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철군 후 처음 만난 미국-탈레반… 관계정상화 물꼬 틀까

입력
2021.10.11 01:00
9일부터 이틀간 카타르 도하에서 외교 협상 시작
아프간 인도적 지원, 동결 자금 해제 등이 의제

탈레반 대원들이 4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압둘 라흐만 모스크에서 소총을 앞에 두고 기도를 하고 있다. 카불=로이터 연합뉴스

미국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완전 철군 후 처음으로 마주 앉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지원부터 미국에 동결된 아프간 자금, 이슬람국가(IS) 테러 위협 대처까지 다양한 현안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탈레반을 정식 국가 운영 주체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양측이 외교 협상을 시작한 셈이라 관계 정상화 물꼬를 텄다는 평가가 나온다.

데이비드 코언 미 중앙정보국(CIA) 부국장과 아미르 칸 무타키 아프간 외무장관 대행을 단장으로 하는 양측 대표단이 9일(현지시간)부터 이틀간 카타르 도하에서 회담을 가졌다고 미국과 아프간 언론이 보도했다. 지난 8월 15일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함락하고 같은 달 31일 마지막 미군이 카불을 떠난 뒤 열린 첫 공식 접촉이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이번 회담은 (탈레반) 인정이나 합법성 부여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워싱턴포스트(WP)에 밝혔다. 미국 대표단은 코언 CIA 부국장과 함께 톰 웨스트 국무부 아프간 부특사, 대외원조 담당 국제개발처(USAID) 대표 등으로 구성됐다. 외교를 맡는 국무부가 아닌 정보기관 간부를 회담 수석대표로 내세운 것은 이번 회담의 공식 외교 협상 성격을 축소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아프간 대표단에는 무타키 장관 대행 외에 압둘 하크 와시크 정보국장 대행, 마와위 누르 잘랄 내무차관이 포함됐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시한 하루 전인 8월 30일 밤 미 육군 82공수사단 사령관 크리스 도나휴 소장이 카불 공항에서 철수작전을 지휘한 뒤 마지막 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회담 의제를 두고선 양측의 설명에 차이가 있었다. WP는 “미 국무부에 따르면 아프간 사람을 비롯해 미국인과 외국인의 안전한 출국, 탈레반의 포괄적 정부 구성을 통한 여성과 소수민족 권리 존중이라는 국제적 요구, 아프간의 인도주의적 위기 고조 등에 협상 초점이 맞춰져 있다”라고 보도했다. ‘아프간이 IS를 비롯한 극단주의 세력의 온상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탈레반의 약속 이행도 미국의 관심사다.

반면 무타키 장관은 알자지라에 “미군 철수 후 처음으로 가진 대면회담에서 미국이 코로나19 백신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도적 지원 문제가 회담 주요 논의 대상이라고도 했다.

특히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 후 미국이 동결한 미국 내 아프간 정부 자산 100억 달러(약 12조 원) 반환 문제와 세계은행(WB), 국제통화기금(IMF)의 아프간 지원 및 대출 재개 등도 논의가 됐다.

이미 영국이 5일 탈레반과 협의를 시작했고, 이달 말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아프간 특별회의도 소집됐다. 서방 국가들의 아프간 정상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아프간 장악 후 경제 붕괴 위기에 처한 탈레반 역시 외교관계 정상화가 꼭 필요하다. 러시아가 20일 모스크바에서 중국 이란 파키스탄 인도와 함께 탈레반을 초청해 아프간 문제를 논의하기로 하는 등 미국의 경쟁국가들이 이 지역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것도 미국의 고려사항이다. 다만 탈레반과 쌓인 앙금이 많아 실제 외교관계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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