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명예보다 위안부 피해자 명예 회복이 더 중요"

입력
2021.10.11 04:30
수정
2021.10.12 18:3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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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표적'으로 부산영화제 찾은 니시지마 신지 감독

니시지마 신지 감독은 “전 세계 영화인이 주목하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오게 돼 기쁘다”며 “일본 정부가 과거를 숨기려고 하는 현실을 국제사회가 어떻게 볼지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라제기 영화전문기자

니시지마 신지 감독은 “전 세계 영화인이 주목하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오게 돼 기쁘다”며 “일본 정부가 과거를 숨기려고 하는 현실을 국제사회가 어떻게 볼지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라제기 영화전문기자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는 1991년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일본 최초로 보도했다. 그의 보도가 있은 후 일본 언론이 앞다퉈 위안부 문제를 다뤘고, 1993년 고노 담화(일본 정부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과)가 나왔다.

20여 년이 흐른 뒤 상황은 바뀌었다. 우에무라 전 기자는 일본에서 반역자, 매국노로 낙인찍혔다. 날조 보도를 해 일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에서다. 일본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고, 우에무라 전 기자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 ‘표적’은 우에무라 전 기자 죽이기에 국가적 음모가 작용하고 있다고 적시한다. 10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만난 ‘표적’의 니시지마 신지 감독은 “우에무라 비난이 비정상적이라 생각해 이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에무라 전 기자에 대한 공격은 2014년부터 시작됐다. 우익 성향 기자들이 우에무라 전 기자가 날조 보도를 했다고 주장하면서다. 우에무라 전 기자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살해 위협까지 받았고, 고등학생 딸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을 받기까지 했다. 시간강사로 일하던 대학에도 위협이 이어졌다. 학교 측은 학생 안전을 내세워 우에무라 전 기자에게 강의를 주지 않았다. 우에무라 전 기자는 일본 강단에 설 수 없게 되자 한국 가톨릭대로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다. 가족은 흩어졌고, 병든 노모를 모실 수 없었다.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는일본에서 위안부 피해자 보도를 날조했다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는일본에서 위안부 피해자 보도를 날조했다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니시지마 감독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1991~1994년 도쿄방송 JNN 서울지국장으로 일하며 위안부 피해자 보도를 했다. 우에무라 전 기자와 자신뿐 아니라 많은 일본 기자가 똑같은 내용을 다뤘다. 니시지마 감독은 “보도 당시에는 날조는커녕 잘못됐다는 말도 전혀 없었는데 20년이 지나서야 날조 기사라고 하니 이상하게 생각됐다”고 말했다.

니시지마 감독은 영화에서 1997년을 주목한다. 아베 신조 당시 중의원이 ‘일본의 전도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을 설립하면서 흐름이 바뀌었다고 본다. “같은 해 가장 세력이 큰 우익단체 '일본회의'가 만들어졌어요. ‘위안부는 일본과 상관없다’ ‘고노 담화를 수정해야 한다’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됐어요. 동시에 일본 언론에 위안부 보도를 하지 말라는 압력이 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왜 우에무라 전 기자가 ‘표적’이 됐을까. 니시지마 감독은 “아사히신문이 권력의 부정부패를 폭로하고 추궁해 왔던 대표적인 진보 매체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일본 정부 비판에 있어 최선봉에 서 있으니 권력의 강한 압력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는 총리가 된 이후 의회 질의에서 우에무라 전 기자의 위안부 보도를 아예 “가짜 뉴스”라고 정의한다. 매체의 신뢰도를 깎아내려 비판의 예봉을 무디게 하려는 전략이다. 니시지마 감독은 “특정 신문사를 표적 삼아 공격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며 “국가적 음모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표적'에서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변호인들과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 '표적'에서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변호인들과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우에무라 전 기자는 자신의 보도를 날조라고 주장한 언론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자신이 거주하던 홋카이도 지역 변호사 100여 명이 무료 변론에 나섰다. 홋카이도 지역 변호사 10% 해당하는 인원이었다. 하지만 일본 법원은 우에무라 전 기자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니시지마 감독은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전후 보상 문제로 보고 있는데, 인도적인 사안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명예회복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데 정작 일본에서는 일본이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고 할 때 이 단어가 쓰인다”고 말했다. “그게 틀렸다, 잘못됐다고 영화로 말하고 싶었어요. 진짜 회복해야 할 것’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존엄이지 가해자의 명예는 아니니까요.”

영화에는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1924~1997) 할머니의 30년 전 증언이 여러 차례 나온다. 니시지마 감독은 “일본 언론은 위안부를 금기시해 전혀 보도를 안 하니 사람들이 피해자의 육성을 들을 기회가 없어 넣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근무할 때만 해도 한국과 일본이 지금보다 가까웠다”며 안타까워했다. 니시지마 감독은 “양국 관계가 좋아지기 위해선 역사를 서로 아는 게 첫걸음”이라고 했다. “영화에도 등장하는데 남산공원 ‘기억의 터’에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문구가 있어요. 불행한 역사를 기억해야 관계 회복을 할 수 있어요. 일본 정부 주도로 불행한 역사를 숨기려는 인식이 나라 전체에 확산돼 있어요. 이런 역사 수정주의를 폐지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산=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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