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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람·인간이 빚은 '보석' 천일염... 올해 마지막 채취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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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채염(소금 채취) 작업이 한창인 전남 신안군 암태읍를 찾았습니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새벽이지만, 인부들은 염전 한곳에 모아둔 천일염 결정을 창고로 옮길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습니다. 이날 기상 악화가 예보됐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비가 잦고 변덕이 심한 날씨는 채염 작업에 많은 지장을 줍니다. 언제 비가 올지 알 수 없고, 해가 나고 드는 때를 맞추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잠시잠깐 방심했다간 한 달간 정성껏 일군 천일염이 빗물에 순식간에 녹아 없어지고 말 테니, 이럴 땐 비가 오기 전에 서둘러 거둬들이는 게 상책입니다.
이날은 올해 마지막 채염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채염 시기는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데, 신안 지역은 보통 4월 중순께 시작해 9월 말 마무리합니다. 이 시기가 지나면 일조량 등 채염 조건이 나빠지기 때문이죠. 다만 올해처럼 여름이 유난히 덥고 긴 해에는 10월 중순까지도 채염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대파질(대파기로 소금을 긁어모으는 일)'로 분주한 인부들 사이에서 이제 막 '소금' 형태를 띤 천일염 결정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이크로 렌즈로 확대 촬영해 보니, 자그마한 결정들은 하나같이 정육면체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각각의 모양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일률적인 것은 천일염을 구성하는 나트륨과 염소의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천일염을 바다와 태양, 갯벌과 바람의 조화가 빚어냈다고 해서 '자연의 보석'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복잡한 과정과 인내의 시간, 무수한 사람의 손길이 더해져야만 비로소 천일염이 탄생합니다. 그 과정을 보면, 가장 먼저 해수를 취수해 저장한 뒤 '제1 증발지'와 '제2 증발지'를 차례로 거치면서 태양과 바람으로 수분을 증발시킵니다. 수분이 날아가면서 농축된 소금 원료는 '결정지'로 넘겨 염도를 끌어올립니다. 처음 해수를 취수한 날로부터 약 28일이 지나면 사진과 같은 천일염 결정이 만들어지죠. 이게 끝이 아닙니다. 결정지 바닥에 얇게 깔린 우유 빛깔 결정들은 인부들이 일일이 '대파기(소금을 긁어모으는 도구)'로 대파질을 하고, 창고에 쌓아 간수를 제거해야 출하가 가능합니다.
천일염은 별도의 가공 없이 그대로 식용하는 만큼 채염 과정에서 청결 관리가 생명입니다. 신안군 천일염생산자협회 이사인 문천수(60)씨는 "염전 면적의 80%를 차지하는 제1·2 증발지에는 순수 갯벌 외에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며 "모아진 해수를 증발· 농축하는 '과정지'나 결정지의 경우 친환경 장판이나 타일로 바닥을 덮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얻어진 소금을 '천일염', 공장에서 전자동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소금을 '정제염'이라고 부릅니다.
천일염의 존재감은 김장철에 그 정점을 찍습니다. 소금 없이는 김장이 불가능하니까요. 하지만 치솟는 소금 가격은 부담입니다. 2018년 값싼 중국산에 밀려 20㎏당 3,000원대까지 폭락했던 소금 가격은 올해 10월 상품 기준 3만 원대로 3년 만에 무려 10배나 올랐습니다. 김장철을 앞두고 수요가 늘어난 탓도 있지만, 정부의 탄소제로 정책의 영향도 적지 않습니다. 드넓은 염전에 태양광, 풍력 발전 등 대체에너지 발전시설이 들어서면서 천일염 생산지가 사라져가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폐염전이 늘고 있으니, 천일염의 몸값은 당분간 떨어지기 어려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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