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함정

입력
2021.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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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미중 양자택일론에 빠진 한국외교
제3의 길 모색한 일본 인도 주목해야
상상력과 창의력의 외교 절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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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간 우리는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프레임으로 동아시아 정세 변화를 읽어 왔다. 떠오르는 강대국과 기존의 패권국이 만날 때 전쟁은 피할 수 없는가? 미·중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대답은 '한미동맹에 올인하자' 또는 '선택을 미루자'로 양분되었다.

그런데, 제3의 길을 찾은 사례도 있다. 일본-인도 주축이다. 중국의 부상에 불안을 느낀 일본은 인도에 주목했다. 2010년부터 동중국해에서 중·일 충돌이 잦아지고 2013~14년 히말라야 고원에서 중·인 국경분쟁이 일어났다. 적의 적은 친구라 하지 않던가. 2014년 9월 일본과 인도는 '특별전략·글로벌동반자관계'를 맺고, 원자력, 해양안보, 고속철 등 전방위 협력강화에 나섰다. 2017년 히말라야에서 또 충돌이 일어나자, 일본은 중국이 현상변경을 시도한다고 비난하고 인도태평양의 새로운 연대 구축을 인도에 제의했다.

10년 전 한국도 중견국 외교를 시도했다. 멕시코, 인도네시아, 터키, 호주와 5국협의체(MIKTA)를 결성하고, 아세안 외교 강화에 나섰다. 그러나 상상력이 모자랐다. 2015년 기준으로, 미국은 인구 3.2억 명에 GDP 18조 달러, 중국은 인구 14억 명에 GDP 10.8조 달러. MIKTA와 아세안을 합쳐도 체급 차이가 크다.

일본과 인도를 합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구 14.4억명 GDP 7.3조 달러. 충분하지는 않지만, 무게가 비슷해진다. 여기에 호주가 합류했다. 인구 2,000만에 GPD 1.4조 달러. 호주는 2007년 이래 일본과 매년 외교국방장관회의(2+2)를 해왔기에 의사소통이 쉬웠다. 2017년 미국을 끌어들여 4국 협의체(QUAD·쿼드)로 만든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대안 없이 오바마의 정책을 뒤집고 있던 트럼프 행정부에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은 호소력이 있었다.

지금 인도태평양의 판도는 중국이 세게 나올수록, 미국이 고립으로 후퇴할수록 중간지대가 강화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속도와 강도를 조절하는 것은 일본-인도 주축이다. 중국을 견제하면서 미국 정책의 변동성을 완화하려고 한다. 중국의 부상이 불안한 만큼이나 미국의 대외적 지향이 불확실하다는 의구심이 깔려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이 돌아왔다'고 해도 내년 중간선거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트럼프가 2024년 대선에 출마한다는 말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쿼드의 양면성을 이해하는 것 같다. 군사적 연대로서의 한계를 보기에, 영국·호주와 새로운 동맹(AUKUS)을 만들지 않았을까. 중국도 '쿼드'를 '아시아판 나토(NATO)'라고 비난만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일본-인도 주축과 4국협의체 출현으로 인도태평양의 전략적 지형이 바뀌고 있다. 호주는 인구 2,000만의 한계를 벗어나 인도태평양을 설계하는 신흥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인도는 비동맹의 전통과 외교적 자율성을 넘어 글로벌 강국으로 등장하고 있다. 일본은 역내 리더십을 회복하면서 평화헌법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대책이 달라진다. 'G2'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였으니, 우리가 미·중 구도에서 역내 정세를 본 것이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나,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安美經中)'이라는 프레임은 지나치게 단순했다.

앞으로 쿼드의 운용은 주의 깊게 살펴야겠다. 미국이 리더쉽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제 다자주의를 강화해야 한다. 중국, 대만, 심지어 영국도 CPTPP에 가입하려고 나서지 않는가.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우리를 양자택일로 내모는 함정이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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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제전 국립외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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