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비대면 사회에서 KT 인터넷 먹통되자 전국 혼란..."아현국 화재 교훈 잊었나"

입력
2021.10.26 04:30
1면
구독

바쁜 월요일 점심에 인터넷 먹통...소상공인들 '비명'
온라인 강의 중단, 건물 출입문 통제 등 전국적 피해
2018년 아현국사 화재 사고 이어 3년 만에 사고 반복

오전 11시 20분쯤부터 전국 곳곳에서 KT의 유·무선 통신 장애를 겪고 있는 가운데 25일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한 식당에 KT 접속장애로 인한 현금결제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시스

오전 11시 20분쯤부터 전국 곳곳에서 KT의 유·무선 통신 장애를 겪고 있는 가운데 25일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한 식당에 KT 접속장애로 인한 현금결제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시스

25일 오전 한때 KT의 유·무선 인터넷이 30분 이상 마비됐다.

KT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20분께부터 발생한 인터넷 접속 오류는 30분이 지난 11시 50분 이후부터 순차적으로 회복됐다. 일부 지역에선 1시간 이상 피해가 지속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시간대에 KT 휴대폰에선 통화 도중 끊김 현상까지 일어났다.

KT "외부 공격 아닌 내부 오류로 사태 발생"

이날 사고는 KT에서 사고 발생 직후, 밝힌 대규모 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디도스, DDoS)이 아닌 자사 직원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KT는 사고 발생 3시간이 지난 오후 2시 30분께 "면밀히 확인한 결과 라우팅 오류를 원인으로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라우팅 오류란 내부 데이터 센터들 간의 네트워크 접속량(트래픽) 경로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연결이 잘못되면서 발생하는 오류를 말한다. 즉, 이번 사태가 내부 오류로 인해 발생했다는 얘기다.

KT의 인터넷 장애는 과거에도 불거졌다. 지난 2018년 충정로 KT 아현국에서 발생한 화재로 서울 중구와 용산구, 서대문구 일대에 통신 장애가 이어진 바 있다. 당시에도 카드단말기 먹통으로 자영업자들이 큰 피해를 겪었다. 황창규 당시 KT 회장은 "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사과했지만, 3년 만에 또다시 대규모 서비스 장애를 가져왔다.

KT의 어설픈 대응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KT는 사고 발생 초기 "KT 네트워크에 디도스 공격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공지했다. 하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조사 결과, 외부 공격의 흔적은 없었던 것으로 진단됐다.

카드 단말기 멈추며 소상공인 피해 봤지만...보상은?

이날 사고로 파생된 후폭풍은 컸다. KT 인터넷망을 이용한 각 기업들의 업무는 중단됐고, 전국에 위치한 식당이나 카페 등에선 카드 결제 중단으로 혼란은 가중됐다. 특히 소상공인들은 이날 '공포의 점심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인터넷 연결이 필수인 카드단말기의 '먹통'으로 결제 중단과 지연이 겹치면서 음식점이나 카페 등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피해는 학생들에게도 돌아갔다. 이날 오전 온라인상에서 강의를 진행한 대학에선 '휴강'을 해야만 했다. 증권가에선 홈트레이딩 시스템(HTS) 불통 등으로 개미투자자들의 피해도 속출했다.

망신살은 해외까지 뻗쳤다. 이날 온라인상에서 세계대회로 생중계된 '2021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우승상금 3억 원) 8강전이 인터넷 통신망 장애로 급기야 중단됐다. 중국과 한국 선수들의 대결로 진행된 해당대국은 결국 다음 날 재대국을 벌이기로 결정됐다.

또 다른 문제는 피해 보상이다. 피해 규모가 큰 만큼, 보상에 대한 이용자들의 관심도 크다. KT는 이에 대해 "구체적인 피해 규모를 파악 중"이라는 입장이지만, KT 약관과 과거 사례를 보면 실질적 피해 보상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KT 약관에선 이동전화와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연속 3시간 이상 서비스를 하지 못할 경우 손해를 배상하게 돼 있다. 이번 사고의 경우 대부분 30~85분 내에서 복구됐다. 아현국 화재 사고 당시 KT는 피해를 당한 KT 유·무선 인터넷 가입 고객에게 1개월 요금을 감면해줬는데, 동케이블 가입자의 경우 1주일가량 인터넷 접속에 문제가 있었다.

앞서 이번 사고와 유사했던 판례도 이동통신사에 유리하다. 지난 2014년 3월 SK텔레콤에서 통신 장애가 발생했을 때 대리기사와 퀵서비스 기사 등 20여 명이 SK텔레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는데, 1·2심을 포함해 대법원까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대리기사가 통신 장애로 영업하지 못해 입은 손해는 일종의 '특별손해'"라고 봤다. 특별손해가 인정되려면 소송을 청구한 원고가 피해를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하는데, 책임 입증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다만 KT가 가입자 대상 통신요금 인하 등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배상책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대표가 나서서 '탈통신' 외친 결과라는 지적도

일각에선 최근 '탈통신'에 주력해 온 KT가 비통신 사업에만 역량을 집중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네트워크 관리에 소홀했던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해 취임한 구현모 KT 대표는 주력인 통신사업의 성장 한계를 극복한다는 목표를 제시하면서 이른바 'ABC(AI(인공지능)·빅데이터·클라우드) 사업' 육성에 주력해 왔다. 이날 오전에도 KT는 인공지능(AI) 서비스를 소개하는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구 대표는 직접 AI 고객센터 서비스 'AI 통화비서'를 소개하면서 "2025년까지 관련 매출을 5,000억 원까지 늘리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이번 사태로 체면만 구겼다.

KT 새 노조는 "아현화재 당시 청문회까지 거치며 황창규 전 회장이 기본 통신 서비스에 충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3년 후 구현모 사장 경영 하에서 또다시 재난적 장애가 되풀이됐다"며 "기본에 충실히 하지 않고 수익성 위주의 사업에만 집중하다 보니 벌어진 어처구니 없는 장애"라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류종은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