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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여전히 여성은 남성보다 적게 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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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대기업 계열사가 경력직 채용 면접에서 여성 응시자들에게 “결혼이나 출산계획이 있냐”는 질문을 해 논란이 됐다. 부당함을 느낀 면접 응시자는 이를 고용노동부에 신고했고, 언론에 의해 기사화됐다. 이 ‘논란’은 아이러니하게도 구직 시장에서의 노골적인 성차별이 더 이상 공고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들이 고용주의 안이한 성차별을 언제든 ‘고발’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차별, 젠더 편견, 유리 천장의 문제는 이제 확실히 사회의 주요 의제가 되었다. 여성의 커리어를 제약하는 장애물이 명시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은 대체로 많은 기회가 ‘평등’해 보인다. 그런데, 그렇다면 도대체 왜 여전히, 여성은 남성보다 적게 버는가? 고등학교 성적도 여성이 뛰어나고 대학도 여성이 남성보다 많이 졸업하는데, “왜 여성은 연차와 업무 경력에 걸맞은 수준의 보수를 받지 못하는가?”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인 클라우디아 골딘은 그의 저서 ‘커리어 그리고 가정’에서 이 같은 성별 소득 격차의 근본 원인을 ‘노동의 구조화되어 있는 방식’에서 찾는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최초의 여성 종신 교수이자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늘 거론되는 골딘의 최신작으로, 국내에는 최초로 번역되는 골딘의 저서이기도 하다.
직종 선택의 격차도 사라지고, 젠더 고정관념도 줄어든 오늘날, 남녀 간 소득 격차는 ‘가정’에서 비롯한다. 전에 없이 많은 여성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학위를 갖고 도전적인 커리어를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대학 졸업 직후에는 동등한 출발선에 서 있었던 남성과 여성이 10년쯤 후에는 노동 시장에서 다른 역할을 맡고, 이에 따른 임금 격차가 발생한다. 쉽게 예상되듯 이 변화는 아이가 태어나고 한두 해 이후부터 시작되는데, 이는 더 많이 일하는 사람이 더 많이 버는 노동시장의 탐욕성 때문이라고 골딘은 지적한다.
즉, 부부 둘 다 덜 일하고 덜 버는 일자리를 택하는 것보다는, 부부 중 한쪽이 탐욕스러운 일자리를, 다른 한쪽이 그렇지 않은 일자리를 택하는 쪽이 가구 소득 측면에서 더 효율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부간 공평성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한쪽은 가족 구성원에 대한 돌봄 책임을, 한쪽은 ‘탐욕스러운 일’(greedy work)을 통한 경제적 부양의 책임을 질 수밖에 없고,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적인 성별 역할 규범에 따라 돌봄의 책임은 자연스레 ‘엄마’, 즉 ‘여성’의 몫으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어디에 있을까? 골딘은 약사 직군의 변화에서 희망을 찾는다. 미국에서 약사 직군은 성별 소득이 다른 직종보다 동등할 뿐 아니라 소득 자체도 높다. 약사 직군 역시 과거에는 불규칙하게 근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20세기를 거치며 의료 시스템과 건강보험의 변화에 따라 장시간, 불규칙하게 노동하지 않도록 바뀌었고, 이는 자연히 성별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결과를 불러왔다.
결국 더 높은 수준의 성평등과 부부간 공평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노동이 구조화되어 있는 방식을 바꾸고, 유연한 일자리가 많아지고 더 생산적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골딘은 주장한다. 이 같은 골딘의 문제의식은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일반화되고 돌봄 노동의 경제적 가치가 재조명되는 오늘날 더욱 유효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같은 골딘의 진단과 결론이 ‘쉬운 해법’은 아니다. 노동 시장의 개혁을 이뤄내야만 성평등 역시 가능해진다는 전제는 오히려 더 아득한 숙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골딘이 책의 상당부분을 지난 100년간 미국 여성들이 일과 삶, 커리어와 가정을 양립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역사를 들여다보는 데 할애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것은 시간의 문제다.
"여성들은 이미 한 세기 전부터 이 동일한 질문을 해 왔다. 그들은 답을 찾아 나가면서 장벽을 부수었고 기회를 넓혔고 격차를 줄였고 다음 세대에 교훈을 넘겨주었다. 하지만 우리의 불확실한 미래에서 이상적인 균형을 달성하려면 변화가 필요한 것은 여성이나 가정만이 아니다. (...) 노동과 돌봄의 시스템 자체가 재사고되어야 한다. 모든 것은 시간의 문제다."
클라우디아 골딘 '커리어 그리고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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