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된 여론, 제사장이 된 언론

입력
2021.10.13 00:00
27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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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야당의 유력후보가 때아닌 무속 논란에 휩싸였지만, 솔직히 말해 헛웃음을 넘어서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필자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건 작건 징크스 한두 개는 가지고 있으며, 하다못해 신년이 되면 토정비결이라도 한번 찾아보기 마련이다. 더구나 중요한 시험이나 행사를 앞두고는 아무리 사소한 것에라도 의미를 두고 의지하려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리일 것이다. 물론 그러한 약한 마음을 경선 토론회라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노출한 것을 문제 삼을 수 있겠지만, 그 또한 (이후 대응에서 나타난 거짓말 의혹을 제외하면) 후보의 무신경과 부주의함 이상의 큰 문제라고 하기 어렵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짐짓 윤석열 후보를 꾸짖는 언론 역시 무속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매일 신문지면에 오늘의 운세가 등장하는가 하면,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몇몇 매체들이 주요 후보의 관상을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던 것이 기억에 선하다.

그런데 무속 논란을 바라보고 있다 보니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혹자는 무속 논란을 바라보며 정치를 미신에 의지할 것이냐고 일갈하겠지만, 생각보다 신정(神政)정치는 이미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신정정치의 핵심은 정치적 정통성이 신의 뜻에서 비롯되며, 따라서 신의 뜻을 해석하는 소수의 사람에게 귄력이 집중된다는 점에 있다. 다만 현대사회에서는 신의 뜻이 여론으로 대체되었으며, 여론을 조사하고 해석하는 언론이 제사장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언론은 수많은 여론조사를 통해 민심을 읽는다고 하지만, 정말로 그들이 이야기하는 민심을 신뢰할 수 있는지는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라는 종교 경전만큼이나 불가해한 문장으로 갈음된다. 결과적으로 여론에 대한 상반된 결과와 해석의 홍수 속에 오히려 무엇이 진실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매일매일 출렁이는 지지율 수치만 눈에 들어올 뿐, 대선을 앞두고 벌어져야 할 건설적인 정책 논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언론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유권자들에게 어떤 사안이 중요한 것이며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점잖은 목소리로 훈수를 둔다.

물론 민주주의하에서 여론을 살피고 여론에 반응하는 것 자체를 문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문제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과 입장의 차이를 확인하는 작업을 혼동하는 것이다. 정치적 사안이 불거지면 으레 관련 여론조사가 시행되고, 사안의 내용과 의미는 어느새 사라지고 결국 어떤 입장이 더 많은 응답자의 지지를 받는가가 평가의 기준이 되어 버린다. 특히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은 최근 주요 후보들을 둘러싼 몇몇 의혹 사건에 대해 누구의 책임이 큰지 물어보는 여론조사 결과를 언론에서 접했을 때이다. 이제는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객관적 사실조차도 여론조사에서 편을 갈라 벌어지는 숫자 싸움으로 결정할 요량인 듯하다.

많은 이들이 이번 선거에서는 역대급 비호감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빌미를 제공한 후보들도 한심하지만, 좋게 봐줘도 가십을 벗어나지 못하는 내용으로 온통 지면을 도배하고 있는 언론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책임이 없을까? 유권자의 알 권리가 중요하다고 해도,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결정할 권리를 누가 언론에게 부여했는지 의문이다.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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