나는 즉시 국적을 주도록 의무화하는 ‘보편적 출생등록제’를 도입해야 하는데, 정부는 “국민적 합의가 없다”는 이유로 꺼리고 있다. 15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가 이 제도 도입을 촉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이를 권고하고 있지만, 정부 입장은 아직 별다른 변화가 없다.
이런 와중에 다른 나라들은 속속 보편적 출생등록제를 도입해 무국적자 문제 해소의 첫발을 떼고 있다. 미얀마 출신 무국적자 문제가 심각한 태국은 2008년 자국 영토에서 태어나는 아동은 부모 신분과 관계없이 출생 등록을 의무화했다. 모건 루셀 헤머리 UNHCR 태국 공보관은 "2008년 법 개정 이후로 그림자처럼 살아왔던 태국 내 무국적자 10만 명 이상이 국적을 갖게 됐다"며 "아직 파악되지 않은 무국적자가 많고 법이 만들어진 사실을 모르는 이들도 많지만 커다란 진전”이라고 말했다. 변유진 UNHCR 케냐 공보관은 "어느 나라든지 태어나는 아이들 모두에게 국적을 부여해주기만 한다면 무국적자 문제는 더디더라도 종식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제사회에서는 한국 정부와 시민들이 무국적 문제 해소에 보다 적극적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시리아·로힝야·소말리아 등의 난민·무국적자 지원을 위해 UNHCR를 통해 2,850만 달러(약 333억 원)를 후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방역 마스크 360만 개를 지원하기도 했다.
변유진 공보관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식민지배와 전쟁의 상처를 극복한 한국이야말로 무국적자 문제 해결의 디딤돌을 놓을 수 있는 적임자”라고 말했다. 변 공보관은 “경제성장과 민주화로 국가적 위상이 올라가면서 국제사회가 한국 정부의 목소리에 더 귀기울인다는 것을 갈수록 체감한다”며 “한국 정부가 나서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UNHCR의 로지 바넥 #IBELONG 캠페인 책임자는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무국적자에게 국적을 주는 것은 오직 국가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시민들이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바넥은 “많은 시민들이 무국적자 문제가 명백한 인재(人災)이고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이 해결의 출발점”이라며 “정부와 의회가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시민들이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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