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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종전선언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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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대화재개 동력을 찾기 위한 한미 간 접촉이 급속히 빨라졌다. 문재인 정부가 제안한 종전선언에 무관심한 미국의 기존 입장이 다소 열릴지가 핵심이다. 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유엔총회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한반도에서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자는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고, 북한은 남북정상회담까지 거론하며 반응했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재가동,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발사하면서 한편에선 남북 통신선을 복원하며 혼돈을 유도하는 상황이다. ‘대화 따로, 핵개발 따로’라는 이중전략을 재확인할 수 있다.
종전선언은 말 그대로 전쟁이 끝났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전쟁의 재발방지나 평화를 강제하는 장치 없이 전쟁종료만 선언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어 국제사회에서 비중 있게 거론되진 않는다. 평화협정 같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가 간 조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화협정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단계를 접어두고 우선 평화의 정치적 의지라도 밝히자는 취지가 종전선언인 것이다.
이를 실천하려면 1953년 휴전협정을 체결한 미국·중국·북한과 6·25전쟁 당사자인 한국이 참여해야 한다. 전쟁을 시작한 김일성은 전세가 불리하게 흐르자 스탈린에게 정전을 호소했고, 이승만은 세계 최강의 미군이 한반도에서 싸우는 마당에 북진통일을 이뤄야 한다며 휴전을 결사반대했다. 결국 남한정부가 참여하지 않은 채, 클라크 유엔군사령관과 펑더화이(彭德懷) 중공지원군 사령관, 그리고 김일성 등 3인의 서명으로 전쟁은 휴전상태로 들어갔다.
지금 논쟁은 종전선언이 비핵화로 가는 입구가 될 수 있지만, 추후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구실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다. 전쟁이 끝났으니 미군이 한국에 주둔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유럽의 전례를 보더라도 전쟁 후에도 미군이 주둔하는 데 문제가 없다. 주한미군의 존재는 북한 위협도 있지만 ‘동북아 균형 수단’으로서의 기능이 더 크다. 혹자는 동북아에서 미군이 떠나는 그 즉시, 대만이 없어지고(중국의 침공), 일본이 독도를 찾겠다며 도발을 시도할 것으로 단언하기도 한다.
주한 미군은 한반도가 휴전 상황이라 남아있는 게 아니다. 아프간 철군이 증명하듯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안 되면 전쟁이 재개된다 해도 철수할 것이다. 중국의 해양 진출을 막고, 일본의 재무장을 허용하지 않고 관리하는 미국의 국익이 있을 뿐이다. 종전선언이 제대로만 된다면, 남북은 물론 북한이 미국과 교류를 시작해 중국 측의 부담과 경계가 커질 것이다. 일본이야말로 종전선언으로 한반도의 전쟁 위험이 감소하면 북한 위협을 명분 삼아 군비를 강화하는 행보는 찬물을 맞게 된다.
한반도 종전선언은 누구든 유혹할 달콤한 희망이다. 위험적 잠재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전선언이 북한 핵무기 폐기를 담보할 수만 있다면 반대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임기 말 시간에 쫓겨 추진하는 종전선언에 동력이 붙으려면 반드시 조건을 달아야 할 것이다. 북한이 핵 시설의 중요목록 신고, 핵무기 일부 반출 같은 실질적 폐기 수순을 약속할 때 종전선언에 합의할 수 있다는 안전장치를 연계하지 않는 한 한국 내 국론분열조차 돌파하기 힘들 것이다. 문 정부의 마지막 시도에 바이든 행정부가 마음을 움직일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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