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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보고 ①삼촌과 조카 ②해외 커플 ③10년 단골이 몰려간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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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속 달고나 만든 그 아저씨.' 유튜브 속 영상은 평온하게 설탕을 한 큰술 집는 달인 그 자체였는데, 7일 오후 직접 가본 달고나 가게는 몰린 인파와 흩어지게 하려는 사장 부부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조용한 대학로 속 이 주변만 웅성거리는 모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이런 인파는 낯선 풍경 그 자체였다.
"우산 모양(오징어게임 속 이정재가 연기한 성기훈이 사용한 달고나 모양)으로 해달라" "줄이 어디부터냐" "이거 무슨 줄이에요?" 등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질문에 한 번씩만 대답해줘도 사람들이 더 몰려들 기세다. 급기야 사장 부부는 종이와 펜을 꺼내 소리쳤다. "가요, 빨리!"
대학로에서 25년 동안 달고나 가게를 운영 중인 임창주·정정순 부부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달고나를 직접 만들었다. 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이후 유명세를 얻어 가게 앞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붐볐다.
잠시 뒤 공무수행 차를 타고 종로구청 직원들이 찾아왔다. "사장님, 예. 방역수칙.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짧게 눈인사만 하고 돌아가는 공무원들의 기색을 보니, 암행어사 출두 같은 포스는 아니다. 부부와 안면도 있고, 서로 입장을 이해하기에 정중하게 요청하는 상황. 그제야 사람들은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적고 뿔뿔이 흩어졌다.
그런데도 포기를 않는 이들이 있었다. 유튜버들이다. 기다란 셀카봉에 끼운 카메라를 들이대고, "배우들 봤어요?" "(오징어게임 속) 그거 다 만드신 거예요?" 묻는다. 눈치가 없는 건지, 없는 척하는 건지, 급기야 임씨는 콕콕 찍던 뽑기 틀을 '쾅'하고 내려쳤다. "동물원 원숭이도 아니고, 사진 찍지 말라니까. 이거 또 나가면 방역 수칙 위반으로 시끄러울 거 아녀."
이 모든 것이 가게가 문을 여는 오후 3시 이전 한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코로나19로 오징어게임 특수를 맘껏 누리지도 못해 마냥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오징어게임의 인기 덕에 가게 앞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경기 평택에서 왔다는 30대 연인은 "유튜브에서 보고 달고나도 할 겸 대학로로 데이트를 왔다"며 "우산 모양을 꼭 갖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생 A(21)씨는 떨리는 표정으로 "하나는 친구와 함께하고 나머지는 집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하려 한다"고 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 문구점 앞에서 뽑기를 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며 "몇 시간 기다릴 각오는 하고 왔다"고 덧붙였다.
손님들은 자신의 휴대폰 번호와 주문 모양 및 수량을 적고 다른 장소에서 기다리다 가게 주인들이 "다 만들어졌다"는 전화를 걸어오면 다시 가게로 와서 제품을 찾아가는 식이다.
대부분 최소 3~4시간 대기는 기본이었다. 기자들도 오후 3시쯤 우산 2개, 오후 4시쯤 우산 3개와 세모 2개를 주문했다. 첫 번째 주문은 두 시간 반, 두 번째 주문은 세 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
그래도 달고나를 다행히 손에 든 이들은 성공한 축에 속한다. 오후 6시가 되자 가게 주인 부부는 "마감!"을 외쳤다. 몽골 출신 유학생 직장인 커플인 엥흐투브신(26)씨와 척트사이항(30)씨는 안타깝게 10분 늦게 도착해 달고나 주문에 실패했다. "인천에서 왔는데 깨진 거라도 살 수 없냐"며 "인사동에 갔다가 문을 닫아 이곳으로 왔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어 척트사이항씨는 "달고나 때문에 대학로에 처음 와봤다"며 오징어게임 데이트 중이라고 밝혔다. 대학로에서 달고나를 산 후, 홍대에서 오징어게임 트레이닝을 사려고 했다는 것. 사정을 밝히자 임씨도 달고나 만들던 손을 멈추고 말했다. "몇 개만 해줄 테니 얼른 적고 기다리든가. 우리는 강원도, 부산서도 와. 인천은 예사도 아녀."
가족 단위 방문객도 줄을 섰다. 서울 종로구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윤모군과 임모양은 사촌 지간으로, 삼촌 손을 잡고 이곳을 찾았다. 미성년자 시청 금지 판정을 받은 오징어게임은 초등학생은 볼 수 없지만, 유튜브를 통해 게임 종류나 규칙은 공식적으로 공개했다. 덕분에 드라마를 전부 봤다는 삼촌과도 공감대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학교 앞에서는 해봤지만 드라마 때문에 유명해진 바로 그 가게에서는 처음이라며 설렌다는 조카들에게 삼촌은 장난을 치기도 했다. "실패하면 큰일 나는 거야." 아이들 얼굴에 웃음이 넘쳤다.
세 시간을 기다리고 해가 지고 나서야 달고나를 받아든 가족도 있었다. 초등학생 아이 때문에 대학로를 오랜만에 방문했다는 이 가족은 "아이 학교에서 유행이라고 하더라"며 "온라인을 통해 달고나 키트를 주문했지만 너무 오래 걸리기에 직접 사먹으려고 나왔다"고 밝혔다. "옛날 생각도 나더라. 집에 가서 같이 해봐야겠다"는 부모의 표정에는 설렘이 가득 보였다.
부모님께 드릴 달고나를 사려는 이도 있었다. 인천에서 퇴근하자마자 달려왔다는 이모(31)씨는 "부모님과 오징어게임을 재밌게 봤다"며 "어릴 적 게임이 생각난다고 좋아하시더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몰래 사다 드리면 좋아하실 것 같아 왔다"며 웃었다.
임창주 정정순 부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이자 결국 '오징어게임 그 집'이라는 문구를 떼냈다고 한다. 그러나 북적이는 모습 때문에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 '오징어게임 속 달고나집'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듯 했다. 코스타리카에서 왔다는 여자친구와 함께 대학로를 지나가던 20대 남성 B씨는 "함께 지나가다 '오징어게임 달고나집'이란 걸 알았다"며 "마침 친구와 오징어게임의 세계적 인기가 놀랍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며 발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오징어게임 유명세를 타고 사업 제안을 하러 온 업자도 있었다. 스스로를 마케팅 사업가라 밝힌 80대 안모씨는 "오징어게임 속 케이스와 연계하여 납품할 생각이 없느냐"며 임씨 부부에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러나 임씨는 "달고나는 어디에 넣는 순간 녹고 깨진다"며 단박에 거절했다. "난 그렇게는 안 판다"고 말하며 설탕가루를 휘휘 저으며 오로지 얇게 펴지는 것에 집중하는 임씨 모습에서 장인의 모습이 엿보이기까지 했다.
모여 든 사람들 중에는 이 가게의 단골들도 만날 수 있었다. 10년이 훌쩍 넘게 단골이라는 안은희(42)씨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연극을 보거나 낙산공원에 갔다가 이곳에서 뽑기를 하는 것이 하나의 코스였다고 말했다. "사장님이 아이들한테는 더 쉽게 되도록 꾹 눌러 주시고, 성공 요령도 알려주시기도 했다"며 정이 많이 든 곳이라고 설명했다.
또 학교 앞에서 뽑기를 하던 학생이 시간이 흐른 뒤 대학생이 된 뒤 다시 단골이 된 경우도 있었다. 대학생 C(22)씨는 "스무 살에 우연히 대학로를 지나가다 초등학교 때 뵙던 달고나 아저씨라는 것을 알았다"며 "그 뒤로 가끔 들르는데 꼭 초등학생 때로 돌아간 것만 같다"고 말했다.
한편 해가 지고 나서도 삼삼오오 모여드는 달고나 가게와는 달리, 옆 상점들은 휑하기만 했다.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옷가게 점주 D씨는 "대학로 가게들이 다들 힘겨워하고 있다"며 "지금 돈을 버는 사람들은 저 분들뿐일 것"이라고 말했다.
뽑기 가게 옆 카페 직원 E씨 역시 "달고나 때문에 손님들이 카페에 더 많이 오진 않고 매출도 평소와 비슷"하다며 오징어게임 속 달고나집이 유명해 진 이후 변화를 묻는 기자의 말에 손사래를 쳤다. 주변 음식점, 주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 이후 대학로의 연극과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며 활기를 잃자 상인들이 내심 기대하는 '달고나 효과'란 아직까지는 찾기 힘들었다.
대신 반갑지 않은 전화는 가끔 걸려온다고 했다. 달고나 가게가 내다보이는 카페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F씨는 "달고나 가게가 오픈했냐, 퇴근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냐는 연락이 온다"며 힘든 속내를 털어놨다. 이러한 달고나 관련 문의 전화가 하루에 두 세번씩 걸려와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
근처 다른 달고나 가게 옆은 어떨지 궁금했다. 임씨 부부가 운영하는 달고나 가게에서 불과 150m 떨어진 곳에는 또 다른 노점이 있다. 바로 혜화역 2번 출구 앞이다. 기자들이 방문한 7일에는 이 점포가 문을 열지 않아 자리만 확인 가능했다.
이 달고나 가게 역시 오징어게임의 당초 납품 가게로 유명세를 탔다. 오징어게임이 장마철에 촬영했던 탓에 이 가게가 공급한 달고나가 녹아버렸고, 당초 '달고나 아저씨' 역할 연기자로 현장을 찾은 임창주씨가 즉석에서 300개를 만들게 됐다는 일화는 온라인에서 퍼졌다. 오징어게임 달고나 집이 혜화역에만 두 곳인 셈이다.
2번 출구 앞에서 떡볶이집을 운영 중인 점주에게 두 가게 사이 사연을 들어봤다. "우리(혜화역 부근 상인들)끼리는 서로 다 알어. 사이는 다 좋아. 저쪽(임씨 부부네 달고나집)도 납품하고, 이쪽(2번 출구앞 달고나집)도 납품하고 그런 거지."
가게들 사이에 신경전 같은 것은 없고, 상인들끼리도 질투 섞인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 그러면서 "그거(달고나집) 잘된다고 떡볶이가 더 잘 팔리진 않아. 그래도 코로나19 때문에 사람도 없었는데, 뭐라도 오면 좋지. 너라도 잘되어라, 그런 마음이야. 여기 상인들은 그래"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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