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하면 불이익..." 사기업 뺨치는 공공기관 '직장갑질'

입력
2021.10.24 16:30
수정
2021.10.24 16:44
0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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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에서 공무직(공무원을 보조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으로 근무하는 A씨는 정규직 공무원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다. 동료들이 자신만 두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것은 물론 "빨리 나갔으면 좋겠다", "위에 얘기해 일을 못하게 하겠다"는 말까지 수시로 듣는다. A씨는 "따돌림이 더 심해질 게 뻔해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를 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중앙·지방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에서의 '직장 내 괴롭힘'이 민간 기업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란 지적이 나왔다. 피해를 겪고도 문제제기를 하기 어려운 공무원 조직 특유의 수직적이고 경직된 문화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문제가 반복 발생하는 공공기관에는 더 엄격한 잣대로 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공기관 종사자 26% "직장 내 괴롭힘 경험했다"

24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7일부터 14일까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지난 1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공공기관 종사자 중 26.5%가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직장인 전체 평균(28.9%)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진료나 상담이 필요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답한 사람의 비중은 공공기관 종사자의 경우 32.6%로 직장인 평균(29.8%)보다 높았다. 괴롭힘을 당했을 때 대응 방법 역시 공공기관 노동자는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가 76.7%로 직장인 평균(72.7%)보다 높았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은 "공공기관은 가장 안정적인 직장이고 모범을 보여야 하는 곳임에도 상명하복과 위계질서가 강하다는 특성으로 인해 괴롭힘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특히 정규직이 공무직 또는 비정규직에게 갑질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들어 경찰과 소방관, 교사 등이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기도 했다.


"수직적 문화가 근원... '신고하면 해결된다' 믿음 줘야"

직장갑질119는 이 같은 비극이 반복되는 근본적 원인으로 '신고를 이유로 한 보복'을 꼽았다. 근로기준법과 정부의 가이드라인에는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을 때 ①피해자 등을 대상으로 객관적으로 조사 ②피해자 보호 ③가해자 징계 ④비밀누설 금지 ⑤불리한 처우 금지를 반드시 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처벌할 수 있는 조항까지 명시돼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대부분 신고를 하면 불이익을 겪게 되고, 결국 참고 견디다 비극적인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오 위원장은 "2018년 7월 정부가 갑질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도 공공기관 갑질 사건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은 '신고하면 해결된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직장갑질이 반복해서 발생한 부처와 공기업에 대해서는 특별감사 및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는 등 정부가 더 강력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유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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