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이재명의 '국감 승부수', 약될까 독될까… 대권가도 가를 시험대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약이 될까. 독이 될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8일로 예정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와 20일 열릴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 경기지사 자격으로 출석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야당의 공세에 맞서 제일 잘 싸울 수 있는 본인이 직접 등판하겠다는 겁니다. 이 후보의 정면돌파가 승부수가 될지, 자충수가 될지는 전적으로 이 후보 하기에 달려 있겠죠.
대선주자들에게 국감은 여러모로 검증의 무대입니다.
먼저 공격수인 국회의원 입장에서 보자면, 행정부를 상대로 감시와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며 정책 역량을 선보일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수비수인 피감기관 입장이라면 감당해야 할 몫은 더 커집니다. 의원들의 무수한 공격을 막아내면서도, 반격에 나서야 하니까요. 방어전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따라 민심의 성적표는 요동치기 마련이죠. 역대 대선주자들도 해마다 돌아오는 국감의 계절마다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그 가을 대전 속으로 들어가보죠.
차기 권력으로 가는 징검다리. 서울시장의 정치적 위상이죠. 그 길을 처음 닦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서울시장 재임 시절 호된 국감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청계천 복원사업 등으로 몸값이 오르기 시작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여당(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겐 일찌감치 잘라놔야 할 싹이었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여당 의원들의 쏟아지는 질문 공세는 '군기잡기'를 연상케 할 정도인데요.
"서울시 인구는 1,025만명인데 이 시장은 왜 인사말에서 1,100만명이라고 보고하느냐. 서울시의 팽창주의적 사고에서 비롯된 구시대적 발상 아니냐."
2005년 10월 7일 국회 행자위 서울시 국감.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이었던 원혜영 의원은 서울시 업무보고가 끝나자마자 서울시 인구 숫자를 두고 이 시장을 질타하기 시작합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냥 넘어갈 법한 내용이지만, 사소한 실수라도 놓치지 않고 지적한 건 본격 검증에 앞서 기선제압 성격이 강했죠.
이 시장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서울시가 (청계천 새물맞이 행사에) 홍보비 12억 원 등 전체 비용만 33억 원을 썼는데 너무 많이 쓴 것 아니냐"는 여당 의원의 지적에 이 시장은 "행사 비용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니,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다소 무책임한 답변을 내놓으며 맞섰죠. 우군 한나라당 의원들의 지원 사격에 힘 입어 이 시장은 여당 의원들의 질의에 시종일관 꼿꼿한 태도를 유지합니다.
그렇다고 늘 선방했던 건 아닙니다. 2004년 국감에서 수도권 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수도 이전 정책을 반대하는 행사를 지원했다는 이른바 '관제 데모' 의혹이 불거졌는데요. 이 시장은 "관제 데모가 아니라 민제 데모"라며 딱 잡아 뗐지만, 서울시가 일선 구청에 수도 이전 반대 집회 참석 협조를 요청하는 문건을 내려보낸 사실을 시인하면서, 거짓말 논란에 휩싸이며 도덕성에 상처를 입기도 했죠.
국감의 '매운 맛'을 알게 된 이 시장은 서울시장 임기를 마친 뒤 열린 2006년 국감을 피하려 애를 쓰기도 합니다. 당시 기사를 보면 그의 주변에선 "외국여행을 가서 한동안 얼굴을 비치지 말자", "봉고차 전국투어를 하자"는 등의 조언이 나오기도 했네요. 수비수 입장에서 국감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무대였나 봅니다.
"대선 출마 결심하셨나." "대권 행보가 활발하신데 사실상 확실시 하는 분위기가 있다." 2016년 10월 11일 국토교통위 서울시 국감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2017년 대선 출마 의지를 묻는 것으로 시작했다가, 출마 의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질문 공세가 이어졌는데요, 이 바람에 용산공원 조성 계획 등 현안은 뒷전으로 밀려났죠.
피감기관의 수장이 대선 잠룡인 경우 국감은 정쟁의 장으로 확전되기 일쑤입니다. 2018년 10월 18일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소속 의원들이 서울교통공사의 친인척 채용 논란의 수사를 촉구하며 서울시청을 항의 방문 한 게 대표적인데요. 시청 진입을 가로 막는 서울시 관계자들과 야당 의원들간의 몸싸움까지 벌어지면서 아수라장이 됐었죠. 시청 안에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서울시 국감이 진행중이었습니다.
정쟁을 벗어난다면 국감은 꽤 생산성 높은 정치 활동입니다. 국정을 감사하는 국회의원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뒤, 그 성과를 발판 삼아 대선주자로 거듭난 케이스도 있으니까요. 국감이 키워낸 스타,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얘기입니다.
2004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심상정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은 그 해 첫 국감부터 스타로 떠올랐는데요. 대한민국 대표 경제통 이헌재 경제부총리를 향해 날카로운 질문 공세를 퍼부어 '파생상품 시장을 통한 정부의 외환개입으로 1조 8,000억원이란 엄청난 손실이 났다'는 정부의 '천기누설'을 시인하게 만들었던 게 시작이었습니다. 심 의원의 날카로운 질문에 진땀을 뺀 이헌재 부총리는 "심 의원의 분석력이 탁월하다"고 치켜 세우기도 했죠.
심 의원은 2005년 '삼성국감'을 이끌며 기세를 이어나갑니다. 삼성 일가의 위법한 경영 시스템을 파헤친 '삼성보고서'를 만들기도 한 심 의원은 '금산법(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의 문제점이 삼성과 얽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내며 삼성 저격수로서의 입지를 다졌죠. 국감은 정의당 간판스타, 심상정을 만들게 한 정치적 자산이었던 거죠.
심 후보의 사례처럼 대선주자들에게 국감은 본인의 정책 역량과 비전을 선보일 수 있는 또 다른 무대이기도 합니다. 어떤 상임위에 소속돼 있느냐를 두고 대선주자의 관심사와 주력 분야를 가늠할 수도 있는데요. 특히 국가 경제의 큰 그림을 그려보고 나라 살림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기재위의 경우 대선주자 집합소로 꼽혀왔습니다. 국방위와 복지위도 대선주자들의 의정활동 코스로 여겨지고 있죠.
2012년 10월 5일 기재위 국감에선 여야 대선후보가 나란히 출석하는 진풍경도 연출됐습니다. 4선 의원을 지낸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는 국방위, 환경노동위, 행정자치위, 보건복지위 등 여러 상임위를 두루 거친뒤 기재위로 옮겨왔었죠. 초선 의원이었던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는 기재위에서 첫 상임위 활동을 시작했고요.
다만 두 사람은 시간차로 등장해 국감 정책 맞대결은 아쉽게도 성사되지 않았는데요. 문재인 후보는 오전에, 박근혜 후보는 오후에 등장하며 정면승부를 피해갔죠.
국감에 임하는 두 사람의 스타일도 대조적이었는데요. 문재인 후보는 보편적 복지와 무상보육을 둘러싸고 박재완 기재부 장관과 설전을 벌일 만큼 적극적으로 질의에 나섰던 반면 박근혜 후보는 수치를 받아 적거나, 자료를 들춰보며 경청하는데 집중하는 모습이었죠.
이에 야당 의원들은 질의의 화살을 박 후보에게 돌렸는데요. "새누리당이 일감몰아주기에 대해 대기업 총수 증인을 반대하고 있다. 후보의 입장을 밝혀달라"(안민석), "새누리당 경제민주화 공약과 어긋나지 않게 박 후보가 힘을 실어달라"(김현미) 압박에 들어갔죠. 그러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정부에 대한 감사를 하는 자리에서 왜 동료의원에게 질의를 하느냐"고 박 후보 엄호에 나서기도 했죠.
이에 안민석 의원은 "대선후보가 아니라 같은 기재위 소속의원으로 국감장에 온 것 아니냐. (질의 없이 가는 것은) 국감장을 능멸하는 것이다. 놀러왔냐"고 거세게 비판하며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습니다.
민심 청취라는 대권 행보에 주력하느라 상임위 출석이 저조했던 두 사람. 19대 국회 개원 이후 박 후보는 이날이 첫 출석이었고 문 후보는 두번째였는데요. 돌이켜보면 국감을 통해서도 민심의 부름엔 얼마든지 응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렇다면 국감 출석이란 정면돌파를 택한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 분노하는 민심에 어떤 답을 내놓을까요. 이재명 후보의 대권가도를 가를 첫 시험대인, '이재명 국감'. 국민들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