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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들은 왜 운동장으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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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향한 뿌리 깊은 편견 중 하나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편견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지난해 기준 여성의 생활체육 참여율이 60.3%로 남성(59.9%)보다 오히려 높기 때문이다. 2018년 처음으로 남성을 제친 여성의 생활체육 참여율은 이후 엇비슷한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는데도 유독 여성은 운동을 즐기지 않는다는 인상이 짙다.
많은 이들은 여성 팀 스포츠의 부재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요가나 수영, 필라테스 등 개인 운동 분야에서는 여성이 강세지만, 축구 등 단체운동에서는 여성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러나 최근엔 이마저도 달라지고 있다. 그간 잘 보이지 않던 '운동하는 여성'이 예능 프로그램과 도쿄 올림픽 등에서 조명되면서 운동장을 찾아 나서는 여성이 늘어난 덕이다.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여성 팀 스포츠 회원을 모집하는 글이 부쩍 올라오고 유도, 주짓수 등 무도관을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송채영(30·가명)씨를 축구장으로 이끈 건 한 권의 책이다. 작가 김혼비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축구 같은 팀 스포츠는 남성만의 것으로 생각했던 채영씨는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이어 SNS에서 인근 지역의 여자 풋살 클럽을 찾아 당장 가입했다.
"첫날은 엄청 떨렸어요. 오래 하신 분들은 서로 친하고 또 축구 실력도 뛰어날 거 같아서(주눅도 들고). 그런데 첫 날부터 정말 재미있어서 '진작 했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채영
축구 경기를 뛰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채영씨는 "남자들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축구로 스트레스를 매일 풀었을 거란 생각에 그저 부러웠다”라고 했다. 채영씨의 권유로 축구를 시작한 김지혜(30·가명)씨도 "그간 함께 숨 차오르고, 몸을 부딪치면서 끈끈해지는 경험은 남자만의 전유물로 여겨왔다"라면서 “여자들은 이런 재미를 알 기회를 어릴 때부터 박탈당했던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럴수록 '더 열심히 축구를 해야지'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덧붙였다.
체육 동호회에 가입한 여성은 전체의 5.9%(2020 국민생활체육조사·문화체육관광부). 그중에서도 단 2.6%만이 축구·풋살 동호회에서 뛰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에 따르면 2019년 아마추어 축구 동호회의 여성팀은 116개, 남성팀은 2,816개다.
수치로만 보면 모래사장의 바늘만큼이나 찾기 힘든 존재지만, 축구를 하는 여성은 해마다 늘고 있다. 지혜씨는 "축구를 해보니 재밌다는 여자들이 많아진 분위기 또한 도전해보고 싶다는 자극을 만들어줬다"라고 전했다. 채영씨는 초등학생인 제자들에게도 축구를 가르친다. 그는 "여학생들도 (축구를) 재미있어하면서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나가서 뛰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라고 했다.
최근 전국의 배구 트레이닝 센터는 여성 회원의 문의가 줄을 잇는다. 서울 지역의 한 센터는 주말반에 남녀 각각 12명이 정원인데, 남성은 3명이 등록한 반면 여성은 12명을 다 채운 것도 모자라 대기인원까지 받아야 했다. 대기 끝에 지난달부터 겨우 배구를 배우게 된 송수영(27·가명)씨는 "최근 올림픽 경기를 보며 '나도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타올라 배구공을 사서 혼자 공원에서 연습도 했다"라고 전했다.
수영씨는 지난해 공인노무사 시험에 합격, 한창 바쁜 신입 생활을 이어나가는 와중에도 일주일에 하루는 꼭 배구 센터에 간다. 수영씨는 "배구는 혼자 잘해서 되는 운동이 아니라 내가 못하더라도 뒤에 누군가가 있고, 동료를 향한 신뢰가 중요한 스포츠"라면서 "여성들끼리 서로 으쌰으쌰 하는 기분이 좋다"라고 했다.
수영씨와 마찬가지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의 올림픽 활약을 보고 배구를 시작한 유은수(33)씨는 토스를 연습하느라 팔이 멍으로 얼룩덜룩해졌지만, 그저 즐겁다. 중학교 때 치른 배구 언더 토스(낮은 공을 양손을 맞잡거나 밀착시켜 위로 올리는 토스) 수행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던 기억이 있는 은수씨는 서른이 넘어서야 배구를 본격적으로 배우게 되어 아쉬운 마음뿐이다.
그는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시작했으면 지역구 스타가 되지 않았을까"라면서 "올림픽이나 골 때리는 그녀들 등 예능으로 인한 한때 유행이나 냄비라고 (비판)하는 말도 있지만 운동은 한시적으로 해도 좋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저도 그렇고 대부분 마음속에 로망으로 오랫동안 간직했으나 실행에 못 옮긴 경우가 많을 것"이라면서 "그러다 올림픽이나 프로그램으로 용기를 얻고 시작하는, 하나의 계기일 뿐"이라고 했다.
유도 초단 양성현(29)씨는 일주일에 무려 다섯 번을 유도장에 간다. 이전에 수영 같은 다른 운동도 배워봤지만, 재미가 없어 금세 그만둔 반면 2018년 집 근처에 있는 유도장에서 시작한 유도는 이날까지도 꾸준히 계속하고 있다. 성현씨는 "승리욕이 강한 편이라 서로 경쟁하는 운동이 잘 맞는다"라면서 "상대를 완전히 던지는 한 판을 따내면 기분이 좋다”라고 전했다.
배우는 여성이 드물어서일까. 유도에서는 유독 여성 지도자를 찾기 어렵다고 성현씨는 전했다. 그는 "태권도에는 그래도 여자 사범이 있고, 주짓수도 여자 사범이 있는 도장이 많은데 (유도는) 서울에 여성 관장이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다고 안다"라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성현씨는 주변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여성 유도를 알린다. 그는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운동은 당연히 필요하다"라고 했다. 이어 "이전에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막연한 공포에 휩싸였다면 유도를 배운 이후로는 마음속으로 대처를 하게 됐다"라면서 "싸우겠다는 게 아니라 '이렇게라도 하고 도망가야겠다'라는 상상을 하며 마음의 준비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유도를 하면서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을 "전에는 안 되던 기술이 어느 순간 되기 시작했을 때"라고 꼽았다. 꾸준히 노력했더니 눈에 보이는 뭔가를 내 몸으로 이룰 수 있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게 좋았다는 것. 언제까지 유도를 계속할 예정이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최대한 될 수 있으면 할머니가 돼서도 하고 있으면 좋겠는데요."
어린 시절 운동장 구석에서 놀았지만, 이제는 이 운동장을 전속력으로 종횡무진 자유롭게 질주했으면 좋겠다. 땀도 뻘뻘 흘렸으면 좋겠다.
민지
'달리는 여자, 사람입니다'를 쓴 손민지 작가는 "학창 시절에는 운동을 싫어하던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체육 시간에 여학생들이 주로 하는 피구나 발야구도 싫었다. 손 작가에게 운동장은 뛰어 노는 공간이 아니라 두렵고 조심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그는 "항상 운동장에는 남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고, 그 축구공에 맞아 안경이 부러진 적이 몇 번이나 있다"라면서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공을 피하고, 운동장 한가운데가 아닌 가장자리만 돌아다니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자신을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여기던 손 작가는 30대가 되어서야 알게 됐다. "사실은 내가, 운동을 좀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어느덧 5년차 러너가 된 그는 "지금은 몸을 움직이는 게 너무 좋고 꼭 필요한 일이라고 느낀다"라고 했다. 이제는 달리기뿐 아니라 '춤'도 배우고 있다. 손 작가는 "달리기를 하고 몸을 움직이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느껴서 다른 활동도 찾아서 해보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주변에도 달리기 뿐 아니라 운동하는 여성들이 부쩍 늘었다. 손 작가는 "어릴 때는 운동하고 친하지 않았던 여자 친구들도 성장하면서 운동을 찾아서 하나씩 하는 게 보이더라"면서 "자전거를 하거나 헬스를 하거나 그런 식으로 자기만의 움직임을 찾아가는 일이 되게 중요한 것 같다"라고 했다.
손 작가는 말했다. "달리기를 하기 전에는 사실 제가 그만한 속도로, 그만한 힘으로 달릴 수 있다는 걸 몰랐거든요. 나에게 얼마만큼의 큰 힘이, 추진력이 있는지를 깨닫기 위해서라도 달리기나 운동을 해보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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