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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에 발길 '뚝' 끊겼던 장자못, 하루 6000명 찾는 명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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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구리 교문동에 있는 장자호수공원엔 사람 이름과 얽힌 이야기 하나가 전해진다. 호수 자리는 옛날에 장자라는 큰 부자가 살던 땅이었다. 어느날 동냥 온 승려에게 장자는 시주하는 대신 쇠똥을 퍼줬고 그 일로 천벌을 받았다. 그 벌은 다름 아닌 집터가 푹 꺼지면서 늪으로 변한 것. 이후 사람들은 그 늪을 ‘장자’로 불렀다.
인색하기로 악명 높았던 장자만큼이나 장자호수는 고약한 냄새로 유명했다. 1990년대 말 상류에 대규모 개발이 이뤄지면서 생활하수가 흘러들어 악취가 진동했다. 사람들이 다가서기를 꺼리던 호수 주변은 20여 년에 걸친 개선사업을 통해 걷기 좋은 명소로 환골탈태했다. 시민들은 이젠 이곳에서 호수와 조화를 이룬 빼어난 풍광을 즐기며 자연을 만끽한다.
지난달 24일 찾아간 장자호수생태공원. 한·일월드컵의 열기가 뜨거웠던 2002년 6월 문을 연 곳이다. 1990년대 도시화로 세워진 고층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주변과 달리 발길을 들인 공원 안은 딴 세상이었다.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한 나무들과 형형색색의 꽃, 수십 종의 수생식물이 호수와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한다. 한눈에 봐도 생태공원의 면모였다.
공원 안쪽 장자호수 주변으로 나 있는 산책로는 자연 그대로의 흙길이다. 걷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관리가 잘 돼있다. 가끔 신발을 손에 들고 맨발로 흙을 밟으며 걷는 시민도 눈에 띈다.
장자호수공원은 봄, 가을철이 더 아름답다. 봄엔 흰색 벚꽃이 만개하고 가을철에는 빨강, 노랑으로 물든 단풍이 지천이어서 풍광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남다르다.
산 하나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그 크기도 대단하다. 28만2,435㎡ 공원 곳곳으로 이어진 산책로는 3.6㎞에 달한다. 주변 경치를 즐기면서 여유 있게 걸으면 1시간은 족히 걸리는 길이다. 예닐곱 명이 함께 걸어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만큼 길 폭도 넓다.
접근도 쉽다. 공원 상·하류에 설치된 정문과 후문 말고도 사방이 도심과 연결돼 있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호젓하게 호수 길을 따라 걸으면 50년 넘은 느티나무도, 5년 된 철쭉꽃도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숲길을 걸으며 다양한 꽃과 나무를 마주하는 재미가 남다르다. 공원엔 50여 종 4만6,000그루의 나무와 9만8,400주의 꽃이 곳곳에 심어져 있다.
공원 중앙에 자리한 7만㎡ 크기의 호수에선 연신 시원한 물줄기가 솟구쳐 오른다.산책로 중간중간엔 의자에 앉아 쉬는 사람도 자주 눈에 띈다. 세 살 아들과 함께 거의 매일 이 길을 걷는다는 김미정(34)씨는 “풍광이 빼어나 산책하기 좋은 길”이라며 “계절마다 피는 꽃이 달라 늘 새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게 매력”이라고 말했다.
과거엔 오·폐수 유입으로 악취가 진동해 시민들이 얼씬도 않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시민들이 손꼽는 자연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여러 개의 특별한 공간도 마주한다. 공원 정문 쪽에 자리한 장자호수생태체험관이 대표적이다. 2012년 개관했다. 시에서 위탁받은 전문기관이 운영하는 2층(273㎡) 규모의 체험관에선 옥상텃밭 가꾸기, 환경 보드게임 등 다양한 친환경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수시로 생태 전시회도 열린다.
연꽃 습지원, 장미원 등 꽃 테마 공간도 걷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걷는 길 곳곳에 마련된 예쁜 모양의 벤치는 주변 경관을 감상하며 휴식하기 좋은 장소다. 포토존에 선 사람들 표정엔 웃음기가 가득했다. 호수와 푸른 숲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포토존은 배와 반달 모양의 의자로 꾸며져 있었다. 숲속놀이터, 잔디광장, 인공섬, 야외운동시설, 바닥분수 등 다양한 연령의 이용자를 배려한 공간도 돋보였다.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야외무대에선 각종 음악회와 전시회도 열려 시민들의 휴식의 질을 높여줬다.
김기출(77)씨는 “길을 걷다가 그네에 앉아 쉬기도 하고, 다양한 기구를 이용해 운동도 한다”며 “1시간을 걸어도 지루하지 않고, 마치 놀이터에 놀러온 기분”이라며 웃어 보였다.
올해 명소 하나가 더 생겼다. 장자호수공원과 한강으로 연결되는 일명 ‘토끼굴’(인공보행로)을 아트 갤러리로 새롭게 꾸민 것. 시민들이 그림을 그려 기부한 2,036개의 타일작품을 붙여 좁고 어두운 굴 안을 밝고 세련된 분위기로 바꿔 놓았다. 바로 옆 또 다른 토끼굴은 아예 예술작품 전시관으로 탈바꿈했다. 작가 백용인의 공공미술 작품 ‘내가 만드는 시간’ 조형물 20여 점을 설치해 굴 속 전체를 미술 프로젝트 공간으로 만들었다.
구리시 관계자는 “밤 시간에 굴속이 어둡고 침침해 여성, 아이들이 다니기 꺼리는 우범지대였다”며 “갤러리로 만든 뒤 분위기가 밝아져 사람들이 오히려 찾는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장자호수공원 하루 이용객은 6,000여 명에 이른다.
장자호수는 과거 한강과 왕숙천의 배후습지로 남아 있던 연못이다. 예전엔 ‘장자못’으로 불렸다. 1990년대 상류의 대규모 택지개발로 생활하수가 흘러들기 시작하면서 불행이 시작됐다. 수질이 나빠지고 퇴적물도 쌓이면서 악취가 진동했다. 냄새나는 연못에 사람이 올 리 만무했다.
이곳이 사람이 모이는 생태공원으로 다시 태어난 건 2002년. 구리시가 1997년 수질 개선 및 생태하천 복원 사업에 나선 지 3년 만에 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구리시는 2009년에도 장자호수 양쪽 폭을 40∼50m로 넓히는 2차 생태하천 개선사업을 벌였다. 1, 2차 개선사업엔 재정 478억 원이 투입됐다.
기존보다 2배가량 넓어진 수변 공간에는 산책로가 깔리고, 생태수목 관찰원, 자연습지 등이 들어섰다. 상류 쪽엔 바닥분수와 공연장, 광장이 꾸며졌다. 호수길 구석구석에는 나무와 꽃을 심었다. 호수의 수질 개선에도 힘을 쏟았다. 맑은 한강물(하루 1만5,000톤)을 유입시키고, 심층 순환기 등 물 흐름을 돕는 시설도 설치했다.
물이 맑아지고 나무가 자라 숲을 이루면서 다시 새가 날아들었고, 개구리 울음소리도 들렸다. 민원 덩어리 애물단지 하천변이 20여 년의 끈질긴 생태공원화사업을 거치면서 도심 속 걷기 좋은 명소로 거듭났다.
장자호수공원길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민선 7기가 들어선 2018년 이후 3, 4차 개선사업을 진행 중이다. 1만8,760㎡ 부지를 더 늘려 7개의 디자인 정원과 30개의 생활정원을 조성하는 게 핵심이다. 야생초화원, 습지원도 새로 만들고 있다. 사업비 30억 원이 투입된 3차 개선사업은 올해 말 완료된다.
2022년부터는 공원 부지를 더 넓히는 4차 개선사업에도 착수할 방침이다. 장자호수공원을 구리를 넘어 수도권의 대표 생태공원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 담긴 전략이다. 첫 관문은 성공적이었다. 지난달 8~24일, 17일간 장자호수공원에서 열린 ‘2021 경기정원문화 박람회’가 온라인 관람이라는 첫 시도에도 누적 방문자 5만여명을 기록하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장자호수생태공원은 이제 구리 시민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안승남 시장은 “구리장자호수공원을 더 발전시켜 뉴욕 센트럴파크 버금가는 도심 속 휴식공간으로 만들겠다”며 “최종적으로 개선사업이 완료되면 호수공원의 관리 운영권 모두를 시민들에게 돌려드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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