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은 ‘남성만의 잔치’… 올해도 여성은 1명뿐

입력
2021.10.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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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간 여성 수상 58명, 남성은 885명
경제학상은 1962년 신설 이래 2명 그쳐
"성별 할당제?外 방법으로 성평등 구현"

필리핀의 온라인 탐사보도 매체 '래플러' 공동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마리아 레사가 8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직후 메트로 마닐라 타기그시 자택에서 미소 짓고 있다. 타기그=AP 연합뉴스

필리핀의 온라인 탐사보도 매체 '래플러' 공동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마리아 레사가 8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직후 메트로 마닐라 타기그시 자택에서 미소 짓고 있다. 타기그=AP 연합뉴스

올해도 노벨상은 ‘남성만의 잔치’였다. ‘12 대 1’. 6개 부문 수상자 13명 중 여성은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 딱 한 명뿐이었다. 노벨상의 ‘성 불균형’ 문제는 이번에도 어김없었던 셈이다. 블룸버그통신은 11일(현지시간) “여성 수상자가 아예 없었던 2016, 2017년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지난 10년 평균보다는 낮다”고 일갈했다. 2010~2020년 노벨상 수상자로 호명된 여성은 연평균 두 명을 밑돌고 있다.

노벨상이 처음 제정된 1901년부터 따져도 120년간 여성 수상자는 고작 58명이다. 반면, 남성은 885명, 기관 및 단체는 25곳이다.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6.2%에 불과하다. 경제학상은 특히 성별 불균형이 심하다. 1969년 신설 이래 지금껏 여성 수상자는 고작 두 명에 그친다. 성차별 비판 여론이 커지자 2017년 노벨상 선정위원회는 “후보 추천 요건에 ‘여성 과학자 추천 독려’, ‘민족·지리적 다양성’을 추가하겠다”며 보완책을 내놨다.

그러나 다양성 확보 노력은 올해도 결실을 맺지 못했다. 벽은 높고도 단단했다. 최근 유엔 여성기구는 “수년간 노벨상 여성 수상자 비율은 양성평등이 더디게 진보한다는 걸 보여 준 또 다른 지표”라고 비판했다.

물리학상과 화학상, 경제학상 등 3개 부문 수상자를 결정하는 스웨덴왕립과학원도 문제의식에는 공감했다. 고란 한손 사무총장은 이날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여성 수상자가 적다는 것은 슬픈 일”이라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십 년간의 불공정한 사회 현실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여성 권익이 증대됐다고는 해도, 남성과의 격차는 여전하다는 얘기다. 그는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교수들 중 여성 비율은 서유럽과 북미에서도 10% 미만이고, 동아시아에선 훨씬 더 낮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성별·인종별 할당제’ 도입에는 선을 그었다. 한손 총장은 “가장 가치 있는 발견을 한 사람, 가장 중요한 공헌을 한 사람이 수상자로 결정되는 것이지 성이나 민족과는 관계없다”며 “그것이 노벨의 유언에도 부합한다”고 밝혔다. 기계적 다양성보다는 노벨상 본연의 가치와 권위를 우선시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한 것이다.

다만 성평등 구현의 의지는 내비쳤다. 한손 총장은 “여성 과학자 후보의 비중을 늘리도록 노력할 것이며, 노벨상 선정위원회에 여성 위원들이 더 많이 참여하도록 할 것”이라며 ‘변화’를 약속했다. 이어 “우리는 여성의 과학계 진출에 대해 다른 태도를 지녀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수상 가치가 있는 발견을 이룰 기회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벨상을 수상한 첫 여성은 1903년 물리학상을 받은 마리 퀴리다. 1911년 화학상도 받았는데, 노벨상을 2회 이상 받은 것도 그가 처음이다. 지난해에는 여성 과학자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제니퍼 다우드나가 유전체 편집 기법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는데, 남성 동료 없이 여성들로만 한 부문 수상자가 채워진 건 사상 처음이었다. 당시 사르팡티에 교수의 수상 소감은 이랬다. “이번 수상이 과학자를 꿈꾸는 소녀들에게 긍정적 메시지를 전하기를 바란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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