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세 내고 장학금까지... 예천의 땅 부자 나무 두 그루

입력
2021.10.12 17: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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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팽나무 황목근과 700년 반송 석송령

예천 용궁면 금원마을 들판의 황목근. 마을에서 계를 조직해 이 나무 이름으로 땅을 구입하고 수익금으로 마을 중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예천 용궁면 금원마을 들판의 황목근. 마을에서 계를 조직해 이 나무 이름으로 땅을 구입하고 수익금으로 마을 중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마을 어귀의 노거수는 단순한 나무 한 그루가 아니다. 토지와 마을을 지켜주는 서낭나무다. 혼령이 깃들었다고 여겨 신목으로 떠받든다. 주민들이 모여 대소사를 논하고 휴식을 취하는 사랑방 역할을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경북 예천에 실제 땅을 소유하고 재산세까지 내는 나무가 두 그루 있다. 당당히 이름 석자도 보유하고 있고 수익금으로 장학금까지 지급한다. 잘 늙어 간다는 건 얼마나 어렵고도 멋진 일인가. 나무 한 그루 보자고 작정하고 길을 나서기는 힘들지만, 오가는 길이라면 노거수의 품위와 지혜를 되새겨 봄 직하다.

먼저 용궁면 금원마을의 황목근(黃木根). 500년 수령의 팽나무다. 5월이면 노란 꽃이 핀다고 해서 황씨 성에, 근본 있는 나무라는 의미로 목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랜 세월 매년 정월 동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동신목(洞神木)으로 대접받아 왔다.

예천 용궁면의 황목근. 수령 500년이 넘은 팽나무로 밑동에 거대한 구멍이 나 있다.

예천 용궁면의 황목근. 수령 500년이 넘은 팽나무로 밑동에 거대한 구멍이 나 있다.


마을을 감싸듯 넓게 가지를 펴고 있는 황목근

마을을 감싸듯 넓게 가지를 펴고 있는 황목근


황목근이 고사할 것에 대비해 오른쪽에 후계나무를 키우고 있다. 이름은 황만수다.

황목근이 고사할 것에 대비해 오른쪽에 후계나무를 키우고 있다. 이름은 황만수다.

한걸음 더 나아가 주민들은 1903년부터 계를 조직해 모은 돈으로 황목근의 재산을 늘려 왔다. 1939년에는 구입한 땅을 이 나무 앞으로 등기 이전해 마을의 공동재산으로 관리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황목근이 보유한 땅은 1만2,231㎡(약 3,700평)다. 이 농지에서 임대료로 매년 80kg짜리 쌀 6가마를 받아 마을의 모든 중학생에게 30만 원씩 장학금을 수여한다. 한 사람으로는 벅찬 선행을 황목근이 매개한 셈이다. 주민들에게 공동체의 일체감과 자부심까지 심어주고 있으니 어찌 제를 올려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겠는가.

황목근은 마을 앞 논 한가운데에 15m 높이로 우뚝 솟아 있다. 넉넉하게 드리워진 가지는 마치 양팔을 벌려 마을을 감싸는 모양새다. 안타깝게도 둘레 3.2m에 이르는 밑동에는 사람이 드나들 정도로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꼭대기 부분의 가지도 말라 남은 생이 길지 않아 보인다. 다행히 바로 옆에 후계목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름은 황만수, 만수를 누리며 번성하라는 의미다. 주민들의 공모로 지었으니 금원마을의 역사도 그렇게 이어지리라.

예천에서 영주 풍기로 이어지는 도로변, 감천면 천향리 석평마을 앞에는 석송령(石松靈)이 있다. 약 700년의 만고풍상을 견뎌온 반송이다. 일제가 미신의 대상으로 여겨 베어 내려고 했지만 작업하러 온 인부가 크게 다쳐 무사했다는 이야기, 한국전쟁 때 사람들이 나무 밑으로 숨어 공습을 피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회자된다. 밑동부터 넓게 퍼진 가지를 보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11m 높이에 동서 32m, 남북으로 22m나 가지를 뻗고 있어 풍채가 우람하고도 멋스럽다. 지나가는 자동차가 장난감처럼 보일 정도다.

예천 감천면 석평마을 앞의 700년 반송 석송령. 지나가는 트랙터가 장난감처럼 보일 정도로 우람하다.

예천 감천면 석평마을 앞의 700년 반송 석송령. 지나가는 트랙터가 장난감처럼 보일 정도로 우람하다.


석송령 역시 자신의 재산으로 장학금을 기탁하는 부자 나무다. 약 600년 전 풍기 지방에 커다란 홍수가 났을 때, 하천에 떠내려온 잘생긴 소나무 한 그루를 건져 심었더니 지금처럼 자랐다고 한다. 1927년에는 이수목(1908년 생)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토지 3,937㎡(1,191평)를 나무 앞으로 이전하고, ‘석평마을의 영험한 나무’라는 의미로 석송령이라 이름했다. 그때부터 주민들이 계를 조직해 나무를 관리해 왔는데, 1980년대 초 이 소식이 청와대에까지 전해져 500만 원의 하사금까지 받게 됐다. 주민들은 토지 임대료에 이 돈까지 보태 매년 마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나무 한 그루가 숲을 이룬 것 같은 석송령

나무 한 그루가 숲을 이룬 것 같은 석송령


석송령은 밑동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가지를 뻗는 반송이다.

석송령은 밑동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가지를 뻗는 반송이다.


행여 부러질세라 석송령 가지마다 석재와 목재 지지대를 받쳐 놓았다.

행여 부러질세라 석송령 가지마다 석재와 목재 지지대를 받쳐 놓았다.

황목근과 마찬가지로 석송령도 늘어진 가지마다 석재와 목재 지지대를 받쳐 놓았다. 소나무는 겨울철 눈이 내릴 때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 석송령이 오랜 세월 품위 있는 수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주민들이 정성으로 보살핀 덕분이다. 나무가 마을을 살리고 자신들을 돌본다는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예천=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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