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은 여성이 아닌 사회적 이슈다

입력
2021.10.21 00: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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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는 지금 초저출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구 급감으로 인해 예측되는 사회경제적 위기에 대한 우려가 크다. 저출산의 해법?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못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해결책이 있다면 돌봄과 노동에서의 성평등일 것이다. 젊은 여성들에게 출산‧육아에 대해 물으면 가정보다 일이 더 중요하고, 노동시장에서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어렵고, 믿고 맡길 어린이집이 없다는 대답들을 듣게 된다. 돌봄에 대한 부담이 여전히 남성보다 여성에게 있으며, 기업은 인구 재생산의 이익을 누리면서도 육아하는 여성에 차별적이며, 가족돌봄을 사회화하겠다는 보육정책과 같은 돌봄정책은 질적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다.

인간의 삶은 돌봄에서 시작해서 돌봄으로 마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봄은 어린아이나 노인의 문제만은 아니며 아플 때도 장애를 겪을 때도 필요하다. 다만 돌봄이 필요한 시기와 정도와 내용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렇듯 돌봄의 필요성에서는 남녀 간에 차이가 없는데 돌봄의 제공에서는 가정에서든 노동시장에서든 여성의 비중이 크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수요자와 공급자의 성별 불일치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남성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시장 진입 경쟁을 해야 하는 MZ세대 여성들에게 돌봄부담은 불평등으로 인식될 것이다.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은 남성보다 짧은 노동기간과 상대적 저임금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다시 노후 연금 수준에 영향을 미친다. 초고령사회에서 노후를 보낼 MZ세대 여성들에게 돌봄으로 인해 노년기 소득이 남성보다 적을 수 있지만 감내하라고 설득할 수 없다. 인식과 현실의 부조화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노동시장은 또 어떠한가? 보육교사와 요양보호사 등의 돌봄노동의 가치는 저평가받는다. 낮은 임금 수준으로 인해 괜찮은 돌봄노동자의 진입이 어려워져 돌봄서비스의 질도 크게 나아질 수 없다. 돌봄노동을 저평가하는 사회에서 생산해내는 낮은 수준의 돌봄서비스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누구나 돌봄서비스의 수요자가 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결국 나의 삶의 질 수준을 낮추는 것으로 되돌아온다. 특히 어린아이들에 대한 돌봄의 질이 낮으면 개인의 인생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의 역량과 지속가능에도 부정적일 수 있다.

기존의 돌봄에 대한 인식과 현실로는 우리는 더 이상 삶의 질이나 지속가능한 사회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돌봄경제'라는 차원에서 재접근하고 이에 필요한 국가전략을 세워보자. 기존의 가정내 무급의 돌봄노동, 저평가된 노동시장에서의 돌봄노동, 그리고 남녀가 경험하는 노동시장에서의 유급노동의 관계를 조명하여야 한다. 돌봄은 여성 이슈가 아닌 누구나 돌봄을 받고 돌봄을 책임져야 하는 삶의 이슈이며, 돌봄의 위험은 가정 문제가 아닌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 요구되는 사회적 위험이며, 돌봄에 대한 사회정책은 사회적 지출이 아닌 성 평등한 경제활동 참여를 보장하고 전체 사회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사회적 투자로 접근해야 한다. 누구나 돌봄을 책임지는 성 평등한 돌봄민주주의의 사회, 돌봄노동의 사회화, 괜찮은 돌봄 일자리와 좋은 서비스, 돌봄노동과 선순환적 노동시장은 분명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백선희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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