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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쉼터는 인간이 고래에게 진 빚을 갚는 유일한 길"

입력
2021.10.30 09: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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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생크추어리 이끄는 동물전문가
로리 마리노 ·찰스 비닉 화상 인터뷰
"수족관 쇼하는 고래 모습 사라질 것"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 2년 넘게 홀로 살고 있는 벨루가 '벨라'가 관람객들에게 호기심을 보이고 있다. 고은경 기자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 2년 넘게 홀로 살고 있는 벨루가 '벨라'가 관람객들에게 호기심을 보이고 있다. 고은경 기자



전 세계 동물보호활동가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프로젝트가 있다. 내로라하는 세계적 동물 석학과 전문가 50여 명이 참여한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Whale Sanctuary Project)'가 캐나다 남동부 노바스코샤주 포트 힐포드 만에 짓고 있는 벨루가(흰고래)·범고래 생크추어리(보호시설)다.

아이슬란드 헤이마이섬에는 2019년 6월 세계 처음으로 지어진 벨루가 생크추어리가 있다. 이는 영국 테마파크 업체인 멀린 엔터테인먼트가 중국 상하이의 한 수족관을 인수하면서 수족관 내 벨루가 '리틀 그레이'(14세 추정∙암컷)와 '리틀 화이트'(14세 추정∙암컷)를 위해 마련한 것이다.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는 동물 전문가들이 모여 전 세계 수족관에서 은퇴하거나 바다에서 구조돼 치료가 필요한 고래류를 위해 대규모 생크추어리를 만든다는 점에서 아이슬란드와 차이가 있다.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를 설립한 로리 마리노 대표찰스 비닉 이사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이형주 어웨어 대표의 도움을 받아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이형주(왼쪽부터 시계방향) 어웨어 대표, 고은경 한국일보 기자, 로리 마리노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 대표, 찰스 비닉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 이사가 26일 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줌 화면 캡처

이형주(왼쪽부터 시계방향) 어웨어 대표, 고은경 한국일보 기자, 로리 마리노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 대표, 찰스 비닉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 이사가 26일 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줌 화면 캡처


로리 마리노 대표는 미 동물신경과학자이자 20년 동안 미 에모리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고래목 동물의 뇌해부와 진화, 자의식 연구 등 8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다. 특히 돌고래들도 자의식을 가진 개체라는 사실을 밝혀낸 인물로 유명하다. 찰스 비닉 이사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해양 교육∙엔터테인먼트 복합관인 '파크 오셔니크 쿠스토' 운영을 총괄했고, 25년 이상 세계적 해양탐험가 장 미셸, 자크 쿠스토와 협력하는 등 해양보전 분야에서 활약했다.

전 세계 130개 후보지 가운데 선택, 2023년 개관 목표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포트 힐포드만에 지어질 고래를 위한 생크추어리. 규모만 약 40만5,000m²에 달한다.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 홈페이지 캡처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포트 힐포드만에 지어질 고래를 위한 생크추어리. 규모만 약 40만5,000m²에 달한다.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 홈페이지 캡처

이들이 캐나다에 생크추어리를 만들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비닉 이사는 "전 세계 130곳의 후보지를 물색했다"며 "노바스코샤 포트 힐포드만이 기온, 수심, 해수 흐름, 해양환경 등 물리적 측면에서 고래류에게 가장 적합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이들의 선택을 이끈 건 지역 주민의 지지다. 그는 "지역 사회가 생크추어리의 취지에 동참하고 협업할 수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며 "장기적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지역 사회의 협조 없이는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지역 주민들이 생크추어리를 통해 생기는 일자리에 취업하고, 고래류를 함께 보호해야 하는 당사자들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한국 정부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건 생크추어리가 언제 문을 여느냐다. 국내 롯데월드 아쿠아리움과 한화 계열 아쿠아플라넷 여수에서 각각 홀로 살고 있는 벨루가 '벨라'(12세∙암컷)와 '루비'(11세∙암컷)가 갈 수 있는 유력한 후보지 중 하나로 꼽히고 있어서다. 비닉 이사는 "고래가 처음 생크추어리로 오는 시기를 2023년으로 계획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한국 벨라를 포함해 미국 마린랜드 범고래 '키스카', 마이애미씨월드의 범고래 '롤리타' 등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는 동물들이 있기 때문에 개관을 앞당기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는 지난 2년간 캐나다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왔으며, 현재 행정적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29일에는 이미 지어진 방문자 센터 개소식을 열 예정이다.

약 40만㎡ 대규모 시설… "고래류 본연의 모습 나타낼 수 있을 것"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살고 있는 벨라가 유리창에 가까이 다가와 관람객을 쳐다보고 있다. 고은경 기자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살고 있는 벨라가 유리창에 가까이 다가와 관람객을 쳐다보고 있다. 고은경 기자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 생크추어리의 크기는 40만5,000m²에 달한다. 아이슬란드 생크추어리의 10배가 넘는 규모다. 이들은 여러 마리의 고래를 수용할 수 있으면서도 분리가 가능하도록 짓고 있다. 생크추어리 구획을 나눌 경우 수용 규모는 벨루가 8마리, 범고래 2마리로 예상하고 있다. 마리노 대표는 "고래류가 직선 운동뿐 아니라 다이빙, 조류 쫓기 등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며 살아가는 게 가능한 환경이다"라며 "이들이 수족관 유리창에 대고 하는 행동이 아닌 사람에게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 행동과 본연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소개했다.

포트 힐포트 만에 존재하는 L자 모양의 육지에는 고래류의 진료를 할 수 있는 건물, 생크추어리 운영지원을 위한 건물, 유지보수를 위한 건물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동물 관리팀이 먼 곳에 있는 고래류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타워도 설치한다. 또 고래류의 치료나 격리가 필요한 경우에 대비해 의료용 수조를 별도로 마련키로 했다.

대규모 글로벌 프로젝트다 보니 소요되는 비용 역시 상당하다. 이들은 생크추어리 건설 비용에 약 1,400만~1,500만 달러(약 164억~175억 원), 인건비와 운영비 등 연간 200만 달러(약 23억 원)가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비닉 이사는 "전 세계적으로 고래류를 수조가 아닌 최대한 자연환경에 적합한 생크추어리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며 "이 같은 움직임 덕분에 예산을 마련하고 생크추어리 설립을 현실화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고래류는 수족관에서 살 수 없는 동물"

로리 마리노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 대표는 26일 한국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벨루가가 어떤 동물인지 알려면 수족관이 아닌 벨루가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줌 화면 캡처

로리 마리노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 대표는 26일 한국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벨루가가 어떤 동물인지 알려면 수족관이 아닌 벨루가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줌 화면 캡처

그렇다면 이들은 왜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생크추어리를 지을까. 고래류는 수족관에서 살 수 없는 동물임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마리노 대표는 "고래류는 무리 안에서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사는 동물이다"라며 "개별 동물 간 관계가 좋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에 충분한 공간이 있어야 하지만 수족관은 이 같은 공간을 제공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무리 행동 풍부화 등의 프로그램을 실시한다고 해도 수조환경이 너무 협소하고 인공적이다 보니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며 "풍부화 프로그램은 수족관의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특히 마리노 대표는 지난해 발표한 논문 '감금 및 만성 스트레스가 범고래의 복지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의 결과 중 상당 부분을 벨루가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논문은 수족관 내 범고래의 죽음은 결국 만성 스트레스로 인한 것으로 결론 내린다. 어떤 동물이라도 장기간 감금되어 있으면 뇌에 이상이 오고, 이는 신체적 건강과 면역력을 파괴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생크추어리 아닌 완전 방류는 불가능한가

찰스 비닉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 이사는 "우리는 고래에게 빚을 졌다"며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갚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줌 화면 캡처

찰스 비닉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 이사는 "우리는 고래에게 빚을 졌다"며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갚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줌 화면 캡처

대규모 비용과 시간을 들여 생크추어리를 짓는 대신 벨루가를 바다에 방류하는 게 낫겠다는 의문을 갖는 이들도 있다. 이에 대해 비닉 이사는 "방류가 가장 이상적이지만 이는 너무나 복잡한 작업이"고 설명했다. 벨루가가 어느 지역에서 잡혔고, 어떤 그룹에 속해 있는지 등을 아는 게 거의 불가능해서다. 특히 벨라는 잡힌 지 10년 가까이 되어 방류를 위한 관련 정보를 더욱 알기 어렵다는 게 비닉 이사와 마리노 대표의 의견이다. 비닉 이사는 "2019년 러시아에서 잡힌 지 1년 된 벨루가 87마리를 방류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며 "당시 많은 전문가들이 모여 논의했지만 이들이 어떤 그룹에 속해 있는지 결국 확실히 알지 못한 채 방류할 수밖에 없었다. 매우 도전적인 과제였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수족관에 갇힌 고래류를 위한 현실적인 방안으로 생크추어리를 꼽는다. 마리노 대표는 "생크추어리는 고래류가 더 나은 환경에서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며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다"라며 "수족관 내 고래류가 전시되고, 쇼를 하는 모습은 이제 과거가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비닉 이사는 "붙잡힌 고래류는 인간을 위해 이용되어 왔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고래류가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는 그들에게 빚을 졌다"며 "우리는 그들에게 진 빚을 돌려줘야 한다. 생크추어리는 그 빚을 갚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가 한국 벨루가 인수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국내 벨루가에게 매우 긍정적이다"라며 "정부와 기업이 적극 나서 협력하고 지금부터 이송을 위한 건강검진, 적응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롯데 "벨라 위한 모든 방안 검토하고 있다"

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앞에서 시민단체 핫핑크돌핀스 관계자들이 '벨루가 야생방류 약속 이행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은 2019년 10월 벨루가 '벨라'의 방류 계획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앞에서 시민단체 핫핑크돌핀스 관계자들이 '벨루가 야생방류 약속 이행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은 2019년 10월 벨루가 '벨라'의 방류 계획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롯데아쿠아리움은 2019년 10월 벨루가 '벨리'가 사망하면서 벨라의 방류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벨라는 좁은 수조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에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는 벨라가 수조 안에서 하염없이 빙글빙글 돌거나 죽은 듯이 가만히 떠 있는 이상행동이 목격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벨라의 방류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에 대해 고정락 롯데아쿠아리움 관장은 "벨라의 상태가 아주 건강하다. 정형행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며 "캐나다를 포함 아이슬란드 등 바다쉼터에 이송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물론 최종 목적은 바다에 방류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기관들과의 협력이 늦어졌다"며 "벨라를 위해 방류자문회의와 모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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