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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마음 백신’입니다. ‘함께 본다, 그림책’은 여백 속 이야기를 통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음을 보듬어 줄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어린이책 기획자이자 그림책 시민교육 활동가이기도 한 신수진 번역가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9시 47분. 책 표지에 보이는 디지털 숫자판이 깨지고 부서져 내리고 있다. 비구름을 잔뜩 머금은 하늘, 폐허에 올라선 아이의 다급한 손짓, 퍼덕이는 갈매기들…. 9시 47분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해마다 환경재단에서는 환경오염에 따른 인류의 위기 정도를 시간으로 환산해 발표하는데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세계 환경위기 시계가 가리킨 시각이 바로 9시 47분이었다. 올해는 작년보다 5분 빨라진 9시 42분으로 발표됐다. 8년 만에 처음으로 시계가 되감아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산업활동이 위축되면서 탄소 배출이 줄어든 것이 큰 이유였을 것이다.
'09:47'은 12시라는 종말의 시간을 향해 가는 길에 벌어진 엄청난 사건을 90쪽의 지면에 촘촘하게 담아낸 대작이다. 여기서 9시 47분은 하루 24시간 가운데 1분에 해당할 뿐인 크로노스적인 시간이기도 하지만, 지구별 생명체의 운명이 뒤바뀔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카이로스적 시간이기도 하다.
이렇게 심각하게 소개하니 무겁고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전망을 그린 책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다만, 후딱 읽을 수 있는 기분 전환용 책은 아니다. 그리고 한두 번 봐서는 제대로 읽었다고 하기도 힘들 것이다. 다차원의 시간을 다룬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를 한 번에 다 이해하기 힘든 것처럼.
이 책은 이기훈 작가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글 없는 그림책이고, 하나의 시간과 공간에 머물지 않는 거대 서사다. 이미지와 이미지를 연결하면서 이야기의 길을 스스로 찾아 읽어야 하는 글 없는 그림책은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글자가 없는데 어떻게 읽어 주란 말인가' 하는 어른 독자들의 푸념을 받곤 하는 장르다. 굳어버린 상상력으로 읽기 힘들다면 아이들에게 이야기 만들기의 주도권을 주는 것도 좋다. 문자 읽기에만 익숙해져 이미지 읽는 법을 잊어버린 어른은 어린이의 눈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고, 그렇게 주체적으로 읽어가는 매력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지도 모른다.
아침 8시 50분. 통영항에서 비진도로 향하는 배에 승객들이 올라타고 있다. 눈 밝은 독자라면 아마 맨 처음 장면에서부터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챌 것이다. 하지만 익숙한 풍경만이 눈에 들어오더라도 여행을 떠나는 즐거움과 함께 낯선 곳으로 향하는 약간의 긴장감은 분명히 느낄 수 있다.
9시 30분. 붉은색 토끼 인형을 꼭 껴안고 뱃전에 서 있던 주인공은 바닷물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아빠에게 저것 좀 보라고 손짓해 보지만, 그 모습은 이내 사라져 버린다. 9시 47분. 엄마와 화장실에 갔던 아이는 흠뻑 젖은 채 물을 뚝뚝 흘리며 문을 열고 나온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주인공의 애착 인형인 토끼 인형은 이 책에서 상상과 현실을 오가게 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토끼 인형을 따라 검푸른 바닷속으로 들어간 주인공은 11시 59분에 거대한 눈동자를 마주한다. 그리고 12시. 모든 것이 까맣게 멈춘다.
눈동자의 주인공은 비진도를 등에 지고 있던 고래였다. 고래가 몸부림을 칠 때마다 피부 표면에 붙어 있던 온갖 인공물들의 잔해가 우수수 쏟아져 내린다. 그리고 세상 모든 고래들의 몸부림은 쓰나미를 일으키며 대도시까지 집어삼킨다. 종말의 한가운데 오로지 둘만 남겨진 주인공들은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막막한 심해를 유영하던 둘은 어느새 하나둘 위로 솟구치는 작은 물고기 떼를 발견하고 수면으로 올라간다. 검고 푸르고 누르스름하기도 한, 도저히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도 하지만 생명을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둘의 시야에 배 한 척이 들어온다. 비진도를 향하던 그 배다. 주인공은 화장실 창문을 통해 배 안으로 들어오고, 시간은 다시 9시 47분이다.
과연 어느 시간대, 어느 사건부터 현실과 비현실이 갈라진 걸까. 앞부분의 9시 47분과 마지막의 9시 47분은 과연 동일한 시간일까. 그 배는 혹시 평행우주의 다른 배가 아니었을까…. 이 책은 독자의 나이대와 경험에 따라서, 책을 읽은 횟수에 따라서, 또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서 짜릿한 시간 여행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종말과 구원에 대한 종교적 알레고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주는 것이 예술의 힘일 것이고, '09:47'은 그러한 역할을 하기 충분한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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