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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와 소신의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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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올해 몇 년 만에 다시 돌아온 서울 서초동 법조기자단 기자실은 따분했다. 개혁의 칼날에 힘이 빠질 대로 빠진 탓인지 검찰 조직에선 활기를 느끼기 어려웠다. 전 국민의 관심사였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의혹 사태 때는, 경찰의 ‘활약’을 지켜보면서 “수사권 조정 때문에 (검찰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물론 월성 원자력발전소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수사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관련 수사 등 몇 번 꿈틀거림은 있었지만, 확실히 예전 모습은 아니었다. 수사 진행 상황은 관심사 밖으로 밀려나고, 지휘부와 수사팀의 갈등에만 초점이 맞춰지기 일쑤였다.
그러는 사이 검찰 내부를 타깃으로 하는, 그래서 어느 곳보다 조용히 움직이기 마련인 대검찰청 감찰부가 검찰 관련 이슈를 독식해 나갔다. 검찰청을 드나드는 기자들이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아침 발언’을 매일 중계하는 모습도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랬던 검찰이 이제서야 ‘밥값’을 좀 하려는 분위기다. 5년이면 어김없이 돌아온다는, 대선을 앞두고 펼쳐지는 ‘검찰의 칼춤’이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수사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는 꽤나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 전담 수사팀이 꾸려진 게 불과 보름 전인데, 의혹의 핵심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이미 구속했다. 민간사업자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인 김만배씨의 구속 여부도 곧 판가름 날 예정이다.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로 실체적 진실을 조속히 규명해 달라”는 발언을 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그리고 검찰은 한나절도 안 돼 김만배씨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씨는 전날 소환돼 자정이 넘어서야 귀가한 차였다. 당연히 의혹의 시선이 청와대와 검찰로 쏠렸다. “검찰에 대한 대통령의 정치적 하명”이라는 비판이 불거졌고, 검찰을 향해선 "(대통령 지시에 따른) 상식 밖의 영장 청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건 '검찰개혁'이었다. 분명 몇 달 전 느꼈던 따분함의 원인을 '검찰개혁으로 달라진 검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한 말씀'에 즉각 반응하는 검찰은 과거의 너무도 익숙한 모습 아니었던가.
사실 검찰개혁의 정의를 두고선 각자의 생각이 다 다를 것이다. "정치적으로 독립된 검찰 조직"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 박탈" 등 그간 사적으로 접했던 이들이 지향하는 가치 역시 각양각색이었다.
그중 공감하는 하나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소신을 가진 게 약점이 되지 않는 검찰”을 말하겠다. 정권의 입맛에 맞춰 칼춤 한 번 추고, 그 대가로 출세가도를 달렸던 지난 검찰과의 단절 말이다.
검찰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검찰의 수사권 대부분은 경찰로 넘어갔고, 한때 ‘잘나갔던’ 이들은 검찰 중심부에서 사라져 갔다. 이런 변화가 바람직한 검찰개혁 방향인지는 '완성체'를 보지 못한 지금, 아직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왠지 씁쓸한 입맛을 숨길 수가 없다. 분명 겉모습은 많이 바뀌었는데, 대통령 말 한마디에 들썩이던 '길들여진 검찰'의 행태는 여전하다. 그래서인지 문 대통령에게, 현 정부 검찰개혁의 목적과 성과를 갑자기 묻고 싶어졌다. 눈치의 검찰, 소신의 검찰, 어느 쪽인가. 그도 아니면 그냥 '잘 길들여진' 검찰이면 족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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