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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개발, 공정한 이익 배분돼야 지속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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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치솟고 거주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27> 도시개발법, 사업성과 공공성의 균형이 필요
경기 성남시의 한 도시개발사업을 둘러싸고 연일 뜨거운 공방이 오간다. 불과 수천만 원의 자본금으로 수천억 원을 벌었다는 자산관리회사는 수사의 대상이 됐고, 전직 고위 법조인들과 정치인들도 지면에 오르내리고 있다. 불법과 부정이 있었는지는 차차 밝혀지겠지만, 우리가 조금 더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것은 제도적 허점이 있는 가다. 만약 법을 다 지키더라도 누구는 억울해하고 또 누군가는 일확천금을 버는 사업이라면 도시개발은 정당성을 잃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기회에 도시개발의 편익이 골고루 돌아가는 합리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강력한 경제개발과 함께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자, 1973년 1월 신속한 주택공급을 위해 ‘주택건설촉진법’이 탄생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주택건설자금 확대와 신속한 인허가만으로는 급증하는 주택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한계에 봉착한다. 더욱이 기존의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는 주택의 대량공급이 불가했다. 개발 후 원지주에게 토지로 돌려주는 환지방식은 단독주택용 소규모 택지공급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1980년 12월, 공공이 수용을 통해 대규모 택지를 개발하는 ‘택지개발촉진법’을 제정하게 된다. 택지개발사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같은 공공시행자가 토지를 수용해 택지를 조성한 후 주택건설업자에게 매각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블록단위로 공동주택사업이 진행되므로 속도와 물량 면에서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수도권 1기 신도시로, 총 29만 가구를 단 5년 만에 공급할 수 있었다. 1990년 수도권 전체 주택재고 265만 가구의 11%에 이르는 엄청난 물량이었다. 1990년에서 1995년까지 수도권에서 늘어난 주택 수 109만 가구의 27%가 택지개발사업을 통해 공급된 것이다. 당연히 주택가격 안정에도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여전히 주택단지 개발이나 대지 조성은 각각의 관련법에 의해 소규모로 진행되면서 택지개발과 같은 수준의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공공의 택지개발만으로는 다양한 도시개발수요를 담아낼 수 없었다. 이에 2000년 1월, 기존의 관련 사업들을 통합하고 체계화해 ‘도시개발법’이 탄생하게 된다. 택지개발사업과는 달리 도시개발사업에는 ‘민간사업자’의 참여가 가능했다. 아울러 일정 조건을 갖추면 민간도 ‘토지수용’을 할 수 있게 됐다. 도시개발사업은 주로 민간이 시행하는 사업으로 자리 잡았으며 시장 상황에 따라 ‘쪽박 아니면 대박, 위험하지만 매혹적인 사업’이 됐다.
민간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도시개발사업에 주어진 ‘토지수용권’은 신속한 개발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한편으로 부당한 측면도 있다. 명칭은 고상하지만 수용은 본질적으로 원주민의 재산권을 빼앗는 행위이다. 협의매수가 원칙이긴 하나 결국 원주민이 동의하지 않으면 정해놓은 규정에 따라 보상하고 강제수용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수용해서 조성한 택지가 얼마나 공익(public interest)을 위해 쓰이는가를 생각해본다면 갸우뚱하게 된다.
1789년 왕과 귀족들의 핍박에 항거한 프랑스대혁명은 토지를 포함한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국민의회가 의결한 ‘프랑스 인권선언’ 제17조는 ‘소유권은 신성불가침 한 권리이므로 합법적이고 공공이 명백히 필요로 하며 정당한 보상이 없이는 결코 침해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후 많은 나라에서 사유재산권이 자유의 근본임을 인정함으로써 공익적 필요성과 정당한 보상은 토지 수용의 대전제가 됐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공익과 정당 보상(fair compensation)은 잘 지켜지고 있을까. 토지 수용을 할 때 보상가격의 기준시점은 통상 지구지정시점인데 이는 개발 기대로 인한 지가 상승분을 제거해 투기를 예방하고 저렴한 토지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도시개발법의 제정 이유를 보면 ‘개발에 대한 기대이익이 지가에 반영돼 토지 소유자는 아무런 노력 없이 개발이익을 갖게 되는 문제점’이 있어서 토지 보상 기준 시점을 구역지정시점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토지소유자에 대한 정당보상 원칙은 해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유럽은 개발권 공유사상이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바, 현재 상태의 이용권은 소유자에게 있지만 향후 개발에 대한 권리는 공공에 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토지수용법도 여러차례 개정을 통해 ‘토지개발 전 시장가치’를 기반으로 보상하도록 규정했다. 사실 우리도 도시개발지구를 지정하고 도시용 토지로 바꾸는 권한은 공공에 있으므로 개발기대이익이 원지주에게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개발이익의 권한을 공공이 갖는 것은 정당하다.
문제는 공공이 공정하게 개발이익을 배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민관합동개발인 경우 공공 주도로 토지를 수용하고 인허가를 받았다면 개발에 기여한 주체들에 대해 적절하게 보상한 후 초과이익은 공공에 귀속되는 것이 마땅하고 지역사회를 위한 공익사업에 재투자돼야 한다. 당연히 민간이 수행한 역할이나 감당한 위험에 부합하는 적절한 이익은 보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간의 택지공급은 크게 위축될 것이고 주택 공급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다만 과도한 이익이 돌아가는 것을 제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택지개발사업의 경우 민간사업자의 이익은 총사업비의 6%로 제한된다. 그러나, 도시개발사업에는 이러한 규정이 없다. 결국 공익을 내세워 원주민에게 저렴하게 수용한 토지로 인해 발생한 개발이익 중 과도한 부분이 민간사업자의 주머니로 들어갈 소지가 있다.
도시개발은 발생한 이익을 공정하게 나눌 수 있어야 비로소 정당성과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지속적인 토지 강제수용으로 국토의 90%를 국가가 소유하고 정부가 도시개발의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런데 왜 싱가포르 국민들은 크게 반발하거나 부당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일까. 수용한 토지들을 공익을 위해 쓰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가가 분양하는 HDB(주택개발청) 주택은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다. 생애 두 번까지 분양받을 수 있고 5년간 살고 나면 시세로 팔 수 있다. 양도소득세가 없으므로 시세 차익은 오롯이 국민들의 몫인데, 젊은 세대들에게 자산을 마련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도시개발을 공공이 수행할 때조차 사업성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므로 강제수용한 토지 중 일부를 민간에 매각해야만 한다. 그래야 택지조성비를 회수하고 그다음 공공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더욱이 적자가 나는 공공임대사업을 지속하려면 어디선가는 돈을 벌어야 한다. 만약 수용한 택지를 모두 공공이 보유한다면 공공사업자는 막대한 부채로 인해 존립이 어려울 것이다. LH는 한때 하루 이자가 120억 원에 이르는 엄청난 부채에 시달린 적이 있다.
더 좋은 삶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도시개발은 필요 불가결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불공정과 부당이익이 난무한다면 우리 국토는 투기장으로 전락할 것이다. 원주민의 희생을 전제로 한 도시개발사업 초과이익이 공익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적절하고 합리적인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리츠(REITS) 등 간접투자기법을 활용해 원주민들이 해당 사업의 최종적인 이익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택지개발사업과 도시개발사업을 통합해 개발사업의 유형에 상관없이 일관성 있는 기준을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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