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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는 삼겹살이 되려고 태어났을까?

입력
2021.10.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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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말 충남 청양군 한 돼지농장의 돼지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8년 말 충남 청양군 한 돼지농장의 돼지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얼마 전 동물 관련 신간 추천사를 써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스웨덴의 수의사 리나 구스타브손이 돼지 도축장에서 85일 동안 근무하며 보고 겪은 것을 기록한 내용이라고 했다. 스웨덴은 동물복지 국가로 알고 있었기에 실상이 어떤지 궁금했고, 먼저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저자는 매일 '근무일지+일기' 형식의 기록을 써 내려갔다. 그는 살아있는 돼지가 우리 식탁에 오르기 전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 제품이 되는지 지나칠 정도로 자세하게 보여준다. 도축작업은 돼지가 차에서 내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계류장까지 이동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험난하다. 돼지는 앞에 있는 돼지를 따라가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기다려주면 알아서 움직인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이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한다. 이들에게 시간은 결국 돈이기 때문이다.

동물복지 도축장 및 운송차량 지정 기준에 맞는 도축장에서 도축 전 계류장에 있는 돼지들. 국립축산과학원 유튜브 캡처

동물복지 도축장 및 운송차량 지정 기준에 맞는 도축장에서 도축 전 계류장에 있는 돼지들. 국립축산과학원 유튜브 캡처

사람들은 작은 구슬이 들어있는 플라스틱 몰이채로 돼지를 때리면서 몰고, 놀란 돼지들은 버티려고 안간힘을 쓴다. 저자는 "(돼지들이) 고기가 되어 우리 식탁에 오르기 위해 여기 와 있다"라며 "그런데 고기가 되러 가는 길에도 매를 맞는다"라며 마음 아파한다.

우리는 보다 값싸게 먹기 위해 돼지를 개량했고 효율적인 도축방법을 고안해냈으며 그 수명을 마음대로 정해버렸다. 이는 돼지가 사람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난 것을 당연시한 결과인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건 돼지는 생각보다 똑똑하고 사람과 너무 닮았다는 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돼지는 다른 돼지가 방금 배운 내용을 빠르게 이해하고 친구들의 정서적 상태에 매우 강한 영향을 받는다. 또 우리 심장은 돼지와 너무 닮아 인간의 심장을 돼지의 것으로 대체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며, 피부도 너무 비슷해서 피부 통증의 정도를 특정하는 동물실험은 돼지한테 한다고 했다. 돼지의 혀 표면 맛봉오리(미뢰)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는 점도 신기했다.

우리는 돼지를 살아있는 돼지가 아닌 대형 마트에서 살코기로 진열된 형태로 만난다. 돼지열병으로 살처분을 당해도 돼지복지보다 삼겹살 가격에 대해 우려하는 보도가 먼저 나온다. 뉴시스

우리는 돼지를 살아있는 돼지가 아닌 대형 마트에서 살코기로 진열된 형태로 만난다. 돼지열병으로 살처분을 당해도 돼지복지보다 삼겹살 가격에 대해 우려하는 보도가 먼저 나온다. 뉴시스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돼지 도축장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지난해 71개의 도축장에서 도축된 돼지는 약 1,800만 마리. 도축 수는 매년 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돼지가 겪는 실상은 스웨덴 돼지보다 참혹한 것 같다.

피를 빼는 방혈 작업 전 돼지를 마취시켜야 하는데 돼지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선 전기도살법(전살법)보다 이산화탄소(CO₂)마취법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CO₂가스마취법이 가능한 곳은 6곳에 불과하다. 또 1,800만 마리 가운데 몇 마리가 CO₂마취에 의해 도축되는지에 대한 통계는 없다. "품질, 가격, 위생과 관계없는 내용이라 따로 통계를 뽑지 않는다"라는 게 농림축산식품부의 설명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옥자'를 통해 공장식 축산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넷플릭스 제공

봉준호 감독은 영화 '옥자'를 통해 공장식 축산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넷플릭스 제공

더욱이 농식품부와 평가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CO₂마취보다 전살법을 선호하는 이유는 CO₂마취시설을 짓는 데 비용이 더 들기도 하지만 CO₂마취의 경우 부산물 품질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어떤 방법이 돼지에게 고통을 줄여주는 줄 알면서도 우리는 돼지를 생명이 아닌 상품으로만 보면서 이를 외면하고 있었다.

구스타브손 수의사는 대학시절 필독서였던 '돼지 개론'과 강연을 되새기며 "이 동물들은 그러라고 태어난 것이다"라는 문장을 기억해낸다. 하지만 돼지는 정말 사람에게 먹히기 위해서만 태어난 존재일까. 그렇지도 않지만 백번 양보해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이렇게 함부로 다뤄도 된다는 건 아니다. 우리는 동물을 희생시키는 게 꼭 필요한지, 또 그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고민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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