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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라는 비민주적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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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은 분명 행정 수반을 뽑는 절차다. 그런데 그때마다 거의 국가를 교체하는 듯한 갈등이 우리 사회를 지배한다. 권력투쟁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실현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후보들 스스로부터 대통령 선거에 대한 성격 규정을 달리했으면 좋겠다. 삼권을 통할하는 통치자를 옹립하는 일이 아니라, 제한된 임기 동안 행정 수반의 역할을 맡을 자를 시민이 선발한다는 자각 말이다.
행정 수반의 역할과 관련한 호칭에 대해서도 생각할 점이 있다. 보통은 행정 수반의 이름 다음에 내각이나 행정부를 붙인다. '메르켈 내각' '바이든 행정부'처럼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이 역시 달라졌으면 한다. 대통령이 정부, 즉 입법·행정·사법의 기능 전체를 대표하고 관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의 87조, 88조, 89조에 나와 있는 국무회의의 역할을 중시한다면 대통령 이름 다음에 내각을 붙여도 좋다. 헌법상 국무회의는 행정 각부의 장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그 위상은 자문기구가 아니라 심의기관이다. 대통령과 총리 그리고 장관들이 '원 팀'을 이루어 행정부를 운영하라는 것이 헌법의 요청인 것이다.
부통령이 없고 국무총리가 있는 사실을 중시해 책임총리제를 하겠다면, 총리 이름에 내각을 붙여도 좋다. '김부겸 내각'처럼 말이다. 자연스럽게 대통령 호칭은 미국식 용례에 따라 '문재인 행정부'라고 부르면 될 것이다. 어떤 경우든 대통령 개인의 사인화(私人化)된 정부관을 표현하는 박근혜 정부나 문재인 정부 같은 호칭을 다음 대통령부터는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대통령이란 호칭 자체가 과도하게 권위적이다. 대통령제는 지금으로부터 240여 년 전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대통령제를 만들 당시 헌법제정위원들 사이에서 작은 논쟁이 있었다. President라는 호칭이 합당하냐는 것이었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소방대장도 President이고 크리켓동호회 회장도 President'라며 다른 호칭을 찾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법제정위원들 대다수는 President라는 그 '지극히 평범하고 평등한' 호칭을 좋아했다. 그 결과 "Mr. President!"라는,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호칭이 자리를 잡았다.
이러했던 President가 '대통령'이 된 것은 메이지유신을 지지했던 일본 지식인들의 번역어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천황에 버금가는 최고 통치자가 다른 선진국에도 있어야 했다. 왕이 없는 미국의 경우 President에게 그런 위상을 부여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때문에 일본어로 다이토료(だいとうりょう) 즉, 大統領이라는 번역어가 탄생했다. '통령(統領)'으로 불렸던 나폴레옹보다 더 높은 '대'통령이라는 호칭은 그렇게 등장했다. President가 본래 가졌던 지극히 평범하고 평등하고 친근한 이미지 대신 절대 권위의 통치자를 연상시키는 호칭이 된 것이다.
이미 오래 사용된 호칭을 쉽게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민주주의의 가치에 맞게 바꿀 것은 바꾸고 달리 이해할 것은 달리 이해했으면 한다. '문재인 정부' 대신 '문재인 내각'이나 '문재인 행정부'로 불리는 작은 변화만으로도 대통령을 둘러싼 과도한 권력투쟁을 제어하는 효과는 있다. 다만 이런 변화를 누가 시작할지가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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