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들은 대학의 미래를 생각해봤을까

입력
2021.10.11 00:00
23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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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끝자락의 작은 나라. 식민지 시대와 전쟁, 압제와 가난의 굴곡을 이겨내며 여기까지 왔다. 산업화의 큰 산을 오르고 민주화의 협곡을 지나 지금까지 달려온 것만 해도 정말 장하다. 부모 세대는 정말 어려웠지만, 자식 세대만은 잘 자라고 잘 배워 이 나라를 살려 보라는 자식 사랑과 교육열이 큰 힘이었다. 그래서 허름한 대학 강의실의 작은 책상에 쭈그리고 앉아 열심히 공부했고, 변변치 않은 시설의 도서관 자리도 불이 꺼질 때까지 지켰다.

어려웠던 시대에도 대학은 나름 제 역할을 했고, 대학이 키운 인재들이 이 나라를 여기까지 이끌어 왔다. 그래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성장했다. 우리 선박이 오대양을 누비고, 우리 자동차가 전 세계 대륙을 달리고, 우리 반도체 기술이 글로벌 시장에서 상종가를 치고, 우리가 만든 영화, 음악, 드라마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 시대가 변했다. 근대 지식 패러다임이 대변혁기를 겪고 있다. 대학의 세부전공 중심 도메인 지식만으로는 더 이상 미래 사회의 어려운 문제들을 풀 수가 없다. 초연결 네트워크 사회는 의학과 데이터가 만나 전염병을 극복하고, 지구과학과 데이터가 결합해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자동차가 데이터를 만나 자율주행차를 만들어 내는 시대다. 이제는 대학이 도메인 전문지식들을 전방위 협업 체계로 연결해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는, 이른바 'T형'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

우리는 글로벌 일류 기업 보유국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은 영화와 드라마, 음악 제작자의 보유국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 세계 일류 대학은 만들어 내지 못했다. 서구의 근대 대학 모델을 뒤늦게 따라간 우리 대학의 한계였다. 지식을 가르치고 전달하는 교육은 그런대로 잘했는데,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학습 훈련에는 부족했음이 문제였다. 세계 일류 대학 없이 글로벌 사회의 주인공이 되기는 요원하다. 세계 일류 대학 없이 다음 세대의 미래도 없다.

지식의 대변혁기는 우리 대학에 위기가 아닌 기회의 장이다. 대학은 초연결형 미래 지식을 만들어 내야 하고, 미래 인류를 이끌고 갈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 내야 한다. 일본의 기시다 신임 총리는 올해 안에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10조 엔의 대학펀드를 조성하고 이를 50년간 운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재원으로 매년 3,000억 엔을 대학 기초연구력 강화, 미래 연구인력 양성, 연구시설 확충에 투입하겠다고 한다. 국가와 다음 세대에 대한 미래 비전이 매우 선명한 정책이다. 단기 실적과 보고서 만들기를 중시하는 우리 국가 R&D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미래 투자다.

대통령 선거 각당 예비후보들이 연일 다양한 공약을 쏟아 내고 있지만, 유권자 중 18%에 이르는 20대 다음 세대와 이들을 키워내는 대학의 미래에 대한 얘기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젊은 세대에게 정부 보조금, 취업난과 주택 문제 해결방안만큼 중요한 일은 불확실성의 미래사회를 헤쳐나갈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의 날개를 달아 주는 것이다. 이것이 대학이 할 일이고, 정부와 기업이 적극 동참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지금도 과거 국가지도자의 공과를 자주 이야기한다. 내년 3월 대통령 선거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20년 후 역사의 평가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대학이 함께 만든 창의성과 도전정신의 용암이 대학 담장을 넘어 사회에 흐르고, 인류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도록 하는 비전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역사의 평가를 겸허하게 기다려야 한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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