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주 동안 미국 워싱턴 정가의 가장 큰 이슈는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를 늘리는 법안이었다. 원칙적으로 연방정부가 꼭 하기로 한 재정지출은 세금 등을 통한 수입으로 충당해야 한다. 하지만, 세수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재정적자가 발생하고, 돈을 빌리는 방식까지 동원해야 한다. 미국 연방정부의 경우, 헌법에서 세입과 세출의 모든 과정을 연방의회의 승인을 받도록 해놓았는데, 정부가 돈을 빌릴 때도 적용된다.
19세기까지는 재무부가 돈을 빌릴 때마다 연방의회의 승인을 받았는데, 그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1917년에 연방정부가 돈을 빌릴 수 있는 한도만 법으로 정하고 나머지는 재무부에 위임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이후 모든 대통령이 재임기간에 한 번 이상 연방정부 부채한도 인상 법안에 서명했고, 1959년 이후 연방의회는 총 87번 양당 합의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최근 극심해진 정당 양극화와 맞물리면서 이 법안의 통과가 최근 10여 년간 정쟁의 대상이 되었고, 올해는 의회 정치의 핵심 사안으로까지 부상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공약을 위해서 정부 지출을 늘렸으니, 민주당이 알아서 부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공화당의 입장이다. 반면, 이미 공화당과 합의하에 통과시킨 법안을 위한 지출이 문제가 되는 것이니 과거의 선례대로 양당이 합의해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당의 입장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의 본질은 내년 중간선거를 위한 프레임 전쟁이다. 미국 국민들은 기본적으로 연방정부가 커지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예를 들면, 지금 논의되고 있는 4,025조 원 규모의 사회정책 관련 법안도 전체 국민의 59%가 금액을 더 줄이거나 아예 통과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 미국 전체 국내총생산(GDP)보다도 더 큰 3경 원 정도의 연방정부 부채 한도를 또 더 늘리는 법안에 찬성한다면, “돈을 흥청망청 쓴다”는 공격을 받기 딱 좋은 모양새다. 공화당은 민주당의 단독 처리를 유도한 이후 비난하는 전략을 쓸 계획이고, 민주당은 합의처리를 통해 ‘공범’이 되는 것이 목표이다.
우선은 상원 공화당의 양보로 12월 초까지 돈을 더 빌릴 수 있을 만큼만 한도를 인상하게 법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이 필리버스터 규칙을 바꿔 부채한도 인상 법안을 통과시킬 수도 있다는 계획을 세우자, 절충안으로 나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총무가 공화당 내부의 반발을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그래서 바이든 대통령의 어젠다를 어느 정도의 강도로 반대할 것인가를 두고, 공화당 내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이 더 극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잠정적 타협안이 상원을 거쳐 하원으로 갔는데, 지난 12일 화요일 하원을 통과하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법안 자체에 대한 표결을 한 것이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다른 법안의 처리를 위한 특별의사규칙을 통과시키면서 “이 규칙이 통과되면 연방정부 부채한도 인상 법안도 자동으로 통과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형식을 취했다. 부채한도를 인상하는 법안에 찬성했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음으로써, 민주당의 상당수 중도파 의원들을 배려한 것이다. 이들은 지금 인프라 확충 법안과 사회정책 법안의 처리 과정에서 당내 강경 진보파 의원들과 대치 중인 상황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립에 더해서 각 정당 내부의 파벌 싸움까지 워싱턴 정가의 상황이 복잡하다. 하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의 충돌과 이로 인한 갈등이 정치의 핵심인 것이고 이것을 제도로 해결하는 것이 정당정치의 본질이니, 앞으로 몇 달간의 상황을 잘 지켜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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