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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로 변한 위안소’ 푯돌, 꼭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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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아직 가지 못했다. 8월 방문 목표는 코로나19 제한 조치 탓에 미룰 수밖에 없었다. 2년 전 한국일보 보도로 세상에 처음 알려진 '화장실로 변한 인도네시아 일본군 위안소(2019년 8월 8일자 1, 2면)'는 아물지 않는 통증이다. 아직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스러움이 밀려온다.
2019년 8월 1일 참담한 현장을 마주했다. 1942년 머나먼 적도의 땅에 끌려와 일본군의 '성 노예'로 짓밟혔던 조선 소녀들이 머물렀던 폭 2.5m, 길이 3.6m, 높이 3m의 방들은 쓰레기더미와 함께 문드러져 가고 있었다. 세월에 짓이겨 손만 대도 부스러지는 벽엔 나무뿌리가 들러붙었고 바닥엔 눈물을 쥐어짜듯 이끼가 발걸음을 방해했다. 한숨을 쉴 때마다 역한 냄새가 목구멍을 깨웠다.
통한의 자리가 공공 화장실로 변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3개 동 44칸 중 24칸은 떼를 입힌 무덤처럼 수풀이 무성하거나 문이 떨어지고 벽이 무너져 내려 어찌할 도리도 없어 보였다. 보존이나 복원은 바라지 않았다. 소녀들의 넋이나마 기릴 푯돌이라도 세웠으면 하는 바람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한인 사회가 움직였다. 재인도네시아한인회 등은 본보 보도 일주일 뒤 푯돌 건립 추진을 결정했다. 푯돌 문구 등 구체적 논의도 이어졌다. 인도네시아 한인 이주 100주년인 지난해에는 탐방단과 함께 현장을 다시 방문했다. 현장이 군부대 소유이고 개발 예정지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현재 정식 허가를 받을 방법을 찾고 있다.
자칫 일본의 로비로 계획이 꼬이는 상황도 염두에 뒀다. 실제 위안소에서 차로 4시간 떨어진 수라바야의 '평화기원탑'은 일제강점기 때 이 땅에 끌려온 우리 조상 2,000여 명의 넋을 기린다는 이유로 일본의 집요한 방해 공세에 시달렸다. '강제동원피해' 글귀를 트집 잡는 통에 2년 가까이 보수 공사가 지지부진하다.
수많은 장애물도 버거운 데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쳤다. 그래도 한인 사회는 79년 전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다. 더디더라도 꼭 이루리라 믿는다. 인도네시아 한인 사회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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