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하지불안증후군’, 철분 부족 때문?

입력
2021.10.1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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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분이 부족해 생기는 하지불안증후군의 경우 철분 제제를 먹으면 61% 정도가 증상이 호전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철분이 부족해 생기는 하지불안증후군의 경우 철분 제제를 먹으면 61% 정도가 증상이 호전된다. 게티이미지뱅크

“다리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하다. 다리가 근질근질하거나 쿡쿡 쑤시는 느낌이 든다. 다리를 쥐어짜거나 다리가 타는 듯하다.”

‘하지불안증후군’ 환자가 호소하는 대표적인 증상이다. 하지불안증후군은 다리를 움직이고 싶은 참을 수 없는 충동을 특징으로 하는 신경학적 상태다.

하지불안증후군은 360만 명(7.5%)이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수면 장애가 동반되는 비율은 220만 명(60%)에 달할 만큼 비교적 흔하다.

다리를 움직이지 않으면 증상이 심해지고 움직이면 완화되기에 지속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하지불안증후군이 생기면 다리에 불편한 느낌이 들면서 불면증이 생기고 우울증도 2~3배 높아지므로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

환자의 상당수가 정보가 많지 않아 단순 불면증이나 혈액순환 장애로 인한 손ㆍ발 저림 또는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 등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디스크(추간판탈출증)나 하지정맥류 등 다른 질환으로 오인해 정형외과나 재활의학과 등을 전전하기도 한다.

이유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불면증을 치료해도 효과를 보지 못한 이들 중 하지불안증후군 환자가 많다”며 “잠이 들기 전 지속적으로 다리 쪽에 이상 감각 또는 통증이 발생하면 반드시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불안증후군의 유병률은 6.5~8.3%로 보고되고 있을 정도로 적지 않다. 조규호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는 “하지불안증후군은 30~50세에 흔하게 나타난다”며 “불면증의 주원인이지만 잘 모르고 수면제 처방만 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했다.

하지불안증후군은 뇌 중추신경계에 철분이 부족하거나, 도파민 기능이 떨어져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환자의 10% 정도는 유전적 영향으로 발생하는데, 가족력이 있으면 젊은 나이에도 발생하고 증상도 심하다.

빈혈ㆍ만성콩팥병ㆍ당뇨병ㆍ말초신경염ㆍ허리디스크ㆍ척추관협착증 등 특정 질환과 약물(항도파민제, 항히스타민제, 항우울제)의 부작용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2차성 하지불안증후군). 특히 여성의 경우 빈혈이 있거나 임신ㆍ수유ㆍ생리 등으로 철분이 손실돼 발병하기도 한다.

이 같은 2차성 하지불안증후군이라면 콩팥 기능 검사, 철분 상태 평가, 저장철(ferritinㆍ세포에 저장된 철) 농도 등의 혈액검사와 신경 전도 검사 등을 시행하기도 한다. 소화제와 항우울제 등으로 인해 발생하기도 해 자세한 병력 조사가 필요하다.

진단은 다른 질병과 달리 혈액검사, X선 촬영 등으로 진단하지 않고 자세한 문진(問診)으로 한다. 전홍준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증상이 있으면 수면 장애의 진료 경험이 많은 전문의에게 진료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치료는 혈액검사로 저장철 수치를 확인해 낮다면 빈혈이 없더라도 철분 제제가 도움이 된다. 저장철 수치가 정상적이고 증상이 심하면 항경련제ㆍ도파민 효현제 등으로 약물 치료를 한다. 저장철 부족으로 인해 하지불안증후군이 생겼다면 철분제를 먹으면 대부분 완치할 수 있다.

조용원 계명대 동산병원 수면센터 교수가 철결핍성 빈혈을 동반한 하지불안증후군 환자 29명을 대상으로 고용량 철분 주사(ferric carboxymaltose 1,500㎎)를 투여한 결과, 6주 후 철분 주사 요법을 실시한 환자군에서 하지불안증후군 증상과 수면의 질이 유의하게 호전됐다. 1년 뒤에도 환자의 61%가 추가로 약물 치료를 하지 않아도 증상이 조절됐다.

하지불안증후군을 예방하려면 기상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침대에 오래 눕지 않으며 카페인 섭취와 과음을 피하는 것이 좋다. 취침 전에 가벼운 운동을 하고, 다리 마사지나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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